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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민 Aug 08. 2023

나와 삶의 목표, 그 답

삶의 목표를 찾기 위한 여정을 마무리하며

우선 긴 시간 긴 글을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글을 쓰는 기간 동안 읽어주시는 분들 덕분에 더 용기를 얻고 재미있게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떤 삶의 목표를 가져야 하는가?

이 고민 그 자체를 마무리하기 위해 세 달간 글을 써왔습니다.

오늘은 그 글의 마무리로 개인적인 얘기를 조금이나마 하고자 합니다.

본론에 들어가며 다시 간결한 말투를 쓰겠습니다.     


나는 잘 살고 있을까?

당시 담임 선생님의 영향으로 초등학교 2학년 때 이 고민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내 삶이 내가 의도한 데로 가지 않는 것이 매우 싫었다.

물론 학생 시절에는 정해진 길을 걷는데만 대부분의 시간을 사용하느라 이 고민에 답을 찾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없었다.

하지만 20살에 입시실패를 겪고 삶의 이정표를 잃어버리자 12년이나 묵은 고민과 불안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삶의 이정표를 찾는 것이 우선순위가 되었다.

이 고민에 답을 찾고자 1년을 휴학했고 전공을 늘려 1년을 더 공부했다.

취직을 서두르지 않았다.

좋은 환경에서 계약직 일을 하게 되었지만 연장 권유를 거절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편안하고 반복적인 일상에 길들여지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다.

일을 관두고 답을 찾고자 몇 달째 매일 카페에 가서 글만 쓰고 있다.

현실에서 답을 찾지 못해서인지 아님 그 답을 찾아 인정을 받고 싶어서인지 계속 이 문제에 매달리고 있었다.     


심리학 독서모임에서 이와 관련된 토론을 했을 때, 비로소 내가 특이하단 것을 알았다.

누구나 이 문제에 긴 시간, 치열하게 응하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다수가 취준 기간이나 이직 준비, 결혼 적령기 등 특정 시기에만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아주 크고 뚜렷한 삶의 목표를 찾아내기보다는 눈앞에 놓인 할 일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눈앞의 문제에 집중을 할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당시 내 상태는 과거에 비해 불안을 다스릴 수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한창일 때보다 이 문제에 어느 정도 덜 헌신하는 상태였음에도 그런 나와 비슷한 상태인 사람조차 거의 없었다.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기질적으로는 분명 걱정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불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가족력이 있다.

분당 외갓집에 갔다가 서울 집에 다시 돌아올 때쯤, 외할머니는 늘 교통사고 없이 잘 들어갔는지 전화를 거신다.

그리고 아무 문제없음을 확인하고 기도가 통했다며 안도하신다.

다 큰 남자가 집에 오는 시간이 늦으면 여전히 걱정하시는 어머니도 그렇다.

문을 잠그고도 엘리베이터가 오면 다시 한번 문을 확인하는 동생도 그렇다.

그럴 때마다 불안을 민감하게 느끼거나 불안에 대응을 꼭 하고야 마는 기질이 나에게도 유전되었다고 느낀다.

물론 실제 MMPI 결과에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강박증 점수가 보인다.

하지만 가족들 모두 나와 같은 고민을 하진 않는다.

내가 특별히 삶의 목표에 집착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 초등학교 2학년 때 경험 때문일 것이다.     



“살다 보니까 벌써 50살이더라, 내가 언제 이렇게 늙어버렸는지 모르겠어.”

엄격하고 유능해 보였던 담임선생님은 긴 교직 생활, 단란한 가정 등 삶에 있어서 많은 것을 이룬 어른처럼 보였었다.

삶이라는 말을 기수로서 자신이 원하는 데로 몰았을 것 같던 그녀는 반대로 자신이 삶에 끌려 다녔으며 어느새 그 여정의 마무리까지 왔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좌절하고 있었다.

인생의 마무리 단계에서 자신의 일생을 후회하는 것만큼 비참하고 끔찍한 일이 더 있을까?

그때의 그녀의 좌절과 내가 느꼈던 공포는 지금도 나에게 선명하게 남아 내 삶의 기준이 되어버렸다.

나는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때부터 그냥 살아간다는 것은 곧 후회로 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잠시 멈춰 서서 삶에 끌려 다니지 않고 잘 통제하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하곤 했다.

그때쯤 그나마 9살 어린애가 통제할 수 있는 시간은 학원을 안 가는 주말뿐이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인 주말을 의미 있게 보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삶을 낭비해 버렸다는 생각이 들어 일요일 밤마다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당시에는 대학 입시라는 비교적 명확하게 정해진 길과 부모님의 지원이라는 우산 안에서 그럭저럭 잘 지냈긴 했다.     


