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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뽁이 May 31. 2024

6. 독립을 준비하며

착한 딸 파업 12편

 내 둥지 찾기

 새 직장 최종 합격 소식을 듣고 부모님께 독립하겠다고 말씀드린 후 본격적으로 독립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작년부터 자취를 시작하게 되면 무조건 직장 근처로 얻겠다고 생각했었다. 장거리 통근을 수년 동안 한 끝에 건강을 잃어본 적 있는 내게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게 직장 근처의 원룸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수도 없이 검색하며 좋은 방 체크리스트를 출력하고, 보증금과 월세 예산을 구체적으로 정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리고 총 세 군데의 부동산을 정해 전화로 방 보러 가기 예약을 잡았다.

 

 첫 번째 부동산 사장님은 친절했지만, 너무 많은 방을 보여줘서 혼란스러웠다. 무조건 계약을 따내려는 의지가 활활 타올라서 부담스러웠다. 방을 대여섯 개쯤 볼 즈음에 원하는 조건을 넌지시 말했지만, 사장님은 제대로 듣지 않으셨다.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는 방도 여럿 포함해 거의 열 군데는 넘게 방을 본 것 같다. 그나마 괜찮다고 생각한 방은 세 개 정도였다. 그렇게 후보지를 정했지만, 기분은 영 찝찝했다.


 두 번째 부동산은 내 또래의 사장님과 직원들이 일하는 곳이었다. 경력이 적어서인지 설명이 횡설수설했고 매물도 많이 갖고 있지 않은 듯했다. 직원은 나에게 원룸을 보여주면서 수시로 부동산 사무실에 연락을 취해 매물을 찾아달라고 이야기했다. 사전에 분명히 원하는 조건의 매물을 이야기해놓았는데, 허둥대는 모습을 보니 준비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두 번째 부동산은 미덥지 않아서 계약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세 번째 부동산은 사장님께서 여유로운 태도로 임해주셨다. 내가 원하는 매물 조건을 말씀드리자, 약도를 보여주며 대략적인 위치를 먼저 알려주신 후 딱 두 군데 정도만 보여주셨다. 내가 말하는 조건에 부합하는 곳만 보여주시고 설명도 꼼꼼하게 해주셔서 믿음이 갔다. 그렇게 이 부동산을 통해 계약하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총 세 군데의 부동산을 다니며 나름대로 많은 것을 배웠다. 내가 원하는 것을 알려면 경험치가 쌓여야 한다는 것이다. 매물들을 보기 전에는 막연했던 내가 원하는 원룸의 모습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구체적으로 바뀌었다. 사실 처음에는 무조건 보증금과 월세가 저렴한 곳을 가고 싶었다. 그러나 매물들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리모델링도 되어 있지 않고 반지하인 곳은 월세가 20만 원대로 저렴했지만,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못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결해 보이는 느낌에 치안 문제도 걱정되었다. 해가 들지 않아 어두침침한 탓에 잠시만 있어도 울적해졌다. 나는 최소한의 안락함을 누리고 싶어서 월세가 조금 높아도 깔끔하고 해가 잘 드는 방을 찾기 시작했다. 더불어 짐을 많이 가져올 생각도 없고 이사 비용도 최소화하고 싶어서 풀옵션 방을 찾았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계약한 원룸은 남서향이라 낮에 해가 잘 들고 창이 커서 개방감이 있었다. 더불어 월세가 예산을 조금 넘었지만, 보즘금은 생각한 것의 절반이었다. 무엇보다 월세에 수도세, 전기세 등 모든 공과금이 포함되어서 좋았다. 나는 식단 관리를 하느라 집에서 요리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것을 꼼꼼하게 따져가며 고르고 고른 집에 이삿짐을 옮기니 감회가 새로웠다. 무엇보다 결정권을 가졌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내 삶을 내가 통제하는 기분, 그렇게 나에게 필요하고 원했던 자기통제감을 크게 느낀 순간이었다.     


밤잠을 설친 날들

 설렘도 있었지만, 오롯이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는 불안도 컸었다. 원룸 계약을 앞둔 날, 본격적인 이사를 하기 전날에는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자취를 처음 해보는 것도 그렇지만, 본가에서 부모님이 해주던 것들에 익숙해진 내가 과연 혼자서 모든 것을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되었다. 청소, 빨래, 설거지, 식사 등 모든 살림을 한다는 것이 기대되면서도 두려웠다. 그동안 가족들 몫까지 4인 살림을 해왔지만, 이제 1인 살림을 하게 되어 조금 수월할 것이라는 기대 반, 바뀐 환경에서 얼마나 살림을 잘 해낼지 하는 두려움 반이었다. 혹시 직장이 너무 바쁘기라도 하면 본가에 있을 때보다 더 힘들어질지도 모른다는 현실적인 고민도 있었다. 또 경제적인 여건이 더 좋아질 가능성은 낮았다. 이미 취직이 확정된 직장의 월급 수준은 뻔하게 알고 있었고 부업으로 돈을 버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걱정이 포기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내 발자취를 돌아보며 강해진 나를 믿어보기로 했다. 자취뿐만 아니라 내 인생에는 실패가 많았다. 가고 싶었던 대학에 떨어졌고, 임용고시에 낙방했고, 한 직장을 꾸준히 다니지도 못했으며, 글로 크게 성공해본 적도 없다. 그러나 나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곤 했다. 1순위는 아니었지만, 괜찮은 대학에 들어가 나름대로 대학 생활을 즐겼다. 임용고시는 떨어졌지만, 또 다른 꿈을 찾을 수 있었다. 여러 직장에 다닌 덕분에 경험치가 쌓여서 창업도 해볼 수 있었다. 글로 크게 성공해본 적이 없어서 아직도 나는 글이 좋고 큰 부담 없이 글을 쓰고 있다.


 어떤 일이든 양면성이 있다. 실패라고 생각했던 일도 돌이켜보면 성공으로 볼 수 있고, 또 원하던 것을 이뤘어도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저 그때의 상황에 맞게 살다가 보면 자연스럽게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넘어져도 또 일어나겠다는 마음으로, 어떻게든 나아질 거란 믿음으로 자취를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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