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by bbulddae

"인간은 하나의 연약한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자연 중 가장 약한 존재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그를 무찌르기 위해 전 우주가 무장할 필요는 없다. 한 줄기의 증기, 한 방울의 물만으로도 그를 죽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무찌른다 해도 인간은 자기를 죽이는 자보다 더 고귀하다. 왜냐하면 ..."


인간은 하나의 연약한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자연 중 가장 약한 존재다. 그러나...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그러나'에서 모든 사건이 발생한다. 변화는 '그러나'에서 일어난다. 나도 '그러나'에서 울었다. 어릴 때부터 흔하게 들어온 이 말이 그날은 왜인지 귀에 박혀 내 모든 걸 뒤흔들어놓았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에 이르자, 종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손잡이를 잡고 서있던 내 눈에서 앞사람 옆사람 눈치를 볼 새도 없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 뭐지. 나 왜이러지. '팡세'라 했던가. 파스칼, 당신 대체 뭐지.




대학을 졸업하고는 갈 데가 없었다. 기자를 하겠다는 목표는 세워놨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목표가 부모님을 당장 만족시키진 못했다. 언론 스터디를 꾸려 일주일에 두어번 모이는 것, 주말 하루 예술의전당에서 일하는 것을 제외하면 나는 갈 데 없는 백수였다. 번듯한 직장이라도 잡았으면, 엄마의 성화를 좀 무마할 수 있었을텐데. 재수까지 해서 간 대학을 나와 백수로 있는 꼴에 속이 터진 엄마는, 예전부터 품어온 욕망을 나에게 투영해 임용고사-라 쓰고 '임용고시'라 읽던 시절. 그만큼 교사란 직업의 인기가 정점에 달했던 때였다-를 준비하라고 강요했다. 한 1,2년 죽어라 하면 그걸 못하겠냐며, 마침 나는 또 왜 대학에서 교직이수를 했던 걸까. 자격요건이 맞아떨어지니 엄마의 강요를 피할 길 없었다. '기자 시험 준비하고 있어요.'라 답했지만 엄마의 화만 돋울 뿐이었다. 기자? 니가 무슨 기자야, 그냥 선생해 선생. 방학있고 시집 잘 가고, 여자직업 그만 한 게 어딨냐. 남들은 하고싶어도 못하는 걸 너는 공부만 좀 더 하면 할 수 있으면서 왜 안한다고 속을 썩이는거야아아아아!!! 종래 엄마의 강요는 무시무시한 윽박으로 돌아왔다. 아무리 거절해도 엄마의 닦달은 수그러들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나를 볶았다. 엄마와 싸우다 지칠 법도 한데, 나 역시 고집을 꺾지 않았다. 다음달에 KBS 시험이 있다. 이번주에 MBC시험을 볼 거다 하며 엄마와의 대면을 피했다. 그러다, KBS 필기시험에 떨어진 날, 엄마는 또 밖으로 내빼려는 나를 붙잡아앉히고 돈을 쥐어주며 말씀하셨다. "제발, 제발 좀 임용고시 좀 준비해. 응? 제발 부탁이다. 이 돈으로 얼른 가서 책 사와. 1년만 죽어라 해봐, 쫌."


2차 필기시험이라도 붙었으면, 또 그 애원을 외면할 명분이라도 있었을텐데. 나는 이제 더 도망갈 곳이 없다는 마음과 매일 화만 내던 엄마가 애원으로 태세를 바꾼 데 당황해 어찌해볼 도리 없이 "네..."하며 집을 나섰다. 그땐 지하철무료신문이 많았던 때라 신문을 집어들고 지하철을 탔다. 어쨋든, 무슨 책을 사든 핑계로 종로 교보문고에 가던 시절이었다. 마음은 한없이 착잡하고 비참했다. 대학시절 내내 학원강사를 하며, 돈도 솔찬히 벌었지만 누굴 가르치는 데에는 진력이 난 상태였다. 가르치는 일은 아무런 매력도, 흥미도 없었다. 나보다 잘 난 사람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세상 문제를 공부하고 취재해 글로 쓰고 싶었다. 그런 일을 하기엔 지금 내가 얼마나 부족한 지, 무엇이 부족한 지도 알지 못한 채 언론사 방송사 시험에 번번이 떨어졌다. 서류, 필기, 실무진면접, 사장면접-까지 정말이지 다채롭게 모든 전형을 골고루 떨어져봤다. 정말, 나는 아닌걸까... 자괴감과 열패감, 결국 엄마에게 졌다는 무력감에 내 속은 엉망진창이었다. 그저 펼친 무료신문 한귀퉁이에 칼럼이 있었다. 파스칼의 '팡세'를 소개한 짧은 글이었다.


인간은 그저 하나의 연약한 갈대인데, 그 갈대가 자연에서 가장 위대하다는 파스칼의 말이 어떤 근거인지를 설명해놓은 글이었다. 생각하기 때문에, 자연은 인간을 죽인다는 점조차 모르지만, 인간은 자기가 자연에 의해 죽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위대하다.


이 부분에서 나는 신문을 말아쥐고 하염없이 울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 같았지만 눈물을 참을 수 없없다. 그저, 몇백년 전 멀고먼 땅에 살았던 어떤 철학자가, 지금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응원하는 것 같았다. 생각하라. 생각하기에 인간은 위대하다. 생각해봐. 지금, 네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 어떻게 할 건지.


