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도 쓰러지지 않는 이유
어릴 때는 사람 인(人)이라는 글자가 왜 그런 모양인지 몰랐다.
사람 인(人). 선생님은 그 모습이 마치 사람이 서로 기대어 사는 모습과 같다고 했지만, 그 말이 몸에 닿지 않았다. 기댄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몰랐고, 기대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도 몰랐다. 혼자 서 있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다. 기댄다는 것은 짐이 되는 것이고, 짐이 된다는 것은 민폐였으니까.
그 글자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된 것은, 물속에서였다.
가라앉는 것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소리도 없고, 극적인 순간도 없다. 그냥 어느 날부터 모든 것이 조금씩 무거워지고, 숨이 조금씩 짧아지고, 사람들 사이에서 점점 혼자가 된다. 나는 그 과정을 오랫동안 알아채지 못했다. 괜찮다고 했다. 늘 괜찮다고 했다. 타인의 감정을 살피고 타인의 자리를 지키면서, 내가 가라앉고 있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아는 사람은 나였다.
혼자라고 확신했다. 그 확신은 증거가 없어도 단단했다. 오히려 증거를 찾지 않을수록 더 단단해졌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말해봤자 소용없을 것이다. 그 생각들이 고글처럼 눈에 붙어서, 나는 세상을 그 색으로만 봤다.
그런데 나중에 알았다.
내가 가라앉는 동안, 나의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는 것을.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는 사실 잘 모른다. 내게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했을 테니까. 말 한마디를 고르는 데 밤을 새웠을 수도 있고, 어떻게 하면 상처 주지 않고 닿을 수 있을지 고민했을 수도 있다.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나를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오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두려웠을 것이다.
가라앉는 사람의 손을 잡는다는 것은, 함께 끌려 내려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손을 뻗는 것. 익사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옆구리에 끼고도, 물속으로 들어오는 것. 나는 그 용기를 보지 못했다. 고글이 너무 어두웠으니까. 손이 거기 있었는데, 나는 어둠만 봤다.
고마움보다 미안함이 먼저 오는 것은 그래서다. 손을 뻗어준 사람들에게도, 그 손을 끝내 보지 못했던 나 자신에게도.
개인주의 사회라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점점 각자의 섬에서 살아간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같은 건물에 살아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연결은 넘치는데 온기는 없고, 대화는 많은데 닿는 것은 없다. 그 사회 안에서 아프다는 말은 사치처럼 느껴지고, 혼자 버티는 것이 어른의 조건처럼 굳어진다.
그런데 나는 파도 속에서 이상한 것을 봤다.
그 섬들 사이에서도 누군가는 헤엄쳐 오고 있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돌아가는 길이 훨씬 편했을 텐데. 자신도 가라앉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개인주의가 만연하다는 이 사회에서, 그들은 흐름을 거슬러 왔다. 사회가 사람을 섬으로 만들어도, 섬과 섬 사이를 헤엄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사회를 버티게 한다.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였다. 언제나.
사람 인(人). 사람이 사람에게 기대고 있는 모양.
어릴 때는 그냥 획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이것이 획이 아니라 자세라는 것을. 사람이 존재하는 방식. 혼자 곧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조금씩 기울어져 있는 것. 한 획이 기울면 다른 획이 버틴다. 기대는 쪽과 받치는 쪽이 정해져 있지 않다. 오늘 내가 기울면 네가 버티고, 내일 네가 기울면 내가 버틴다.
나는 오랫동안 버티는 획만 되려 했다. 기대는 획이 되는 것이 두려웠다. 그런데 내가 혼자 버티는 동안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조용히 기울고 있었다. 기댈 자리를 주지 않음으로써, 나는 그들에게서 무언가를 빼앗고 있었던 것이다. 기댄다는 것이 짐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기댈 자리를 주는 것이 선물이었다.
당신 곁에도 지금 헤엄쳐 오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고글이 너무 어두워서 보이지 않을 뿐. 파도 소리에 묻혀서 들리지 않을 뿐. 그 손이 거기 있다는 것을, 고글을 조금만 들어 올리면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개인이 살면 사회가 살까. 나는 이제 그 질문 앞에서 잠시 멈춘다. 어쩌면 순서가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서로를 향해 손을 뻗는 사람들이 모여야, 비로소 살아남는 개인이 생기는 것일지도.
그런데 그보다 먼저, 나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지금도 그 고글을 쓰고 있는가. 어두운 렌즈 너머로만 세상을 보면서, 정작 당신이 한때 살아온, 지금도 살고 있는 그 찬란한 파도의 모습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파도는 무섭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 안에 빛이 있었고, 그 빛 속에 당신이 있었다. 고글을 쓴 채로는 보이지 않았을 뿐.
당신이 살아온 파도는,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찬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