하지만 20살에 입시 실패를 하면서 이제는 진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이대로 삶에 대한 고민을 놓치고 그냥 남들 하는 것처럼 영어 공부하고 취업을 하고 회사를 다니다 보면 나는 내 담임선생님과 같은 인생을 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일단 그렇게 남들처럼 사는 것 자체도 어려워지고 있었다.

좁아진 취업 문턱이 내 불안을 한층 더 자극했다.

애초에 선생님처럼 사는 것도 힘든 거 아니야?

취업이 어렵다는 불안과 그렇다고 아무 곳이나 취직해서 그냥 살아서는 안 된다는 불안이 겹쳐서 이도저도 못하고 그야말로 방황을 했다.

그 방황과 함께 많은 실패를 겪었다.

불안에 점칠 될 때마다 지금 삶의 목표가 날 잘못된 곳으로 이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기존의 목표와 과정을 부정하고 삶의 목표를 다시 새롭게 고민했다.

그렇게 사회에 나가기 위한 준비 시간이 지연될 때마다, 성공하기에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평범한 삶을 살기에도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삶에서 벗어나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기에는 실력이 부족했다.

이 지독한 상황과 불안을 해결하고자 철학, 행복, 신을 공부해도 어느 순간 그들을 비판하는 회의론자가 되어 있었다.

분명 어떤 좋은 삶의 방향이 있을 텐데 나는 그곳에서 계속해서 멀어지고 있다고 느꼈다.

고민만 하기에는 적당히 일반 회사를 가기 위한 취업 준비도 해야 했고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한 도전도 해야 했다.

답도 없이 복잡하게 얽힌 고민과 불안 때문에 뭐 하나 제대로 파보진 않았지만 정말 이것저것 해봤던 것 같다.

그러면서 우연한 기회로 애초에 좋은 삶의 방향이란 게 정말 있는지에 관한 의문을 갖게 된다.     


온갖 인턴에 떨어지고 영업직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그때 경험한 주변 사람들은 그야말로 이성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영업장에는 다른 떳떳한 직업을 가질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확신 없이 기계적으로 물건을 파는 일을 열정적으로 하고 있었다. (물론 영업직은 자신의 선택이다.)

고객은 비판적인 생각 없이 고액의 해당 상품을 구매하고 있었다.

경영학과에서 배웠던 많은 것이 무용지물이었다.

사람들은 이성적이지 않았다.

나름 경영학을 전공했고 그래서 세상이 이성적인 계산으로만 돌아가는 줄 알았다.

그리고 그러한 이성의 끝에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라는 게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 사람은 그러지 않았다.

거액이 비이성적인 상황에서 오고 가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돈을 다루는 경영학을 배우면서 그 돈을 쓸어 담을 정석적인 방법을 확신에 차서 가르쳐주는 교수님은 없었다.

어쩌면 삶의 답이라는 것은 인간의 합리성이라는 이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비합리성이라는 현실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피해 갈 수 없는 비합리성, 본능을 더 배우기 위해 늦은 시기에 심리학 이중전공을 시작했었다.     


삶의 목표를 찾기 위해서 했던 각종 비판적인 생각들은 심리학을 공부할 때 유용했다.

늦은 나이에 어린 저학년 학생과 수업을 듣는다는 부담감과 열등감이 있어서 힘들었지만 그래서 치열할 수 있었다.

어쨌든 이 시기를 거치며 얻은 답은 역시 이성의 끝에 정해진 진리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만의 삶의 목표를 찾아낸 것은 아니었다.

한 학기를 거치면서 냉정한 통계의 결과의 생각보다 삶은 결정론적이라는 것을 배웠고 다시 한 학기를 거치면서 그래도 사람은 충분히 삶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아주 중요한 인간관에서도 이렇게 완전히 반대되는 내용이 공존한다.

이렇게 모호한 것이 사람이고 삶이라는 것을 배우며 삶에 대한 고민은 더 깊어졌다.

다만 이전과 달리 정해진 무언가는 없다는 생각은 성공, 다른 사람의 삶, 어떤 특정 가치 등 타인의 가치에 내가 이끌리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의 근거가 되었다.

적어도 삶의 목표에 대한 불안에서 이 정도로 자유로워진 것이 매우 감사했다.

졸업할 때쯤, 답을 더 찾고자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고 이 답을 찾는 여정을 공유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도 싶었다.

