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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민 Jul 14. 2023

나라는 존재와 삶의 목표

의식과 의식 밖의 영역이 만드는 삶의 목표란?

‘나’는 실존할까? 

삶의 목표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해서 조금 멀리 온 것만 같지만 이 둘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나’의 존재가 순수한 영혼에 의한 것이 아니란 사실 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의 목표인 ‘진리’가 부정된다. 

꼭 삶의 목표로 ‘진리’를 추구하지 않아도 나의 실존을 나타내는 지표 중 순수성 혹은 자율성은 중요하다. 

내가 무언가의 영향을 받아서 만든 삶의 목표는 순수하게 나를 위한 삶의 목표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보여주는 가짜 세상인 매트릭스에서의 삶에 거부감을 느껴 탈출하고자 하는 영화 매트릭스 속 등장인물들과 같이 우리는 순수하고 자유로운 나만의 삶의 경험을 원한다. 

하지만 앞서 다룬 자유의지에 대한 리벳의 연구나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의식적으로 통제하지 못하는 뇌 손상 환자들의 사례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의구심을 만든다. 

최소한 ‘나’라는 존재는 행동에 있어서 자율성, 통제권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자신이 통제한다고 착각하는, 오류를 가진 생각을 갖고 있다. 

삶의 목표를 만들기에 앞서서 그것을 만드는 주체가 자율성 혹은 통제권이 없으며 착각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생각과 행동에 대한 주체적인 감각을 느껴온 나, 의지 혹은 의식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알아봐야 한다. 

이들을 어떻게 이해하냐에 따라서 의식이 만드는 삶의 목표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 수도 있고 혹은 그 무엇보다 가치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혹은 의식을 이해하며 의식 너머의 삶의 목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무엇이며 그것이 만들 삶의 목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란 존재가 어떻게 세상에 나타날 수 있는 것일까? 

뇌 속의 다양한 활동과 그것이 주는 다양한 느낌과 감정은 마치 세상에 내 마음이나 영혼이 존재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만들어낸다. 

그 강렬한 느낌의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가 감각 기관을 통해 외부 정보를 받아들이고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땅바닥에 있는 돌과 달리 외부에서 일어난 일을 느끼고 반응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에게 생명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저 반사적으로만 움직이는 작은 벌레에게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단순히 외부의 자극의 반응할 뿐만이 아니라 받아들인 감각 정보를 잠시 특정한 공간에 활성화시켜 두고 그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을 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경험하는 우리와 달리 반응하는 동물은 외부 자극에 즉각적인 대응을 할 뿐 그 자극을 오랫동안 갖고 있지 않는 것만 같다. 

때문에 우리는 반응하는 동물과 경험하는 동물이 자극, 특히나 고통에 대한 경험이 아예 다를 것으로 생각한다. 

물리적인 충격을 당한 벌레나 로봇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만 그저 그 충격을 피해 다른 길을 바삐 갈 것이다. 

그러나 충격을 경험하는 우리와 같은 동물은 충격이 신경을 타고 머리에 올라오고 머물기 때문에 한동안 그 자리에서 고통을 경험하느라 몸부림칠 것이다.     


단순 반응(반사)을 넘어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감각 기관을 통해 들어온 정보가 머무를 일정한 장소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와 같은 특별한 장소를 의식이라고 부른다. 

의식이 있기에 외부에서 온 정보는 휘발되지 않고 특정 장소에 머무를 수 있다. 

특히 우리는 이렇게 머무르는 정보를 해석하고 가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분 좋은 날 보는 벚꽃이 지는 풍경은 그저 아름답다고 느껴지지만 기분이 나쁜 날에는 똑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꽃이 지는 게 슬프다고 해석할 수 있다. 

때문에 같은 종류의 외부 정보라도 다른 경험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의식에 감각 정보를 묶어둘 뿐만이 아니라 해석을 할 수 있기에 우리는 좀 더 주도적으로 경험하는 존재처럼 여겨진다. 

더 나아가 의식에 어떤 정보를 둘 것인지도 조절할 수 있어 보인다. 

