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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로 Aug 31. 2022

시시포스처럼 끊임없이 정신승리

오늘도 무사히




도전 - 거절 - 좌절 – 퇴고



짧게는 삼 년에서 길게는 십 년 이상(혹은 영원히), 작가 지망생은 이 과정을 무한 반복한다.  지망생의 시간은 시시포스의 형벌이나 마찬가지다. 과연 내가 글이라는 바위를 아무 보람도 없이 긴 세월 동안 굴릴 수 있을까. 장벽은 하늘로 치솟아 올랐고 자신감은 끝없이 굴러 내려갔다.




다시 우울증이 반가운 얼굴로 나를 와락 안았다. 사회 불안증 환자에게 우울증은 흔한 동반질병이다. 일상에서 불편을 겪으며 낮아질 대로 낮아진 자존감은 우울감을 쉽게 불러일으킨다. 이미 보통의 사회생활을 포기한 사람인데, 혼자 할 수 있는 일조차 없었다. 아무것도 못 하는 너란 사람이 대체 왜 먹으며, 왜 싸며, 왜 숨을 쉬는가. 좌절감은 삶을 유지해야 할 이유를 잃게 했다.           






   

“에세이를 써 보면 어떨까요?”


3년 만에 친 SOS에 흔쾌히 응한 상담사 선생님은 나의 실패담을 다 듣고 난 후, 조심스레 제안했다. 소설이나, 시나리오 같은 건 고도의 정신력과 집중력이 필요한데, 우울 상태의 내 머리는 그걸 소화할 수 없었다. 고장 난 뇌에는 재활이 필요했다. 그녀는 일단 짧은 글부터 써 보자고 독려했다. 내가 겪은 고통이 글감이 될 거라며, 자원이 풍부하다고도 격려했다. 그리고 몇 개의 규칙을 정했다.



미래를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당장 할 수 있는 것만 생각한다

목표는 10년으로 잡고 서두르지 않는다

혼신의 힘을 다해 쓰지 않는다

짧은 글을 자주 써서 루틴을 만든다



그렇게 이 에세이가 시작되었다. 불과 몇 달 전의 일이다. 매일은 아니지만, 자주 쓰려고 노력하자 자연스레 책상 앞에 앉는 시간이 길어졌다. 일정한 루틴이 생겼다. 그것만으로도 어쨌든 뭔가는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사회 불안증은 10년 전, 생의 가장 찬란한 시기에 나를 무너트렸다. 치료는 장기적으로 큰 지출을 요하고, 완치를 보장할 수도 없다. 정신과를 다니며 치료를 받았지만 들인 돈과 시간이 무색하게도 쉽게 재발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사회 불안증을 그저 내 성격적 특성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것뿐이다. 밖에 나갈 수 없으니 오늘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앞으로도 처참한 결과와 보이지 않는 앞날 때문에 다시 우울과 싸우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쓸 수 있는 동안에는 최소한 우울하지 않다. 우울하지 않으면 계속 쓸 것이고, 우울해지면 잠깐 쉬어가면 된다. 먼지 나게 맞다 보면 맷집도 생긴다는데, 내 상처에도 굳은살 정도는 박히겠지.




유명 작가들의 삶 역시 치열했다. 지겨울 정도로 실패를 겪었고, 자질 부족이라며 자신을 공격하는 마음의 소리에 고통스러워했다. 절규에 가까운 그들의 과거에서 나는 위로를 받았다. 현직 작가들의 지질한 실패담이 가득한 에세이를 읽고 나면 ‘나도 언젠가는…’이라는 희망 회로가 다시 돌아갔다. 권위적인 상을 받은 작가조차도 새로운 책을 쓸 때는 과연 자신이 작가를 계속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고 한다.




어차피 좌절이 많고 힘든 길이라면, ‘헛된 희망’이라도 품고 다녀야 이 짓(?)을 계속할 수 있다. ‘언젠가는’이라는 희망이 없다면, 이 길을 갈 이유도, 지속할 능력도 사라지니까. 그렇게 나는 오늘도 망상에 가까운 헛된 희망을 품고 아무 말을 모니터 위에 지껄이고 있다. 대체 ‘성공의 어머니’는 왜 나를 그토록 열렬히 사랑하는 것이냐며.     




오늘도 보잘것없는 *망생이지만, 정신승리를 하며 하루를 여닫는다.           



*망생이: 작가 지망생의 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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