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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때기 원정대

by 수에르떼 Feb 10. 2025

결혼 준비를 시작하며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바뀌었다.

결혼 준비 과정, 드레스 고르는 방법,

결혼 전 신부 관리 등등 여러 영상을 보다 보니

AI는 내가 예비신부라는 걸 알아챈 듯

각종 결혼에 관련된 영상을 띄워 줬다.


결혼 전 예비 신부들이 관리하는 모습을 보니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피부 관리는 기본이고 경락 마사지에 각종 시술까지…

인생의 한 번뿐인 결혼식, 주목받는 그 순간을 위해

다들 정말 진심으로 열심히 관리 중이었다.


그럼 나는?

나는 정말 자연인 그 자체로 지내고 있었다.

양심상 다이어트를 하고 있긴 했지만

그건 입으로만 하는 다이어트에 불과했다.

퇴근 후 그분과 헬스를 하고 있었기에

약간 소식만 할 뿐이지 먹고 싶은 건 다 먹었다.




엄마는 웨딩드레스를 입어야 하는데

이렇게 관리 안 하면 어떡하냐고 걱정을 하셨다.

내가 너무 생각 없이 지내고 있었던 거다.

웨딩드레스 입을 내 몸뚱이는 생각도 안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거다.


순백의 웨딩드레스.

너무나도 예쁘고 우아한 옷이지만

날씬한 사람도 통통해 보일 수 있다는 마법의 옷.

내가 그 드레스를 입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웨딩촬영용 드레스를 고르러 가야 할 날이

다가오고 있는데 이렇게 편하게만 지낼 순 없었다.


그리하여 시작된 제대로 된 다이어트.

지난가을부터 퇴근 후 저녁을 먹지 않고 그분과

헬스를 함께 했다. 공복 운동이 체지방 태우는데

좋다고 해서 그리 하고 있었다.




그분과 함께 헬스를 하니까 데이트 연장선 같았다.

그분이 운동 기구 쓰는 법도 알려주고

의지가 흐트러질 때 잡아줘서 정말 고마웠다.

서로 의기투합하며 운동하니까 효율도 더 올라갔다. 그렇게 헬스장을 나오면 엄청난 허기가 몰려왔다.


거리를 지날 때마다 돼지고기, 치킨, 만두의 향이

내 코를 자극했다. 이렇게 열심히 운동했는데 음식의

유혹에 빠질 수 없었다. 혼미한 정신을 바로 잡고

그분과 함께 집 근처 파리바게트로 갔다.


샐러드 코너로 직행해서 뭐가 있나 살펴봤는데

이게 무슨 비극이란 말인가. 샐러드가 품절이었다.

안돼!!! 나의 저녁은 샐러드여야만 한단 말이다!!!

내적 비명을 지른 후 나는 비장한 표정으로

그분께 다른 파리바게트로 가자고 말했다.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샐러드를 찾아 나섰다.

이름하야 풀때기 원정대였다.

우리는 샐러드를 찾아 떠나는 풀때기 원정 대원이

되었다. 그분도 배가 고팠을 텐데 불만 없이

그 여정을 함께 해줘서 고마웠다.


그 이후로 풀때기 원정대를 한다는 말은

샐러드를 사러 간다는 우리만의 은어가 되었다.

샐러드를 계속 먹는 게 생각보다 물리긴 했지만

웨딩드레스를 입은 내 모습을 생각하며 꾹 참았다.


하지만 또 어떤 날은 무슨 부귀영화를 보려고

이렇게까지 하나 싶어서 현타가 오기도 했다.

그럴 땐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기나긴 다이어트를

이어나갈 힘을 얻곤 했다. 내생에 첫 웨딩드레스를

입는 날, 풀때기를 먹은 보람이 빛을 발하길 바라며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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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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