우리는 집중을 통해 감각기관을 타고 오는 정보 중에 원하는 일부만 의식에 위치시킬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보다 능동적인 경험자이자 경험의 원천인 의식의 운영자처럼 보인다.     


의식을 운영하는 능동적인 경험자는 경험을 저장하며 하나의 존재가 되고 더 나아가 신체를 조종한다는 감각을 느낌으로서 의지를 가진 영혼이 된다. 

의식 안에서 외부에서 온 정보와 내부에서 만들어진 해석이 만나 만들어지는 경험은 시간이 지나며 의식 밖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흔적을 남기고 다른 공간에 저장된다. 

그렇게 저장된 경험은 집중을 활용하면 다시 꺼내볼 수 있다. 

또 경험이 기억이 되며 남긴 흔적은 시간상 뒤의 경험에 영향을 주게 된다. 

즉 우리는 경험을 통해 기억하고 학습하게 된다. 

때문에 매번의 경험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그 전의 경험의 연속과 같이 느껴진다. 

우리는 오랜만에 집밥을 먹는 경험을 할 때, 추억에 잠겨 어렸을 적 식사 장면을 생생하게 경험하곤 한다. 

분명한 시간차에도 불구하고 두 경험 모두 하나의 의식에서 다뤄졌다는 감각은 과거의 경험자와 현재의 경험자가 같은 존재라는 느낌을 준다. 

더 나아가 기억과 학습을 통해 만들어지는 일관성은 경험자에게 성격이나 개성과 같은 특징을 부여하며 역사를 가진 경험자를 더욱 특별하고 유일한 존재로 만든다. 

이러한 일관성은 미래 계획이나 추구하는 가치를 만드는 데에도 쓰이며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진 미래 계획이나 가치를 따라가며 나의 일관성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경험자는 기억과 학습의 기능을 통해 ‘나’라는 존재가 된다.     


운동 기관과 감각 기관을 통해 자극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경험하고 기억하며 ‘나’라는 존재가 되었지만 지금 우리가 느끼는 나라는 감각을 설명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영혼 혹은 의식과 신체를 이어 나를 완성시켜줘야 한다. 

정신 현상인 의식, 영혼은 자신이 소속된 물질적인 신체를 직접 조종할 수 있어야지만 세상에 자신의 의지를 펼칠 수 있다. 

신체를 직접 조종하며 의식은 정보처리자일 뿐만 아니라 의사결정자가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식이 신체를 소유해야 하며 또 신체의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의식이 신체를 소유하고 있다는 감각은 신체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만들어진다.

신체를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해 뇌에는 각 신체 부위의 위치 값이 존재한다. 

즉 우리는 우리 신체의 위치에 대한 심상을 갖고 있다. 

이러한 심상은 감각 기관과 운동 기관이 파악한 신체 위치 값과 비교되며 그 정확성을 검증받게 된다. 

만약 심상과 감각 기관, 운동 기관의 정보가 일치하다면 예상과 같이 신체가 뇌의 영향권 아래에 존재한다는 정보를 얻게 되는데 이 정보가 곧 신체를 소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된다. 

유명한 고무손 착각 실험은 이처럼 신체에 관한 소유권이 영혼의 통찰로 인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심상과 감각 정보의 충돌로도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Ehrsson, H. H., Spence, C., & Passingham, R. E. 2004). 

해당 실험에서 피험자는 자신의 한쪽 손을 책상 위로 뻗었고 실험자는 뻗은 손과 피험자의 시야 사이에 칸막이를 두어 피험자가 그 손을 볼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피험자의 시야가 닿는 곳에 피험자의 실제 손과 비슷하게 뻗은 것만 같은 가짜 손 모형을 위치시켰다. 

그리고 가짜 손과 실제 손을 동시에 붓으로 똑같이 쓰다듬었다. 

이러한 일을 반복하자 피험자는 자신에 눈에 보이는 가짜 손이 진짜 자신의 것처럼 느끼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가짜 손만 붓으로 쓰다듬어도 피험자는 마치 그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이러한 실험 결과에 의하면 특정한 경우, 신체 소유에 대한 감각은 시각과 촉각의 교란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구체적으로 아마 처음에는 신체에 관한 심상과 시각, 촉각 정보가 일치하지 않아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각과 촉각 정보가 지속적으로 전달되며 결국 심상이 수정되었을 것이다. 