나는 그 열차를 타고 의도한 대로 광화문 교보문고에 도착했고, 계획과는 다르게 임용고사 문제집이 아닌 파스칼의 '팡세'를 샀다. 그리고 도서관에 가서 그 책을 읽었다. 많은 번역본 중 싼 걸 고른 탓에 번역은 조악했고 본문은 읽기 힘들게 편집되어 있었지만 꾸역꾸역 읽었다. 갈대 부분에 깊이 감동받은 직후지만 그의 책은 오래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지루하고, 어려웠다. 그리고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책을 손에서 놓고 지금까지 하던대로 기자스터디를 계속했다. 엄마는 내가 매일 임용고사 준비를 하느라 도서관에 가는 줄 알았지만 나는 방송사 입사준비를 했다. 약 10개월 후, 엄마는 내가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을 알고 미친듯이 화를 냈고, 그 때까지도 나는 번듯한 언론사에 입사하지 못한 상태였다.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오늘 아침 책장에서 '팡세'를 꺼내와 츨근길에 읽으며, 내가 밑줄 그어놓은 부분을 상기했다. 사실, 이제 와서 읽어도 저 '갈대' 문구를 제외하곤 마음에 와닿는 부분이 거의 없다. 그러나 찬찬히, 읽다보니 몇 가지는 지금의 나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기억할 만한 것 같아 900개가 넘는 단상 중 몇 줄을 여기에 옮긴다. 내 삶을 바꾼 팡세, 파스칼 덕분에 나는 그래도 기자로 일해보았다. 방송사나 메이저 언론사에는 발을 들이지 못했지만, 나는 생각한 대로. 나의 의지대로. 누구의 간섭이나 강요도 뿌리치고-그것이 심지어 내 부모님이었음에도- 내 길을 내가 선택했다. 나의 몇 안되는 자부심 중 하나, 나는 그래도 내 멋대로 살아보았다는 자긍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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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하나의 연약한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자연 중 가장 약한 존재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그를 무찌르기 위해 전 우주가 무장할 필요는 없다. 한 줄기의 증기, 한 방울의 물만으로도 그를 죽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무찌른다 해도 인간은 자기를 죽이는 자보다 더 고귀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가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과, 우주가 자기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알지만, 우주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존엄성은 스스로 생각한다는 데 있다. 우리는 사고에 의해서 스스로를 높여야만 한다. 우리가 모두 채울 수 없는 공간이나, 시간에 의해서가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잘 생각하는 데 힘써야 한다. 이것이 바로 도덕의 근본이다.


348

생각하는 갈대. 내가 나의 존엄성을 구하려는 것은 공간에서가 아니라, 내 사고의 규제에서이다. 내가 아무리 많은 영토를 소유하더라도 그 이상의 것을 손에 넣었다고 할 수는 없다. 우주는 공간으로써 나를 포용하고, 하나의 점인 양 나를 삼켜 버린다. 그러나 나는 사고로써 우주를 포용할 수 있다.


352

인간의 덕이란 그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의 일상에 의해서 측정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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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손도 발도 머리도 없는 인간을 상상할 수 있다. 머리가 발보다 더 필요한 것임을 가르쳐 주는 것은 오직 경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고 믿는다. 만약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돌이나 짐승일 것이다.


340

계산기는 동물의 그 어떤 행위보다도 한층 더 사고(思考)에 가까운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동물도 가지고 있는,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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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시간이 고뇌나 투쟁을 치료해주는 것은, 인간이 변하여 전과 다른 인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모욕을 준 사람도 모욕을 받은 사람도 이미 이전의 그들이 아닌 것이다. 이것은 전에 한 번 분노하게 한 국민과, 두 세대를 지나서 다시 마주하게 되는 것과 같다.

그들은 아직도 프랑스 인이긴 하지만 예정과 같은 프랑스인은 아닌 것이다.


71

너무 많은 술, 너무 적은 술.

그에게 술을 조금도 주지 말라. 그러면 그는 진리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너무 많이 주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64

내가 몽테뉴의 저서 속에서 찾는 모든 것은, 몽테뉴 속에서가 아니라 나 자신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104

우리가 어떤 일에 몰두해 있을 때에는 자신의 의무를 곧 잘 잊어버린다. 예를 들면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일을 해야 할 때에도 책을 읽는 것과 같다. 의무를 상기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무엇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구실을 만들어서 자기의 의무를 상기하기 때문이다.


322

귀족은 얼마나 큰 이득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18세가 되면 이미, 다른 사람들은 50세가 되어야 겨우 얻을 명예와 존경을 얻게 된다. 그것은 아무 고생도 하지 않고 30년이나 버는 셈이다.


355

오랫동안 쉴새없이 계속되는 웅변은 권태를 가져온다. 영주나 왕들은 때때로 오락을 즐기기도 한다. 그들은 항상 보좌에만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 보좌에 권태를 느끼게 된다. 위대성을 느끼기 위해서는 떠나야 한다. 무엇이나 오래 계속되면 사람들은 불쾌해진다. 추위도 몸이 따뜻해져 가면 기분좋은 것이다. 자연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순환에 의하여 움직인다. 자연은 가고 또 되돌아온다. 다음에는 더욱 멀리 갔다가 두 배가 되어서 돌아오며, 그 다음에는 그전보다 더 멀리 가는 것처럼, 바다의 만조나 태양도 이와 마찬가지로 행해지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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