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했던 것들이 어색해졌던 날

퇴사자의 독백, 이젠 어떤 것이 나의 일상인지 모르겠어.

by 쑴이

서울에서 한 달 살기 중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와서 제주도 한 달, 여의도 한 달, 그리고 상도동에서 지난 한 달을 살다가 오늘은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는 날이다.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았다.


오랜만의 서울 시내 운전은 어색하고 긴장됐다.

벌써 8년째 타는 차인데, 몇 달 전까지는 거의 매일 사용했었는데 왜 이렇게 어색한 건지...

이제 어떤 것을 나의 일상이라 말할 수 있을까.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의 일상이었던 것들이 어색해졌다. 내가 멈추고 싶으면 멈추고 돌아오고 싶으면 그냥 돌이킬 수 있는 삶이면 좋으련만...

여행 동안 지하 주차장에 세워두긴 했었지만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고 자질구레한 물건들과 이삿짐이 남아 있는 차는 너저분했다. 8년을 탔지만 출퇴근 용으로만 내 몸만 탔다 내렸다 했던 차라 내부는 늘 깨끗했었는데... 지금은 온갖 잡동산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추석 연휴를 맞아 긴 휴가를 떠난 친구가 고양이를 부탁하며 당분간 집에 있으라고 했다. 친구 집으로 향하는 길에 예전에 살던 익숙한 동네를 지난다.

익숙한 것들이 그리운 날이었다. 지금도 잘 지내고 있지만 오랫동안 나의 일상이라 불리던 것들의 소중함이 느껴지는 날이었다.

IMG_5294.HEIC 어제 내린 비 덕분에 남산타워가 잘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내 사업"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 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생각도 안 해봤지만 특히 마음의 준비부터 안되어 있다.

20대와 30대엔 목표와 계획이 있었다. 늘 멀게만 느껴지던 40대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었고 40세 전에는 분명 결혼을 했을 거란 막연한 가정이 있었기에 나 혼자만의 계획과 목표가 아니라서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막상 40세가 되었을 때 나는 막막했었다. 지금은 계획이 있지만 나의 계획 안에는 이번 퇴사는 없었기에, 그리고 나는 아직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하고자 하는 일들이 있기 때문에 "내 사업"은 아직 고려대상은 아니다. 물론 인생은 어디로 튈지 모르지만 말이다.


이제 나는 예전의 나의 일상을 되찾고 싶은가 보다.


상도터널을 지난다. 터널의 끝에 빛이 보인다. 속도를 줄이라는 알람이 울린다.

터널에서는 조급하지 않기, 멀찌감치 보이는 빛이지만 결국 이 터널의 끝은 온다는 것...


나는 인생에서 터널을 지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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