수정된 심상과 시각, 촉각 정보가 만나 고무손은 피험자의 소유권 내로 편입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심상과 감각이 만나 신체 소유 감각이 형성되고 그러한 감각을 통해 의식은 신체를 소유한 존재처럼 여겨지게 된다.     


더 나아가 우리는 신체를 독점하고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까지 갖는다. 

신체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는 감각 혹은 외부 세상과 나의 상호작용의 원인을 나의 의식에서 찾도록 하는 느낌을 ‘대리감’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대리감이야 말로 의식에 의도와 통제 능력을 부여하고 자유 의지란 착각을 만드는데 조금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대리감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심리학자 frith는 운동 제어 과정에서 우리가 운동 결과를 예측하기 때문에 대리감이 형성될 수 있다고 보았다(2000). 

그가 제안한 Comparator model 이론에서는 운동을 성공적으로 제어하기 위해 운동 예측자(포워드 모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예를 들어 앞에 놓인 사과를 잡는다는 행동을 할 때, 움직임을 관장하는 뇌 부위는 먼저 사과를 잡기 위해 신체가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지 정하고 그것이 올바르게 이뤄지기 위한 명령(예를 들어 눈과 근육의 움직임에 대한 명령)을 내릴 것이다. 

해당 운동 명령이 잘 전달되어 행동이 이루어지면 그 행동에 대한 감각 정보(사과가 손안에 놓인 시각 정보 등)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행동이 이루어진 후 운동 명령과 감각 정보를 비교하며 행동이 올바르게 이루어졌는지를 판단하게 될 텐데, 근육을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라는 명령과 손과 사과가 같이 있는 시각 정보를 비교하며 처음 의도가 올바르게 이루어졌는지 확인하는 것은 어렵다.

운동 명령과 시각 정보, 두 가지 종류의 정보를 한쪽으로 치환해야지만 두 정보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문제도 있는데 이러한 운동 과정에서는 결과에 대한 감각 정보를 얻기 전까지 자신이 내린 운동 명령이 올바른지에 대한 피드백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문제없이 중간에 행동을 교정하고 지체 없이 자신의 운동 통제 여부를 판단한다. 

비교기 모델은 이를 서로 다른 속성의 두 가지 정보의 완충 역할을 하는, 운동 명령이 올바르게 이루어졌을 때의 위치-운동 값과 감각 값이 미리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미리 예측값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결과를 얻기 전에 운동을 교정할 수 있거나 어떤 결과가 우리가 처음 의도한 결과인지 바로 알 수 있다. 

다시 운동 명령이 발생했던 시기로 돌아가서 구체적으로 해당 이론을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운동 명령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그 정보의 복사본은 포워드 모델이라고 불리는 운동 예측자에게 전달된다. 

포워드 모델은 정보를 받아서 시뮬레이션을 진행하고 동적, 감각적 예측값을 만든다. 

이렇게 미리 만들어진 예측값(운동 명령을 토대로 만들어진 예측)은 처음에 만든 신체 위치 값(사과를 잡기 위한 팔의 위치값)과 비교되며 중간 과정에서 행동을 교정하는데 쓰인다. 

또 예측값은 행동이 모두 이루어지고 난 후에 감각 정보와도 비교되며 처음 의도와 같이 행동이 이루어졌는지 확인하는 데에도 활용된다. 

이처럼 미리 정답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만들었기 때문에 중간에 수정할 수 있고 빠르게 결과를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예측자가 만든 예측과 실제 감각 정보가 일치할 때, 예측이 맞았다는 신호로서 나 자신이 마주한 결과(운동)의 원인이라는 감각인 대리감이 만들어진다.         

즉 그의 이론에 의하면 대리감은 의식의 관여와는 상관없이 생길 수 있는, 운동 통제 성공에 관한 신호이다.


