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시카고 여행
삐래)
시카고 에피소드를 말하기 앞서 이 씨 자매들을 간단히 소개하겠다. 루나 언니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여유의 끝판왕. 철없는 막냉이 같은 맏딸이자 감정이 풍부한 낭만주의자. 이뽈은 가성비와 효율성을 중시하는 프로계획러. 책임감 넘치는 K-장녀 같은 둘째이자 공감보다 해결이 먼저인 초현실주의자. MBTI도 정반대. 같은 집에서 살았어도 성향이 100% 다른 그녀들과 여행하는 건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시카고 하면 생각나는 1순위는 시카고 피자였고, 우리의 첫끼는 치즈가 두툼하게 들어 있는 시카로 피자로 결정했다.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가 있을 때, 맛있게 먹었던 시카고 피자를 현지에서 먹게 되다니. 한껏 들뜬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밀가루 음식 킬러 루나 언니는 특히나 더 신나 있었다.
너무 기대했던 탓일까. 양은 엄청 많은데, 우리 입맛에 굉장히 짰고 소스도 안 맞았다. 코리안 스타일 시카고 피자 만만세. 헤비한 음식을 먹으면 속병이 나고 마는 연약한 위장의 소유자인 루나 언니. 아니나 다를까. 결국 체하고 말았다. 혈자리를 꾹꾹 누르며 소화하려 애쓰는 언니를 보며 이뽈은 ‘으이구 이 웬수야 적당히 먹으라 했지’라며 혀를 끌끌 차더니 잔소리 시작. 호주에서부터 자주 봤던 터라 낯설지 않았다.
시카고 미술관은 미국 3대 미술관으로 꼽힐 정도로 작품의 수도 많기도 하고, 여러 세대를 걸쳐 사랑받은 작가들의 유명한 작품들이 전시되어있다. 이뽈과 나는 미술 작품 감상하는 것을 좋아하여 이 일정을 기다렸던 반면 루나 언니는 전혀 관심 없어했다. 그녀는 하루하루 목적지가 어디인지 모르고 쫄래쫄래 따라오기 바쁜 사람이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는 일정이라 아침잠이 많은 두 자매들은 날이 곤두서 있었다. 가기 싫다고 차마 말하진 못하고 시위하듯 뭉그적뭉그적 준비를 하는 루나 언니.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이뽈은 한숨을 푹푹 쉬더니 미간이 찌푸려지다가 점점 얼굴이 새 빨개지며 활화산이 되어간다. 3, 2, 1. 드디어 터졌다.
“이루나!! 빨리 준비하라고!!! 어제 미술관 간다고 말했지?!!”
좌불안석이 되어 루나 언니의 준비를 도왔다. 그제야 언니도 나에게 미안했던지 서둘러 준비를 하고 밖을 나섰다. 언니의 모습은 도살장 끌려가는 소 마냥 가는 내내 발끝을 끌고, 한걸음 한걸음이 무겁다 무거워. 미술관 입구에 도착해서 미술관 대신 카페를 가겠다고 선언했다.
두 번째 활화산 폭발 직전. 참는 게 보인다. 이뽈은 언니를 설득하기 위해 시카고에 온 이유, 미술관과 소장품에 대한 설명 등 이곳을 방문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열거했다. 그러나 돌아온 언니의 표정은 ‘응, 안 들린다 안 들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다. 난 분위기를 감지하고 눈알을 좌우로 돌린다. 잠자코 이 상황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사실 아침부터 지금까지의 상황이 도무지 이해 되질 않았다. 계획할 때부터 미술관 일정에 대해 이의를 재기할 수도 있었고, 아침에 루나 언니가 안 간다고 하고 아예 숙소를 나서지 않았을 수도 있었고, 카페를 간다는 언니에게 알겠다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이뽈은 왜 미술관을 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고 끊임없이 설득을 하고 그걸 또 루나 언니는 왜 듣고 있는가.
결국 두 손 두 발 들고 이뽈은 언니에게 카페에 가라고 카드를 쥐어준다. 갑자기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났다. 루나 언니가 순순히 우리를 따라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이야. 단호하게 카페를 가겠다던 언니는 어디로 가고 없었다. 쫄래쫄래 따라오는 언니를 장하다고 생각하는지 흐뭇하게 엄마 미소를 짓는 이뽈. 진짜 이 관계성 뭐지?
각자의 시간을 갖고 작품을 감상하기로 했다. 감상하는 동안 중간중간 자매를 보고 있노라면, 초딩이 따로 없다. 서로 장난치고 그림에 대해 속닥속닥 거리며 얘기하며 웃고 즐긴다. 아까 20분 전에 싸운 거 아녔나요? 미술관을 나오면서 3명 모두 대만족. 어제 그렇게 고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점심메뉴는 햄버거를 외치는 언니. 또 싸움 시작이다. 절대 알 수 없는 자매들의 세계다.
‘시카고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라고 묻는다면, 단언컨대 시카고 피자 NO. 미술관 NO. ‘오로지 이씨자매를 관찰하고 이해해보려 바빴던 도시입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