긴 시간 삶에 대한 답을 찾아왔던 과정이 어느새 나에게 있어서 하나의 즐길 거리이자 잘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역시 삶이 마음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우연한 기회에 강사, 교사 생활을 하게 되었다.

정말 뜻깊고 감사한 일이었지만 나는 여전히 삶에 대해서 더 얘기하고 싶었다.

삶의 목표를 고민하는 나와 비슷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같이 공부하고 싶었다.

훌륭한 학교에서 계약 연장이 제시되었고 교사 지원 제도도 변화해 앞으로 더 많은 기회도 보였다.

하지만 결국 일을 시작할 때 정해둔 기간인 1년이 지나고 일을 관두었다.

역시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삶의 고삐를 잡고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언젠가 비슷한 후회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막상 직장생활을 관두니까 불안이 몰려왔다.

이제 서른에 백수 생활을 하면서 존재하지도 않는 직업을 갖고자 한다.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정말 막막했다.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

삶의 목표에 대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아 보였다.

이런 종류의 말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공신력이 있어야 했다.

공신력을 위한 학위, 경력 등 무엇 하나 가진 것이 없었기에 무엇을 시작하든 아주 긴 시간이 투자되어야 했다.

언제쯤 경제활동을 할 수나 있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한편 살면서 역시 본능이나 인간관계 요구도 들어줘야 해서 머리는 더 복잡해졌다.

일을 떠나서 사람도 만나고 여가도 즐기고 다양한 경험을 해줘야 할 필요성도 느끼고 있었다.

할 일은 정말 너무나도 많았지만 무엇하나 선뜻 도전하기에는 어려웠다.

신기하게도 고민과 무기력함은 신체적 반응으로 나타났다.

하루에 적어도 14시간씩 자며, 한 달을 아무것도 못하고 잠만 잤다.

매일 버려지는 하루가 너무 쓰라렸다.

자기비판이 더해지며 울적함과 잠만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이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하루 할 일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큰마음을 먹고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부끄러운 글 솜씨지만 가장 하고 싶었던 삶에 대한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의 첫 시작으로 우선 삶의 목표에 대한 내 생각을 확실하게 정리하고자 마음을 먹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6월부터 매일 글을 쓰다 보니 부족한 글이지만 어느새 글이 좀 쌓였다.

한편으로는 삶의 목표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바도 좀 정리가 되었다.

늘 불안만 주던 삶의 목표란 놈이 왜 생겼는지 어떤 용도가 있는지 바라볼 수 있게 되면서 두려움과 불안을 거둬내고 나만의 삶의 목표를 좀 고민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조금 더 내가 무엇을 바라왔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만의 삶을 살기 원했지만 늘 주변에 신경을 아주 크게 신경 쓰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매일매일을 성실하게 보내고 그 결과를 남겨보니 이제 더 뻔뻔해져서 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살아보진 않았지만 이런 고민 없이 빠르게 일을 시작해서 단란하게 가정을 꾸려가는 삶도 가치 있긴 할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나와 같이 삶의 목표도 고민하고 좋은 친구를 만들고 지금 행복해보기도 하고 다시 일을 치열하게 하는 좀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는 삶을 살며 만족할 수도 있다.




삶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하지만 늘 느끼는 것은 아등바등 살면서 했던 무언가가 나중에 의미 있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돈도 못 벌었던 영업직 아르바이트를 해서 심리학과에 가게 되었다.

교사를 하면서 조금씩 했던 블로그 글 쓰기는 브런치를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브런치에서 글을 썼던 경험은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데 새로운 길을 제시해 줄 것이다.

내가 지나온 길들이 모두 나에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니 이제와 의미 없는 삶이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좀 특이하긴 하지만 이런 도전들을 계속해보며 살고 싶다.

담임선생님도 분명 이 부분을 놓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예상대로 되는 게 하나 없는 세상에서 꾸역꾸역 살아가기 위해서는 미래를 계획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 과거를 긍정하는 자세도 중요하다.

그녀의 한탄은 과거 긴 시간 동안 나의 끔찍한 불안과 방황의 원천이었지만 이제는 그 방황의 경험들이 내 삶의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

나를 포함한 다양한 제자들을 보면 그녀도 자신의 삶이 사실 꽉 차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삶의 목표를 찾아가며 결국 얻은 것은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도 된다는 자신감과 확신이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설득력 있게 삶의 목표를 짜는지 보다도 내가 내 삶을 마음대로 즐겨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확신이었던 것 같다.

이 부족한 글이 내가 얻은 위로와 자신감을 여러분에게 조금이나마 전달해 줄 수 있으면 너무나 감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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