한편 대리감은 꼭 행동을 통해서만 의식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가끔 염동력과 같은 상상 속에 빠져 나의 생각 에너지가 눈에 보이는 현상의 원인이 되었다고 믿으며 대리감을 느끼기도 한다. 

심리학자 wegner는 이와 같이 몇 가지 조건만 맞으면 우리가 인지한 외부 사건에 대한 원인을 의식적인 생각으로 둔다는 apparent mental causation 이론을 제안했다(1999). 

wegner의 이론은 우리가 실제로 관여하지 않은 행동에 대리감을 느끼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wegner의 이론에 의하면 의식이 실제로 행동의 원인이 아니어도 의도를 먼저 느끼고, 행동이 의도와 일치하고, 다른 이유가 없으면 우리는 의식과 행동에 대한 인과관계를 만든다. 

즉 의식에 의도에 대한 느낌, 이뤄진 행동에 대한 감각 정보만 있어도 대리감이라는 통제 환상이 만들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친구가 눈에 움직임을 추적해 그것을 따라 움직이는 마우스 프로그램을 샀고 그것을 우리에게 써보라고 제안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우리 눈의 움직임을 따라서 움직이는 마우스 커서가 있다면 우리는 우리 눈이 곧 그 마우스 커서를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 그 마우스 커서를 움직이는 것은 우리 눈의 움직임을 읽어내고 그것을 활용하는 복잡한 컴퓨터 프로그램일 것이다. 

혹은 화면에 집중한 우리 뒤에서 친구가 카메라를 통해 우리 눈의 궤적에 대한 정보를 받은 뒤 비웃음을 참으며 직접 무선 마우스를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우리 의식은 너무나 쉽게 우리가 의식 밖 신체나 물질을 통제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의지가 실존한다는 착각을 만들어내는 대리감은 실제로 의식이 신체를 통제하지 않아도 운동 예측을 통해 만들어지기도 하고 의도에 대한 느낌과 감각정보만으로도 만들어지기도 한다. 

결국 영혼을 가진 나에 대한 느낌은 이처럼 뇌의 여러 기능, 정보의 합으로 만들어진다. 

감각을 수용하고 보관하며 활용하고 직접 신체를 조종한다는 느낌까지 더해지면, 우리는 의지를 갖고 신체를 조종해 직접 자극을 선택하며 그 자극을 통해 나만의 경험을 만들고 그 경험을 쌓아가는 ‘영혼을 가진 나’가 된다. 

하지만 실제 우리는 대단한 영혼을 가진 것이 아니라 다양한 뇌 기능을 가진 것이다.

    

이와 같이 ‘나’를 경험하고 생각하고 통제하는 자로 정의하게끔 만드는 감각은 뇌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우리가 느끼는 마법과 같은 실존의 감각은 영혼 때문이 아니라 의식을 둘러싼 다양한 정보 때문이다.

심지어 몇몇 정보는 사실과 다르다. 

그렇다면 나라는 존재는 착각 속의 존재이며 때문에 그가 만들 삶의 목표는 쓸모없는 것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일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것은 성급한 결론이다. 

우리가 알아낸 것은 의식이 가장 처음에 모든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의지를 가진 존재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의식 밖의 영역이 크다는 것을 알아냈고 자유 의지가 허상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의식이 무가치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 뇌 안에는 의식 밖 영역과 의식의 영역이 공존한다는 것을 알아냈기에 의식 밖의 영역과 의식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아낸다면 삶의 목표에 대한 더 올바른 접근을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의식 밖 영역의 다양한 의사결정자는 실질적인 의지를 지니고 있으며 의식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삶의 목표 역시도 의식할 수 없는 뇌 세포 덩어리의 영향으로 나타났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따라서 의식 밖 요소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낸다면 삶의 목표에 대한 더 올바른 접근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 의지를 갖지 못했다고 해도 의식은 분명 삶의 목표와 의식 밖 요소 사이에 존재한다. 

이상하게도 의식은 자신이 의사결정자일 것이라고 착각하며 삶의 목표를 만드는 과정에서 더 열심히 활성화된다.

