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꿈의 글 '닷새'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
현꿈
오늘도 선생님이 하얀 종이 주셨어요
좋아하는 게 뭔가요?
잘하는 게 뭔가요?
나는 나예요
나는 그냥 나예요
나는 모르겠어요
아직 모르겠어요
무얼 적어 낼까?
나는 누굴까
곰곰이 생각해봐요
봄 오면
꽃 보는 게 좋아
알록달록
달콤한 봄바람이 좋아
살랑살랑
글 쓰는 게 좋아
사각사각
여름 오면
비 오는 소리 좋아
톡톡 톡톡
시원한 파도 소리 좋아
쏴아아
노랫소리 좋아
흥얼흥얼
기타 소리 좋아
딩가딩가
가을 오면
숲길 걷는 게 좋아
흐음- 후우-
예쁘게 물든 단풍잎이 좋아
울긋불긋
가을 끝자락 낙엽 소리 좋아
바스락바스락
겨울 오면
따뜻한 사람 좋아
혼자보단 여럿이 좋아
가끔은 혼자가 좋아
우와 이렇게나 좋아하는 게 많았구나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
이제 내가 좋아하는 걸
잘 아는 사람 될 거야
적성, 흥미, 특기
이 세 가지는 모두 자기소개란에서 꼭 보게 되는 것들이다. 자기소개. 나를 소개한다. 나를 내보인다. 나를 홍보한다. 학창 시절부터 사회생활에 이르기까지, 누군가 처음 만나는 모든 자리에서 꼭 돌아오는 자기소개 타임.
도전, 이 사람들에게 나를 짧고 굵게 소개해라!
지금과 같은 자기 PR 시대, 더더욱 자기소개가 중요하다. 이름과 나이, 소속 외에도 나라는 사람을 무엇으로 소개할 수 있을까?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한 시대다. 직접 나 자신을 알려야 한다. 내가 누구인지 이해하기 쉽도록 표현할 수 있는 나만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되돌아보면 초중고 학창 시절 내내 우리는 특기와 흥미를 질문받곤 했다. 매해 초 선생님께 받는 학생 기초 정보 조사서에도 그렇게 중요하다는 학교생활기록부 기본 정보 영역에도 꼭 특기와 흥미를 적어내야 했다. 특별히 잘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없었지만 빈칸으로 낼 수 없었기에 기껏 생각해낸 독서, 만들기, 그림 그리기 등을 써서 내곤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분명히 대답하는 것만큼 부담스럽고 어려운 일이 없을 것 같았다.아마 학생들이 이 칸에 가장 많이 적은 것은 독서가 아닐까 싶다. 독서 참 좋다. 그렇지만 너무 무난하달까?
두루뭉술하고 많이들 쓰는 내용이라 나만의 특별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책 읽는 걸 좋아하는데? 물음만 남기고 나에 대해 제대로 어필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특별함이 돋보여야 하는 생활기록부인데 말이다.
특기 또는 흥미, 그냥 채워야 할 칸이 아니라 나의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근데 아이들은 나를 소개하기를 어려워한다. 낯 간지러워한다. 다른 주제보다 ‘나’에 대해 시를 쓸 때 더 고민하고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서는 잘 표현하다가도 ‘나’에 대해 표현할 때면 쉽게 시작하지 못했다. 이건 어른인 나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언제나 어려운 질문, 나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세 번째 시 쓰기 주제는 ‘나’였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소개하는 글도 좋고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을 써도 좋다고 오늘의 글쓰기 주제를 설명해 주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들을 마음껏 표현해도 좋으니 ‘나’를 표현한 ‘나만의 시’를 써보는 시간이 되길 바랐다.
