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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night Apr 04. 2023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학교, 교사, 학생은?

2021.8.25 

A,

여름 휴가 사진 잘 봤어. 아들내미가 많이 컸네. 나랑 연구실 복도에서 장난감차를 가지고 놀던 C가 벌써 이만큼 자랐구나. 지도를 보니 뿌루베시(puruvesi)는 호수인지, 바다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엄청나! 그 옛날 빙하가 여기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한 거지? 이쯤 되면 땅이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게 아니라, 호수 사이에 땅이 떠 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아. C가 호숫가에 앉아 수평선을 바라보는 모습을 나도 물멍하는 마음으로 한참 바라보고 있었어. 난 오늘 아침 사무실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보건소에 가서 PCR 검사를 받고 집에 왔어. 만약 내일 아침 양성 문자를 받으면 이 여름에 2주 동안 꼼짝없이 원룸에 갇혀서 생활 쓰레기랑 동거해야 되겠지. 생각만으로도 두렵다. 코로나로 아플 것보다 자가격리가 나한테는 더 가혹하게 느껴져. 매일 구글어스(Google Earth)로 뿌루베시 이곳 저곳을 누비고 있을지도 모르겠어.


그래도 인터넷으로 협소공간 탈출 게임이라도 할 수 있는 2021년이라서 정말 다행이야. 지난 봄학기에도 학과에서 디펜스(박사학위논문 공개심사)를 줌(zoom)으로 했니? 작년 3월이었지. 우리 학과에서 청중을 직접 모시지 않고 최초로 원격 디펜스를 해야 하는 운명에 처했던 사람이 너였어. 코로나 이전 같았으면 레스토랑을 빌려 디펜스 디너에 차려진 음식들을 거하게 먹고 마시고, 손님들은 미리 준비해 온 축사를 읽고, 나와 친구들은 몰래 연습한 축하 노래를 너에게 들려주었겠지. 그렇지만 의기소침해 있을 네가 아니었지. 넌 힙스터답게 집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랜선 저녁 파티에 나타났고, 우리는 각자 냉장고에서 와인이나 맥주, 배를 채울 끼니를 꺼낸 다음 줌 링크를 타고 들어가 와글와글 수다를 떨었어. 이런 언택트 모임은 몇 년이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될까, 아니면 비단 감염병 예방 뿐만 아니라 물리적 거리와 시간의 제약 앞에서 편리해지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새로운 일상으로 자리잡을까. 


왠지 후자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이야. 코로나 시대 새로운 일상 중 하나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과 원격으로 회의를 하게 되었다는 거겠지. 줌 회의 참석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하루에 두 개 씩 받을 때도 있을 정도로 오히려 코로나 이전보다 회의를 더 자주 하게 되는 느낌이야. 그런데 저녁에 집에서 온라인 화상회의를 하게 되면 분주했던 하루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기름기가 흘러내리는 민낯과 목이 늘어진 실내용 티셔츠, 그리고 빨래 건조대 위에 사실적으로 펼쳐져 있는 원룸 속 생활상을 보여주기가 뭣해 줌의 비디오 기능을 끄게 되더라. 너 같으면 가상배경으로 빨래를 없애버리고 하루 끝의 고단함이 묻어난 얼굴은 조커 분장으로 꾸민 다음 화면을 켜겠지만 난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어 그냥 비디오를 끄고 회의를 할 때도 있어. 다른 사람들한테 거만하게 보일 것이 살짝 걱정되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이 향하지 못하게 내 얼굴을 가림으로써, 그리고 내 시선이 다른 이들의 얼굴을 향함으로써 생겨난 관음증이 묘하게 짜릿한 기분을 가져다주더라. 한국사회에서 누군가를 만날 때 필요한 최소한의 외모와 옷매무새를 다듬는데 드는 시간을 생략한 채 화면을 끄고 다른 분들이 대학 연구실이나 자택의 서재에 놓인 책장을 배경으로 앉아계시는 모습을 보며 회의를 한다는 건 말이지. 뭐랄까, 다소 느슨한 몸으로 나를 드러내지 않은 채 사회적 예의를 갖춘 다른 몸들을 바라볼 수 있는 권력자의 시점을 잠시나마 경험하는 기분이야. 


어른들의 회의 풍경도 이렇게 변하고 있는데 올해 아이들의 수업 풍경은 코로나 이전에 비해 어떻게 달라지고 있을까. 우선 사각의 교실에 행과 열로 책걸상을 배치해 놓고 교사가 맨 앞에 서서 학생들을 내려다보며 지도하게끔 하는 오프라인 교실의 공간 구조는 너한테도 익숙하지? 그리고 내가 핀란드와 한국의 학교 몇 곳에서 학교생활을 관찰하다 발견한 점은 한국 선생님들이 내가 만났던 핀란드 선생님들에 비해 학생들의 태도나 행동에 대해서 더욱 엄격한 기준을 갖고 통제를 하신다는 거야. “○○아, 허리 펴고 바로 앉아라. △△아, 어디 보니? 지금 몇 쪽에 어디 읽고 있는지 이어서 읽어봐라.” 하시면서 말이야. 그렇지만 푸코(Michel Foucault)가 말했듯이 규율이 학교의 공간과 시간, 그리고 학생들의 신체를 촘촘하게 통제하면서 바람직한 행동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분하던 전통적인 학교의 풍경*에서도 학생들의 정신이 창밖 너머 운동장으로, 혹은 교문 밖으로 이탈하는 일은 막을 수가 없었지. 너도 유체 이탈 많이 해봐서 알지? 