이러한 의식의 활성화는 분명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 생존과 번영에 기여해 왔기에 아직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의식의 착각을 올바르게 수정하고 의식의 역할을 재정의 해낼 수 있다면 삶의 목표를 만드는 데 있어서 의식의 진짜 역할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의식과 의식 밖의 공존으로 이루어진 존재이고 그러한 우리의 삶의 목표 역시 둘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야 이전과 같이 가장 우월한 하나의 목표(진리 등)라는 실패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앞으로 다른 글을 통해서 더 자세히 알아가겠지만 의식 밖 의사결정자와 의식에 대해 간단히만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의식 밖 의사결정자가 원하는 것은 결국 생존과 번영이다. 

Persaud, N., McLeod, P., & Cowey, A. (2007)의 연구는 의식 밖 의사결정자가 의식의 관여 없이도 생존과 번영을 위한 보상을 향해 더 주도적으로 활동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해당 연구에서 진행된 실험 중 하나에는 피험자에게 시간차를 두고 두 가지 문자열을 제시했는데, 피험자는 앞선 문자열을 외우고 나중에 주어진 문자열이 앞선 문자열과 같은 규칙을 따르는지 판단해야 했다. 

해당 문자열은 인위적인 것이며, 문자열이 제시되는 시간 또한 짧기 때문에 문자열이 어떤 규칙을 갖는지 의식적으로 판단하기 위한 시간은 부족했다. 

하지만 시행 횟수가 늘어나며 피험자는 직관적으로 그것이 어떤 규칙을 갖는지 파악했다. 

이때, 피험자는 직관적인 느낌을 통해 판단을 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의식적으로 두 문자열이 어떤 공통점을 갖는지 설명할 수는 없었다. 

이러한 실험은 의식 밖의 영역이 과제를 수행하는데 충분히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해당 연구는 의식 밖 영역이 무엇에 반응하는지에 관한 통찰을 제공했다. 

연구자들은 피험자가 규칙을 의식하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과제를 마치고 난 뒤 과제 수행을 가지고 내기를 진행했다. 

피험자는 1달러 혹은 2달러를 걸 선택권이 주어졌고 수행이 올바를 경우(과제 성공) 그들이 건 돈만큼 벌어갔고 수행이 올바르지 않을 경우(과제 실패) 그들이 건 돈은 빼앗겼다. 

때문에 연구자는 만약 피험자가 문자열의 규칙을 의식하거나 자신의 수행을 의식적으로 평가해 낼 수 있다면 옳은 수행을 하고 높은 돈을 걸거나 잘못된 수행을 하고 낮은 돈을 걸 것이라고 기대했다. 

두 피험자 집단이 이러한 과제와 내기를 진행했는데, 한 집단은 가상의 돈으로 또 다른 집단은 진짜 돈으로 내기를 진행했다. 

그 결과, 실제 돈으로 내기를 한 집단의 과제 수행 성공률은 81%였고 가짜 돈으로 내기를 한 집단의 과제 수행 성공률은 68%였다. 

이러한 보상의 차이에 따른 과제 수행 성공률의 차이는 해당 과제를 수행하는 의식 밖 요소가 보상의 차이를 식별하고 더 가치 있는 보상을 얻고자 적극적으로 행동에 관여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즉 조금 비약적으로 접근하자면 의식의 역할 없이도 의사결정자는 진짜 돈을 구분해 내고 더 가치 있는 보상을 얻기 위해서 주어진 과제의 일부를 더 잘 수행해 낼 수 있다.          


이처럼 의식 밖 요소는 진짜 돈이라는 보상을 향해 우리 행동을 바꾸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도 이와 같이 의식 밖에서 특정 보상을 얻고자 우리 행동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의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도저히 입에 넣어서는 안 되는 설탕과 지방 덩어리를 입에 넣는 것과 같이, 우리는 때론 의식 밖 요소 혹은 본능이라고 부르는 것에 지고 만다.

또 본능을 따라 무작정 매력적인 이성 앞에 다가가 보기도 하지만 그 앞에서 의식은 올바른 대화 주제를 꺼내지 못하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는 본능이라 부르는 의식, 이성 밖 무언가가 우리의 행동을 이끌었던 경험들이 있다. 

