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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육공 Aug 31. 2023

당장 오늘 밤 죽는다면

  괜찮을 것 같으세요? 아니면 미련이 남을 것 같으세요? 그런 질문을 봤어요. 저는 솔직히 괜찮을 것 같아요. 죽음 뒤의 상실은 남은 사람들의 몫이잖아요. 저는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종교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말이죠. 죽고 나면 아무것도 느끼지 않아도 돼요. 아쉬울 게 뭐가 있어요. 뭐라도 떠올려 보려 했는데 솔직히 생각도 안 나요. 못 간 전시회와 콘서트, 못 읽은 책, 못다 한 게임 다 무슨 의미예요. 죽으면 떠올리지도 못할 텐데. 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건 예외예요. 천재지변으로 갑자기 오늘 밤 죽는다면을 가정한 거랍니다. 딱 하나 아쉬울 게 생각났어요. 오늘은 이미 출근을 했기 때문에 오늘 밤 죽는 건 조금 억울하긴 해요. 미리 알려주면 출근 안 했을 텐데.


  죽음보단 삶을 더 자주 고민해요. 죽음은 너무 어렵거든요. 고민하면 머리가 아파요. 죽기 전까진, 어쩌면 죽고 나서도 영영 모를 문제인데 과학적으로 죽음을 설명하는 것 말고는 모르겠어요. 예전에 한 의사가 '의학적으로 모든 죽음에는 과학적 원인이 있다'라고 말했어요.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반사적으로 거부감이 들어요. 전문가의 소견 한 줄로 사라진 인생이 죽음이라면 왠지 수긍하고 싶지 않아요.


  고등학생 때, 옆 학교 학생회장이 죽었어요. 성적 좋고, 교우관계도 좋고, 가족과 선생님의 사랑까지 듬뿍 받았던 그 애가 유서조차 남기지 않고 자살했을 때, 그 애의 부모님은 두 달 동안 찾아갈 수 있는 모든 사람을 찾아다녔어요. 혹시 우리 딸이 무슨 이야기라도 남긴 게 없냐고, 뭐라도 좋으니 말해달라고, 우리 애가 그렇게 가버린 이유를 당최 모르겠어서 잠조차 들 수 없다고. 애석하게도 그 애와 친했던 모두가 알 수 없었죠. 그 애는 단 한 조각의 우울도 내비치지 않고 완벽한 비밀만을 남긴 채 사라졌네요. 사인은 추락으로 인한 두개골 손상과 과다출혈 따위였겠지 만요.


  생사라는 단어에 '과학'과 '원인'이라는 단어가 가당키나 할까요? 생사의 경계가 명확하긴 한가요? 생과 사를 프리즘에 투과하면 촘촘하게 이어진 스펙트럼이 생길지도 모르죠. 모든 삶은 이유 없이 던져졌고, 모든 죽음은 인생의 깊이를 담지 못할 거예요. 인생을 담고 있는 죽음이라니, 들어 본 적도 없네요.

  굳이 따지자면, 저는 죽음보다 생에 가까운 직업에 속해있어요. 물론 죽음에 때는 없지만, 저와 부대끼는 아이들은 생을 막 얻은 존재들이잖아요. 저는 아이들의 생 어딘가에 박혀있는 중이에요. 그중 몇몇에게는 꽤 큰 돌일 수도 있죠. 아직까지 제 손 안에서 생사의 경계가 움직이는 그런 경험은 없어요. 아직까지는. 그게 어떤 기분일지 아주 얕게 짐작만 합니다.


  제가 목격한 첫 번째 죽음은 다복이의 것이에요. 저는 그때 처음으로 '생명의 빛이 꺼진다'라는 진부한 표현을 완벽하게 이해했어요. 그 찰나의 순간 다복이의 눈에서 빛이 사라지더라고요. 방금까지만 해도 따뜻하고 몽실했던, 사랑해 마지않는 나의 가족이었던 다복이가 딱딱하고 거뭇한 박제가 되어버렸지요. 그 순간 슬픔이 저를 집어삼켜 상실에 울부짖느라 '죽음' 자체에는 집중하지 못했네요. 재난 같은 슬픔이 잠시 후퇴했을 때, 그때서야 죽음의 순간이 재생되었어요. 끊임없이.

  모든 생명은 죽어가는 중이라는데, 그 순간만큼은 생사가 양극단에 놓인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스펙트럼의 처음과 끝은 찾을 수 있지만 그 경계만큼은 모호하잖아요? 그래서 그랬을까요? 저는 지금 흰색과 검은색 사이, 회색의 어딘가에 놓여있을 테지요. 아무도 저의 스펙트럼을 규명하지 못할 겁니다. 길이와 농도 그 무엇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과학적 사인만이 남겠죠.


  오늘 밤에도 오직 본인만이 간직하는 그런 이유로 사람이 죽어 나갈 거예요. '좋은 사람이었다', '앞날이 창창했다', '나쁜 놈 잘 죽었다', '그렇게 살더니 꼴좋다', '평생을 한스럽게 살다 갔다' 등의 수많은 문장을 모두 그러모아도 하나의 생을 전부 묘사할 수 없어요. 인간은 딱 이만큼 고독하군요.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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