느린 일기 - 한 스푼이라도 걱정을 덜어내면
2023년 3월 22일 수요일
선선하고 살짝 구름 낌
드디어 고용보험문제가 해결되었다. 내일 배움 카드도 신청하고 나서 보니 이게 뭐라고 겨우 생겨난 휴식기에 전전긍긍했나 싶었다. 신경 쓴다고 더 빨리 되는 것도 아니었는데.
퇴사를 결정하고 그만두는 날만 기다리고 있던 시기에 함께 일하던 형님이 슬쩍 다가와서는 재취업을 하든, 뭔가를 배우든, 쉬는 시간에는 그저 쉬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어떤 식으로든 마음을 조여 오는 일들이 생길 테지만 초조해하거나 조급해하지 말고 그저 쉬어서 '나'를 모두 충전하고 나면 새로운 길이 보일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때는 그저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형님도 겪었던 일이었겠구나 싶었다.
왜 먼저 경험한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내가 겪고 나서야 꼭 아차 싶은 건지.
아마 나도 겪어봐야만 믿는 아저씨가 되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는 매일 쉬고 있음에도 더 쉬고 싶다. 쉬고 있음에도 쉬고 싶은 건 '나'라는 사람이 충전되고 있지 않기 때문일 거다.
사십 년이나 같은 몸뚱이를 써왔다. 쇠로 만든 자동차도 이십 년 쓰면 정말 오래 썼다고 하는데 당연히 내 몸과 정신이 멀쩡할 리 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가족이, 연인이, 소중한 사람들이, 소중한 것들이 지탱해 주기에 더 오랜 시간도 몸과 정신을 쓸 수 있는 거겠지.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는 조금 망가져있다.
네게 소중한 것들을 만들고 네가 즐기는 취미를 만들어라.
많이 들어왔고 신입들에게 많이 해주기도 했던 말이다.
다만 내가 일했던 마트 계열에서는 몇 번이나 더 강조를 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내게도 취미는 있다.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글 쓰는 것도 좋아하며, 친구들과 술자리 하는 것을 좋아하고 드럼 두들기는 것도 재미있어한다.
일과가 끝나고 취미생활을 즐기고 그것에서 현실을 살아갈 힘을 얻는 것. 모두가 추천하는 건전한 삶의 방식이다.
다만 점점 회사에 내 비중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쉬는 날에도 몇 번씩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실시간으로 고객이 들어오는 마트의 특성상 전화를 받지 않으면 마트에서의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
함께 일한다는 것은 그런 거다. 회사는 돌아가고 나는 그것의 구성품으로 앞에서 했던 나의 업무를 뒷사람에게 이어주어야 할 의무가 생기는 거다. 책을 읽다가도,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도, 드럼을 치다가도, 가족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도.
집에 가서 전화를 받지 않으면 그거대로 마트는 또 돌아간다. 다만 인수인계가 되지 않은 만큼의 시간과 노력에 대한 원망은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오겠지. 이걸 잘 견뎌내는 사람은 문제가 없다. 다만 나는 '무책임'이란 말을 너무 싫어하기에 오는 전화를 모두 받아야 했다.
여기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나는 한 번에 한 가지의 일 밖에는 하지 못하는 유형의 사람이라 사석에서 회사 전화를 받으면 모든 신경이 그쪽으로 쏠려버린다. 몇 분 혹은 몇십 분 동안 전화를 붙잡고 그 일이 해결된 이후에나 내 일을 할 수 있었다.
글쓰기에 집중이 되지 않고 드럼을 치다 리듬을 잃었다. 술만 자꾸 늘었다. 술을 마시고 쓰러져 잠들고 숙취에 끙끙대다가 출근하고. 퇴근 전에 최대한 자세하게 인수인계를 한다. 한 번이라도 전화가 오지 않는 날은 행복한 날이고 아무리 전화를 해도 해결이 되지 않아 다시 출근하는 날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니 취미에 대한 흥미가 시들해졌다. 어차피 전화 오면 흐름 끊길 거.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드럼도 그만두었다. 언제 전화가 올 지 모르는데 연습실의 드럼소리는 너무 시끄러웠다. 쉬는 날이면 거의 잠만 잤다. 자다가도 전화를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퇴직할 때 그저 쉬라고 말해준 형님이 다가와 슬쩍 말해주었다. 내가 취해서 전화를 받지 못하면 다른 관리자들에게 전화를 해서 해결한다고. 내가 화를 내지 않으니 편해서 일순위로 내게 전화를 하는 것뿐이라고.
내가 없으면 마트가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전화를 해대지만 사실 관리자 중에서 내가 가장 전화를 잘 받고 적극적으로 대처를 해주기에 습관처럼 연락할 뿐이라고.
형님에게 이야기를 듣고 나서 이것도 일종의 가스라이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면서도 전화를 꺼버리지 못했다. 전화가 오면 받았다. 취미마저 잃은 내가 쓸모를 증명받을 수 있는 것은 회사뿐이었다. 다만 어떤 목적 없이 내가 걸려든 가스라이팅일 뿐이었다. 그리고 '혹시나'하는 나 혼자만의 걱정뿐이었다. 내가 없다고 해서 마트에, 회사에, 세상에 어떤 문제가 생길 리 없었다.
오늘 전 직장 동료 형님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한 스푼이라도 걱정을 덜어내면 회사에 매달리기 이전처럼 오늘을 조금 더 즐길 수 있을까? 다시 '나'를 충전할 수 있을까?
제대로 쉬는 것에는 조금 더 노력이 필요한 모양이다.
'나'에 대해서 더 알아봐야 하고 쉬는 것도 더 노력해야 하고 뭔가 퇴사 이후에 더 바빠지는 기분이다.
일을 할 때에는 매뉴얼이나 선임들에게 물으면 됐는데 삶은 물어본다고 정답이 나오는 게 아니라서 그저 노력하는 수밖에.
우리는 휴식을 두고 두 가지 혼재된 감정을 느낀다.
휴식을 동경하면서도 휴식이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아닐까 불안해한다.
내 인생의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지 못할까 봐 불안에서 놓여나지 못한다.
- 출처 클라우디아 해먼드, 『잘 쉬는 기술』, 웅진 지식하우스, 2020, 「프롤로그」중에서
조금 더 자신을 믿어야 한다. 게으름 좀 피우고 푹 쉰 후에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괜히 신경 쓰여서 전전긍긍하다가 잠을 설치고 낮에 피곤해하느니 그냥 내내 푹 자고 좋은 상태로 일을 하는 게 훨씬 낫다.
나도 안다. 아마 초등학생도 알걸? 근데 잘 안된다. 자면서도 불안하다. 자다 깬다. 그렇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웃긴 건 불안도 습관이 된다는 거다. 그런 습관 들면 마흔 아저씨 돼도 자다 일어나서 집안 순찰 한번 돌고 다시 자게 된다. 이 글을 쓰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하다. 가만히 심호흡을 한다. 조금 침착하게. 그리고 느긋하게. 주문처럼 외운다. 이제 내게 전화 올 곳은 없다.
조금, 아주 조금 마음이 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