이러한 본능은 보통 생존과 번영에 보다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에 반응한다. 

즉 의식 밖 의사결정자는 생존과 번영을 좇는다. 

심지어 의식의 개입 없이 알아서 행동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의식과 의식 밖 요소는 어떤 관계일까? 

일단 의식과 의식 밖 요소는 불완전해 보이지만 소통은 진행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본능의 명령은 차분히 집중하면 느낌의 형태로 희미하게 의식되기도 한다. 

앞선 frith의 이론에 의하면 의식은 예측자(포워드 모델)와 같은 의식 밖 요소에 어떤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이고 때문에 행동이 완전히 이루어지기 전에 예측자가 생산한 예측을 느끼고 대리감을 느끼게 된다. 

wegner의 이론 역시 의식이 행동을 통제하지 않더라도 어떤 의도는 느낄 수는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의 이론과 같이 우리는 설탕과 지방 덩어리를 입에 넣기 전에 희미하게 그것을 향한 강렬한 끌림을 느끼기도 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의식되지 않는 뇌 속 다양한 기능(주로 의식 밖 요소)이 의식에게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의식은 그 흔적을 느낌을 통해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때문에 의식 밖 요소의 흔적을 통해서 그 의도를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의식적으로 본능이 원하는 행동을 하거나 본능이 원하는 방향으로 경험을 의식적으로 왜곡할 수 있다.     

즉 느낌을 성찰함으로써 의식 밖과 소통하며 그가 원하는 바에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의식이 의사결정자가 원하는 바를 찾아냈다고 해도 그것을 주도적으로 행동이나 생각에 반영시킬 수 있냐는 또 다른 문제이다. 

특히 앞서서 다뤘듯 의식은 떠오른 경험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며 경험을 변화시키는 것에는 어느 정도 관여할 수 있지만 행동이나 생각을 통제하지는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의식이 특정 행동을 통제한다는 연구 결과도 분명 존재한다.

행동에 있어서 의식의 영향력을 찾기 위해서 앞서 다룬 Persaud, N., McLeod, P., & Cowey, A. (2007)의 연구로 돌아가 보자. 

해당 연구에서는 진짜 돈내기를 한 집단과 가짜 돈내기를 한 집단의 문자열 규칙 식별 과제 수행성공률은 차이가 났지만 내기 성공률은 차이가 나지 않았다. 

해당 실험에서 피험자가 최대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수행도 잘해야 하고 그 수행을 잘했다는 의식적인 확신도 필요하다. 

즉 최대한 과제를 잘 수행하고 그에 맞춰 최대의 돈을 걸어야 한다. 

그러나 보상을 실제 돈으로 바꾸면서 과제 수행은 개선되었지만 의식적인 내기는 그 영향을 받지 않았고 때문에 피험자는 최대의 이익을 얻어가지 못했다. 

이는 의식 밖 의사결정자가 관여하는 판단과 행동 그리고 의식이 관여하는 판단과 행동이 상황에 따라서 어느 정도 분리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자신과 과제를 성찰하고 진행하는 내기와 같이 의식이 주도하는 행동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특정 조건에서는 의식과 의식 밖 요소가 서로의 수행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직관적이고 암묵적인 능력으로 진행하는 이러한 과제를 일정 횟수 반복하게 되면 과제 수행은 점차 개선되고 그보다 더 많이 반복하게 되면 결국 내기까지 잘하게 된다. 

이는 직관 영역의 학습이 결국 의식적이고 명확한 규칙의 학습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정 조건에서는 의식이 암묵적인 수행을 개선하는 반대의 경우도 가능한데 그 대표적인 경우가 심상을 통한 수행 개선이나 복기이다. 

의식이 예측자나 기억을 다루는 영역과 협업해서 특정 운동에 대한 자세한 이미지나 영상을 만드는 것을 반복하는 것(즉 상상 속에서 행동을 연습하는 것)은 실제로 그 후에 이루어지는 수행을 개선한다(Landers, D. M. 1983). 

또한 바둑 등의 다양한 게임에서 이루어지는 복기는 습관과 같은 의식적이지 않은 수행을 개선시키는데 쓰인다. 