그런데 몇 년 전부터는 중고등학생 뿐만 아니라 초등학생들도 스마트폰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이런 통제 권력의 누수 현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봐. 물론 한국에선 아직까지 많은 학교가 학생들로 하여금 일과 시간 동안 휴대폰을 꺼서 가방에 넣어두게 하거나 학생들의 휴대폰을 걷어 교무실에 보관했다가 마칠 때 돌려주는 식으로 원격 시공간의 사용에 대해서도 규율 권력을 엄격하게 행사해 오고 있지만 말이야. 하지만 모든 권력에는 틈새가 있기 마련이잖아. 어느 중학교에서 학교생활을 관찰하고 있었는데 한 학생이 폰 두 개를 가지고 와서 하나는 제출하고 다른 하나로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사진도 찍고 옆 학교 친구과 메시지를 주고받는 걸 본 적이 있어. 그리고 핀란드의 학교처럼 학생들의 휴대폰 사용이 어느 정도 자유롭게 허용되는 상황에서는 학생이 교사나 교과서가 전달하는 것과 다른 지식과 정보를 즉석에서 찾아 교사에게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 예를 들어 자연계에는 동성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물 선생님의 설명에 한 학생이 즉석에서 자료를 검색한 다음 반론을 제기하는 식으로 말이야. 


올해는 내가 학교를 떠나 국가교육기관에서 일을 하고 있다 보니 코로나 상황에서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해서 주위 선생님들께 여쭤봤어. 원격수업에서도 선생님들은 여전히 반 아이들의 출석을 관리하고,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도록 격려하고, 줌 화면 속 아이들의 수업태도를 지도하신다고 해. 어떤 중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원격수업으로 헐거워진 훈육망을 피해 수업 시간에 딴 짓 하는 걸 막으려고 눈을 포함한 얼굴의 3분의 2 이상이 화면에 나와야 출석으로 인정해 준다는 얘기도 들었어. 하지만 의자에 앉아 허리를 곧게 펴고 수업에 집중하는 자세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게 학생 된 도리라는 공식은 머리가 굵은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미 허물어지고 있는지도 몰라. 비스듬히 앉아 수업을 듣거나, 카메라로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는 대신 프로필 사진으로 생동감 있는 짤을 만들어 올려놓고 실시간 화면인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고급기술을 구사한다거나, 교실에서 엎드려 자듯 웹캠 아래에서 엎드려 잘 수도 있겠지. 더 과감한 공간 이동도 가능해. 차를 타고 놀러 가는 도중에 스마트폰으로 원격 수업에 접속해서 출석 인정을 받을 수도 있잖아. 


좋든 싫든 일상의 터전이 온라인 공간으로 급격하게 옮겨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질문들이 떠오르더라. 오프라인 공간에 학생들을 집합시키던 전통적인 학교가 온라인 수업이나 온오프를 병행하는 혼합형 학습(Blended Learning)을 하는 곳으로 변하고 있잖아. 그런데도 학생다움을 강요하는 학교규칙과 문화, 그리고 학생의 몸과 행동을 강력하게 통제할 수 있는 교사의 권위(이미 어느 정도 와해되긴 했어도)가 있어야만 학교라는 곳이 유지될 수 있는 걸까? 학생들에게 배움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시공간과 행동을 둘러싼 강력한 규율이 꼭 필요한 걸까? 수업 내용과 순서, 속도, 수업 방법 같이 수업에 관한 대부분을 강력하게 통제하는 교사의 역할**이 꼭 필요할까? 지금 아이들의 부모세대가 경험했던 학교의 통제 기능을 2021년의 학교와 교사에게 기대하는 것이 가능하긴 한 걸까? 감염병이 사라지고 나면 학생들의 신체와 태도를 촘촘히 통제하던 예전의 학교로 돌아가게 될까? 그게 아니라면 학교에서 펼쳐지는 인간관계와 의사소통 방식은 어떻게 변해야 할까?  


