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3층으로 가는 거야!
경기도 포천에 할렐루야기도원이라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수천 명의 신도들이 있었고 안수기도를 했는데 그야말로 ‘피 튀기는’ 기도였다. 매독균에 감염이 되었다는 주장이 있었을 정도로. 이런 제보를 접한 <PD수첩>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백종문 피디가 취재했다. 제보자들에게 얘기를 들었고 현장에 잠입했고 다각도로 들여다본 내용을 정리하여 시청자들에게 보여줬다.
<PD수첩>은 시의성이 중요한 프로그램이라 밤 11시 방송 당일 저녁에 스튜디오에서 녹화를 한다. 심한 NG를 냈다거나 알고 보니 오판이었다는 사실만 생기지 않으면 녹화분에서 약간만 편집을 거치면 몇 시간 후에는 방영되는 것이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스튜디오 녹화를 마치고 그날 밤 11시에 방영됐다. 그 날 녹화를 마치고 우리 제작진은 회식을 했을 수도 있고 그냥 헤어졌을 수도 있다.(어제의 일도 기억나지 않는 게 다반사다.)
그런데 다음 날, 출근을 하기 위해 여의도 문화방송 사옥을 향하던 내 눈과 귀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여의도 MBC 사옥 바로 옆에는 꽤 큰 골목이 있다. 목화아파트까지 이어진, 지금은 공영주차장으로 양쪽을 사용하고 있는 그 길에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 시위를 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약 4천 명 정도였다. 포천 할렐루야에서 목회자들과 신도들이 몰려온 것이다. 이유는 빤했다. 전 날 우리가 방송한 <PD수첩>에 대한 항의였다.
종교 탄압하는 <PD수첩> 규탄한다!
MBC는 사과하라!
사탄 백종문은 사과하라!
이런 내용을 담은 플래카드들이 여기저기 걸렸고 전경들이 쫙 깔렸고 기도와 구호가 난무한 거친 시위대가 MBC를 포위했다. 당연히, PD수첩 제작진들은 대책 마련에 들어갔고, 일개 막내작가였던 나의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차례의 긴급회의들이 교양제작국과 사장실 등에서 있었을 거다. 당시 취재한 피디는 물론 피디들과 작가진들의 의견은 ‘문제 될 것 없음’이었다. 제보를 받아 취재를 했고 합리적으로 의심할 만한 여러 정황과 팩트들로 구성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마도 그 날이었을 것이다. 사과방송을 하라는 결정이 내려진다. 잘잘못을 떠나 일단 불부터 끄자는 의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4층 휴게실에 모인 피디진과 작가진은 그러한 결정에 대해 울분을 토했다. 왜 잘못한 취재가 아니었는데 사과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성토가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메인 진행자 김상옥 피디가 사과방송을 했고 사태은 진정된다.
이 사태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내가 그런 결정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PD수첩>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PD수첩>이 있는 4층 교양제작국에서 한 층 아래에 있는 3층으로 내려갈 방법을 찾아보자는 생각을 하고 실천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바로 예능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간절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주는 건가, 얼마 후 그런 일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