먼저 내가 쓴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라는 시를 아이들에게 제시해 주었다. 선생님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며 선생님의 시를 한번 읽어보라고 하였더니 앞에 나와 소리 내어 읽는 아이도 있었고 선생님 좋아하는 거 많다고 하는 아이도 있었다. 읽고 자리로 돌아가 받아 든 흰 종이를 보며 생각에 잠긴 모습들이었다. 받아 든 흰 종이에 바로 무언갈 쓰기 시작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나는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고 어렵다며 칭얼거리다 도움을 요청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래서 어려워하는 아이 한 명씩 같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oo아 좋아하는 게 뭐야?”, “oo아 뭐 할 때 즐거워?”,
“oo이에 대해 다른 친구들이 주로 이런 이야기를 해줬었잖아~기억나?”, “oo이는 꿈이 이거였지?” 등의
대화를 하며 아이가 자신에 대한 시를 쓰는데 필요한 여러 소재들을 떠올릴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럼 대부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곧잘 찾아 “아! 그럼 저는 이렇게 써볼래요”라고 하며 시작했다. 중간중간 표현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떠오르지 않으면 나를 찾아와 물어보고 다시 쓰기도 했다.
혼자서도 잘 쓰고 있는 아이, 나만의 시 세상에 빠져 즐겁게 쓰는 아이에게는 꼭 중간중간 찾아가 정말 잘 쓴다며 이렇게 계속 써보자고 칭찬해주었다. 선생님이 자신이 쓰고 있던 시 종이를 들어 읽으면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며 반응을 기다린다. 아니 나의 칭찬을 기다린다. 어떤 부분이 어떻게 좋은지 자세한 칭찬을 해줄수록 더 기뻐한다. 그래서 빠짐없이 모든 아이들에게 칭찬해주려고 한다.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칭찬을 통해 ‘시 쓰기’를 더 좋아하게 되고 더 잘 해낼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옆 반 선생님들에게 지인들에게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은 우리 반 아이들의 시다.
유명한 ‘라떼는 말이야’를 이용해 제목을 지은 시는 유쾌했다.
겨울, 눈, 눈싸움, 핸드폰, 엄마, 게임 등 자신이 좋아하는 걸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즐거워 보였다.
자신의 꿈인 변호사가 되어 누군가의 인생을 좀 더 밝게 비춰줄 수 있는 그런 불빛이 돼보려고 한다는 아이의 시는 멋졌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태권도를 알게 하고 싶다며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는 빛났다.
흐뭇한 표정으로 아이들의 시를 하나씩 읽으며 내가 더 기뻤다.
세상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 살아요.
모두 다르지요.
그 가운데 내가 있어요.
나는 나예요.
라며 시를 시작한 아이는 많은 사람 중 자신만의 특별함을 알고 있는 듯했다.
나
나는 오늘도 하루를
시작해요
하루는 길지만
오늘도 새로운 하루를
시작해요
나는 여름 바다의
파도처럼 약하고
강한 사람이에요
어떨 때는 강한 또
어떨 때는 약한
나는 보라색을
좋아해요 보라색은
어두운 색이지만
밝은 색을 만나면
예쁜 연보라가 되죠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
여름 바다의 파도처럼
약하고 강한 사람이고
연보라가 되고 싶은
사람이에요
나는 나의 색깔을
찾지는 못했지만
나는 누구이고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지
아는 사람이지요
이 시는 읽자마자 감탄하며 정말 잘 쓴 시라며 입이 닳도록 칭찬해준 시였다. 우리 반에 이렇게 보석 같은 시를 쓰는 아이가 있어 자랑스러웠다. 이 시를 쓴 아이가 자신을 잘 알고 시로 잘 표현한 것 같아 대견했다. 정말 감각적인 시였다.
내가 의성어, 의태어를 시에 사용하니 아이들도 자신들이 아는 흉내 내는 말을 넣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이 시를 쓰면서 겨울은 어떤 흉내 내는 말을 쓰면 좋을지 고민되었다고 하니 아이들이 ‘눈 쌓이는 소리 소복소복’, ‘따뜻한 국물 마시는 소리 후루루룩’, ‘김 불어먹는 소리 후우후우’ 등을 생각해냈다. 햇살에 대한 소리는 무엇이 있을까 하니 ‘햇살 내리쬐는 소리 쨍쨍 샤랄라라 샤방샤방’과 같은 찰떡같은 표현도 만들어냈다.
아이들과의 ‘나만의 시 짓기’ 프로젝트로 나도 열심히 시를 쓰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도 아이들로부터 알게 되고 깨닫게 되는 것이 많은 요즘이다.
아직은 글쓰기가 낯설고 어렵지만,
이런 글자국 하나하나가 모여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현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