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취향으로 된 공간을 갖고 싶어요
눈과 불길 속에 무너지고
포기하라며 날 비웃어도
멈출 수 없어
이미 나를 움직이게 한
소원이 내 안에
- 스텔라장, 뜻밖의 여정
늘 바라오고 생각해 왔건 아닌데, 돌이켜보면 '내가 그걸 원했었던 거구나'를 알게 되는 순간이 있다. 때는 2023년 여름, 지인이 기획한 모임 겸 행사가 있다고 해서 다녀왔었다. 음악을 듣기도 하고, 디제잉 체험을 해보기도 했고, 문화 기획 프로젝트이니만큼 서로의 꿈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는 대화 세션이 있었다.
정확하게 그때 어떤 주제와 어떤 질문들이 오갔는지는 다 기억나지 않지만,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자신의 버킷리스트, 즉 꼭 이뤄보고 싶은 꿈에 대해 돌아가면서 말했다.
저는 온전히 저의 취향으로 된,
저만의 공간을 꾸리고 싶어요.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이 먼저 나왔다.
그리고 말은 생각보다 힘이 크다.
그 이후로 '나만의 공간 만들기'는 나의 공식 버킷 리스트에 등재(?)되었다. 그리고 꾸준히 음악 모임장을 여러 번 하고, 다른 경험들을 하면서 그 꿈을 좀 더 구체화하게 되었다. 왜 공간이 필요한 지에 대해서도 스스로 체감하고 있었다. 내 공간이 있다면 사람들을 모아 좀 더 내가 하고 싶은 모임들을 기획해 볼 수도 있고, 재미난 일들을 마음껏 벌일 수 있고, 또 타로 상담을 포함해 내가 구상하고 있는 음악 처방 서비스도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2024년이 되고, 머릿속으로는 어떤 어떤 조건의 공간이면 좋겠다는 것들을 그려보기 시작했지만 직접 발품을 팔아서 매물을 보고, 부동산에 가고, 네고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특히 조건이 맞는 공간을 발견한다고 해도, 내가 어떻게 인테리어를 하지?라는 생각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누군가와 함께 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큰돈을 들여서 전문가와 상담하기도 부담스러웠기 때문. 이런 생각들을 주로 하다가, 그 당시에는 넷플연가 모임을 진행해오고 있었기에 일단 해오던 모임들을 잘 마무리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 고민으로 타로 상담도 받았었는데, 당시 새로운 일을 진행하기에는 여유가 없으며 2025년에 개인 사업을 진행할 때 모임 공간을 여는 게 좋겠다는 풀이를 받았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결과론적이지만 역시 사람은 마음 가는 대로 하게 되며, 생각보다 얻어걸리는 일도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얻어걸린다는 것의 의미는, 무의식 속에서 내가 줄곧 생각해 오던 것이 나의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슨 말인고 하면, 나는 일기를 꾸준히 쓰며 연간/분기별 계획도 꼼꼼히 세우는 편이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내 일기장에는 '나만의 공간 계약하기'가 제법 자주 목표로 등장했다. 2025년에는 아예 연간 목표로 격상(?)되었고, 실제 나만의 공간이 필수적이었다. 더 미루지 말고, 2025년에는 거창하게 말하면 내 브랜드를 론칭하려고 했고, 솔직하게 말하면 하고 싶은 일을 시도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내가 원하는 작업실(공간)의 조건을 적기도 하고, 웹으로 어떤 매물들이 나와 있는지 탐색하기 시작했다. 일단 공간이 있어야 그다음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던 때였기에 빠르게 실행하고 싶었다.
대략 아래와 같은 조건으로 탐색.
ㆍ면적: 6명 정도 들어가는 공간, 5평 이상
ㆍ예산: 월세는 최대 ##만원까지
ㆍ화장실은 건물 내에 (가급적 직접 관리할 필요 없는 곳)
ㆍ지하 X
ㆍ주변이 너무 술집이 많거나 번잡스러운 곳들은 제외
ㆍ인테리어는 최소화하는 방향
첫 번째 공간은 감도보다는 일단 공간 형성에 의의를 두자는 목표였다. 그러나 인테리어가 필요 없는 곳은 권리금이 붙었고, 거리나 환경이 마음에 드는 곳이면 (당연하게도) 예산 초과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정말 우연히 당근을 보는데 나의 눈을 사로잡는 글을 발견했다. 하트도 이미 많이 찍혀 있어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나에게는 글 쓴 분이 올린 사진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개인 작업실과 소규모 모임 용도로 사용했던 공간이고 개인 사정으로 나가게 되셔서 다음 세입자를 직접 구한다고 하셨다. 찜찜하지 않았고, 예산 조건도 맞았다.
바로 글 쓴 분께 연락드려서 공간을 보러 가기로 했다. 심지어 문래역 인근. 문래동에서도 골목 쪽은 아니고 대로변이라서 굉장히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보러 간 게 4월 경이었는데, 산들바람이 불며 커튼이 펄럭이던 게 기억난다. 보자마자 '아 너무 좋다'라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공간이 너무 따뜻하고,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경쟁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양도해 주시는 분께 마구 어필..... 제가 책상 살게요... 이사일도 무조건 맞춰드립니다...
그리고 그날 돌아가서 조금 더 생각해 본 다음, 저녁에 바로 계약하고 싶다는 연락을 드리고, 차차 진행이 되었다. 그리고 나의 어필이 통했는지(?) 다행히 내가 양도받게 되었고, 이런저런 협의와 건물주분과의 조율과 등등을 거쳐서 무사히 입주(?)하게 되었다.
그렇게 얼레벌레 이뤄버린 버킷리스트. 그렇지만 계속 마음에 두고, 생각하고, 원했기에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 모습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좋은 공간이 나왔을 때 망설임 없이 선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원하는 삶의 방향에 대해 늘 쓰고, 말하려고 한다.
계약을 하고 돌아가는 날, 버스 안에서 들었던 음악과 그 순간이 기막히게 맞아떨어졌다. 이건 운명이야...
불어라
오래된 바람
날 데려다주길
한 걸음 한 걸음
더딘 나날 지나서
보이지 않는 산의 저편에
- 스텔라장, 뜻밖의 여정
그래, 나의 여정은 이제 시작이지라는 기대감.
한편으로는 잘 해냈다는 뿌듯함.
정말 온전히, 내가 '하고 싶어서'라는 이유로 하는 일들.
남은 건 나에게 달려있다.
청소년 시절부터 대학생활, 지난한 취업준비 과정을 거쳐 험난한 사회초년생 시절까지. 나를 버티게 해 준 팔 할은 음악이었다. 하루하루 지친 일상에서 음악을 부여잡고 다시 일어나고, 기대했다. 때론 그냥 흘렸다. 그리고 이런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게도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을 시켜주지 않는다면]
00. Prologue
01. 벅스 뮤직PD가 되던 날
02. 그래, 이걸 해야겠어!
03. 먼 훗날 완성될 나의 점묘화
04. 가벼운 재능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