Ericsson(2016)이 제안한 올바른 연습 방법인 deliberate practice는 복기와 비슷하게 의식이 의식 밖 의사결정자의 올바른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는 연습에 있어서 우리가 잘 의식하지 않는, 자기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수행 수준과 수행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의식해 내고 그것을 연습에 활용함으로써 수행에 있어서 실질적인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다양한 증거를 통해 증명했다.

이와 같이 의식은 분명한 역할이 있고 의식 밖 의사결정자와 의식은 서로 소통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의식과 의식 밖의 영역이 공존한다. 

의식 밖 영역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본능적이라고 부르는, 생존과 번영에 우선을 둔 행동에 더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인다.

의식 밖 영역은 우리 행동과 의식에 강력한 영향을 준다. 

의식은 그 영향의 흔적을 느낌의 형태로 인지할 수 있다. 

의식은 보통 의식 밖 영역의 영향을 크게 받지만 의식만의 역할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의식 역시 의식 밖 영역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현명한 선택은 의식 밖 영역과 의식 모두가 최고의 선택을 했을 때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삶의 목표에 대한 얘기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삶의 목표는 어떤 형태이어야 할까? 

삶의 목표에 관한 고민은 아마 의식 밖 요소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의식 밖 요소는 장기적으로 생존과 번영을 이룬다는, 아주 어려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온갖 뇌 구성원의 참여를 요구한다. 

이러한 요구가 느낌의 형태로 의식에게 전달되며 삶의 목표에 대한 고민으로 구체화된다. 

만약 우리가 불안하지 않고 더 큰 행복을 찾지 않았다면 일상에 만족했을 것이기에 절대로 삶의 목표와 같은 발상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삶의 목표에 관한 고민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과제의 참여자 중 하나인 의식은 온갖 정보를 종합해 더 나은 선택을 하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삶의 목표를 만드는 데 있어서 의식의 역할은 의식 밖 영역의 요구를 검토하고 여러 정보를 종합해 더 올바른 선택을 만드는 것이 될 것이다. 

즉 우리 의식의 역할은 의식과 의식 밖이 공존하는 나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가는 것이며 그것을 토대로 올바른 삶이 무엇일지 고민하는 것이다.     


의식 밖 영역이 의식보다 더 많은 통제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충격적이다. 

이는 우리 삶에 목표의 순수성을 매우 위협하고 더 나아가 삶의 목표 따윈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는 회의감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의식 밖 영역이 통제권을 갖는다는 사실은 의식을 완전히 부정하기 위한 근거가 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분명히 대부분의 장면에서 의식 밖의 영역의 대표자 중 하나인 본능에게 처참히 패배한다. 

그럼에도 분명 의식이 존재하고 의식의 영향력 역시 존재한다.

의식과 의식 밖 영역에 대한 더 명확한 지식은 자기주장이 작아 보이는 의식이 어떠한 역할을 해낼 수 있는지에 대한 힌트를 준다. 

이어서는 지금까지 다뤘던, 의식이 전부라는 착각 위에 세워진 삶의 목표에 대한 얘기를 정리해 보며 의식에 관해 더 자세히 다뤄보고자 한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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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th, C. D., Blakemore, S. J., & Wolpert, D. M. (2000). Abnormalities in the awareness and control of action. 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of London. Series B: Biological Sciences, 355(1404), 1771-1788.


Landers, D. M. (1983). The effects of mental practice on motor skill learning and performance: A meta-analysis. Journal of sport psychology, 5(1).


Persaud, N., McLeod, P., & Cowey, A. (2007). Post-decision wagering objectively measures awareness. Nature neuroscience, 10(2), 257-261.     


Wegner DM, Wheatley T. (1999). Apparent mental causation. Sources of the experience of will. Am Psychol. 54(7):480-92. doi: 10.1037//0003-066x.54.7.480. PMID: 10424155.


안데르스 에릭슨. (2016). 1만 시간의 재발견. 비즈니스북스.


제시 베링. (2021) 나는 죽으려고 했던 심리학자입니다. 더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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