장기화된 감염병 시국으로 인해 학습이 일어나는 시공간의 울타리가 유연해지고 규율과 통제가 원격 수업 체제에서 도전받고 있는 지금이 어쩌면 학교 생태계의 규칙을 바꿀 좋은 기회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 물론 팬데믹으로 인해 미래로 강제소환 당한 상황에서도 산업화 시대의 가시적인 생산성 향상에 최적화된 인간을 길러내는 학교와 교사의 역할, 그리고 이에 부응하는 학생의 유순하고 빠릿한 몸을 기대하는 과도기적 혼란은 어쩜 당연한 거겠지. 원격 수업이 일상화되면서 학부모들 중에서는 내 아이가 집에서 빈둥대기만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온라인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 수업에서 하는 것처럼 교사가 시간과 공간을 통제하고, 자세를 지적하는 등 훈육이 살아있는 수업***을 해주길 바라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마찬가지로 온라인 수업에서도 강한 교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교사들은 치밀하게 설계된 수업 계획과 본인의 교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수업에서 자신이 의도하는 대로 따라올 수 있도록 이끄는 데 힘을 쏟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결국 교사의 역할은 변할 거고 그래야만 할 거야. 기존의 지식전달자와 훈육자에서 민주적이고 수평적 관계를 바탕으로 학생의 성장을 돕고 자신도 성장해가는 존재로 말이야. 내가 핀란드의 한 학교에서 만났던 Olli의 말을 들어볼래? 


J: 평소에 선생님이 학생들을 존중한다고 느꼈던 예를 하나 말씀해주시겠어요?
Olli: 학생이 수업 중에 선생님과 다른 의견을 말하거나 ‘방금 선생님이 말씀하신 거 틀린 것 같아요.’ 라고 말했을 때 선생님이 그걸 받아주시면서 ‘그래, 내가 다시 알아볼게.’ 라고 말씀하실 때요.****


Olli가 생각하는 ‘학생을 존중하는 선생님’이란 학생의 상태를 민첩하게 진단하고, 그에 따른 학습 방법과 교과 지식을 처방으로 제시하고, 미리 설정된 목표를 향해 학생들을 인도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어. 학생들과의 만남 속에서 이제껏 알지 못하던 세계에 맞닥뜨리게 되고, 그들과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다른 존재가 되어가는 지적확장공사라는 낯설고 불편한 여정에 자신을 빠뜨릴 수 있는 교사를 말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학교 역시 학교생활을 조직하는 과정에서 지금보다 유연해져야 하겠지. 비단 감염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대지 않더라도 말이야. 그곳에서 펼쳐지는 인간관계 또한 지금의 그것과는 사못 다른 모습이어야 할 거고. 대규모의 학생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학교행정과 통제 기능이 하루 아침에 사라질 순 없겠지만 조금씩 느슨해질 수 있진 않을까. 학생들이 학교생활과 관련된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고,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들 사이의 신뢰와 수평적 관계를 바탕으로 학교가 좀 더 민주적인 생활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 가령 평소엔 과정중심 평가를 이야기하면서 갑자기 수학경시대회를 열어 시험을 치르고 상위 5퍼센트에게 상장을 주려는 교장선생님의 방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침에 똥을 누다가 늦은 학생한테 지각을 매기는 것에 대해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아이들과 함께 의논하고 결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박사과정 첫 해였던가. 어서 빨리 몇 등급짜리 저널에 게재된 논문을 낳아 갖다 바치고 수십 곳에 펀딩 신청서를 보내어 불확실한 생계를 이어가라고 요구하는 신자유주의 통제시스템은 잠시 잊은 채, 서로의 연구실에서 푸코의 글과 신문기사를 읽고 수다를 떨며 우리의 주체성을 활짝 꽃피우던 달 밝은 가을밤이 생각나. 그 때도 보기보다 잔병치레가 잦아 나를 걱정하게 만들던 너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에 염려와 응원의 마음을 보탠다. 우리, 꼭,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


서울에서,

J


*   미셸 푸코 (1975) 2003. 감시와 처벌: 감옥의 역사. 오생근 옮김. 나남. 213-347쪽 참고. 

** Bernstein, B. 1996. Bernstein, B. 1996. Pedagogy, Symbolic Control and Identity: theory, research, critique. London: Taylor & Francis. 

   성열관. 2012. 교수적 실천의 유형학 탐색: Basil Bernstein의 교육과정 사회학 관점. 교육과정연구 30(3), 71-96. 73-74쪽 참고.  

*** 예: 온라인 수업의 장점을 살려 언제든 들을 수 있게 하기보다는 정해진 시간에 원격수업 참여해야 출석으로 인정, 녹화된 동영상 수업 수강을 차일피일 미루는 일을 막기 위해 그날 탑재된 수업은 그날만 들을 수 있게 제한, 학생들이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단정하게 다듬어진 모습(상반신)을 원격 수업 화면에 보여주게 한다거나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하여 내가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교사와 친구들에게 보여주도록 하는 식으로 지도하기.

**** J는 작가, Olli는 작가의 박사논문연구에 참여한 학생의 이름(가명)이다.

***** 이상은. 2021. 인공지능 시대, 가르치는 일의 의미 재탐색: 레비나스 철학을 바탕으로. 교육철학연구 43(1), 97-120. 

****** 커버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tabor-roeder/50699896692 (사진: Phil Roe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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