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되어 남긴 글 한 편이 없음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젊음은 우리를 무기력한 바쁨으로 몰아넣는다.
종강을 맞아 바쁨이 사그라들 때쯤, 소설을 한 편 쓰기로 했다. 청춘에 대하여, 참과 거짓에 대하여, 불확실성에 대하여, 대학생이라는 신분의 애매함에 대하여. 그걸 써보겠다고 동아리나 인턴, 워크숍, 공모전 등의 자기계발을 등졌다.
실상은, 그런 일들을 벌리는 게 성가셔서 소설을 쓴다는 핑계를 댄 것이다. 한량처럼 한 달가량을 보내고 직감했다. 이 소설은 완성될 리 없다고. 오만이었다. 내로라하는 작가들도 저만의 공간에 갇혀 문장을 짜내는데, 생활인으로 살아가며 번듯한 소설 하나를 써내고자 하는 것은 무슨 욕심인가. 짤막한 단상은 여럿 떠올랐지만 그것을 하나의 서사로 엮어내기에는 한참 부족했다.
이제야 본인의 한계를 실감한 어리석은 한량은 늦을세라 책과 영화를 게걸스럽게 소비한다. 큰 비용 없이 포만감을 주는 가성비 좋은 녀석들. 그리고 뭐라도 남겨야 한다는 현대인의 고질병이 다시 도져 글을 쓴다. 거대한 점토덩어리를 한 움큼 떼어 아이를 잉태하듯. 하나가 되어야 했던 생각의 파편들을 열심히 사포질하면, 또 그런대로 볼만하겠다는 은근한 자신감.
매몰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은 있다. 그러나 공든 탑을 무너뜨린다는 좌절감은 없다. 나는 언제든 나를 무너뜨릴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선재 이야기를 쓰는 건 너무 힘들었다. 내가 주인공일 때 가장 쉽다. 그 많은 소설가들에게 존경을 표하며 나는 계절특선으로 만족하련다.
18.07.24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