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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광현 Apr 11. 2024

커다란 문을 열고

일상드로잉

오랜만에 찾아온 미세먼지 없는 봄날, 경복궁은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인사동 골목과 궁궐 담벼락 주변엔 다양한 색상의 한복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외국인이 한복 입고 다니는 모습이 재밌다. 대여 한복을 입은 그들은 조선의 왕이었고 왕비였다. 셀카봉을 든 환한 웃음의 공주들도 꽃 위를 걷듯 사뿐사뿐 그 뒤를 따랐다.        




경복궁을 다녀왔다. 주말 날씨가 좋아 아이들과 집 근처에서만 놀긴 아쉬웠다. 내가 아이들 옷을 입혀주는 사이, 아내는 아이들 짐을 싸며 긴 시간의 차량 이동을 대비했다.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도 서울로 차를 몰고 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주말의 서울 교통 체증은 타지인에겐 두려운 일이다.        


세종대로는 늘 그렇듯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경찰들로 혼잡했다. 도로 위는 기어가는 차들로 가득했다. 잠시 창문을 내리고 소란스러운 광장을 바라봤다. 광화문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한 유명 종교인의 연설을 듣고 있었다. 그는 사리에 맞지 않는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대형 스피커를 뚫고 나오는 커다란 소리는 광화문을 넘어 종로구 일대를 겁박하고 있었다.


그는 전능감에 취해있었다. 신도들은 그의 말에 열광했고 연설은 점점 고조됐다. 말 한마디가 끝나면 동시 통역사가 이를 영어로 통역했다. 그가 약속하는 구원은 내세가 아닌 현세의 부와 명예였다. 익히 알고 있던 악명처럼 그는 여전히 종교를 팔고 신을 팔고 있었다. 영혼이 없는 자들은 그의 성체 안에 단단히 결집해 있었다.


다행히도 조금씩 차량을 전진해 소란을 뒤로하고 경복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선총독부 건물이 경복궁 앞을 가로막던 모습을 기억하는 나로선 현재가 감개무량했다. 어린 시절엔 국립중앙박물관이 조선총독부 건물이었다는 역사적 의미가 잘 와닿지 않았다. 무지한 소년에게 국립중앙박물관은 박물관치곤 공간의 활용이 어색하고 이국적인 건물일 뿐이었다. 일제는 한 나라의 법궁 앞에 식민 통치기구 건물을 세워놓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제 그 자리엔 어떤 흔적도 남아있지 않다. 흘러간 시간만큼 흐릿해진 분노와 묘한 안도감을 느끼는 나를 보았다.  

           

궐내엔 전국 수문장 임명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깃발과 언월도를 든 수문장들의 표정이 자못 진지했다. 관광객들은 감탄사를 연발했고, 수문장들의 동작 하나하나에 휴대폰 카메라는 빠르게 반응했다. 혼잡한 행사장을 지나 근정전 앞에서 가족사진을 찍었다. 부모와는 달리 궁궐이 지루했던 아이들을 위해 흥례문 주변에서 자유롭게 뛰놀게 했다.


근정문과 흥례문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두 남매는 마음껏 뛰놀며 술래잡기했다. 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관광객들의 표정은 대체로 밝았다. 커다란 문을 오가는 사람들을 보니 문득 십여 년 전 참여했던 전시가 떠올랐다. 서울시청에서 서울의 사대문을 주제로 기획했던 전시였고 나는 평면 작업을 출품했다.


지금 바라보니 개념은 설익었으나 표현의 재미는 있었다. 작업을 구상하던 당시도 정치는 사람들을 갈라놓고 있었고, 나는 불통이 피곤했다. 닫혀있는 사대문과 두꺼운 성벽엔 사람들의 고집스러움이 연상됐다. 오랜 고민 끝에 화면 안에 세계 인권선언문과 독립선언문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대문의 형태가 두꺼운 글씨로 드러나게 했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있다. 그 후 강산도 변할 시간이 흘렀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증오를 말하고 있다. 화창한 주말 집 밖으로 나온 사람들 얼굴엔 활짝 핀 봄꽃이 보이는데, 정치인들은 아직도 그 꽃들을 벚꽃과 사쿠라로 갈라치고 있다.


               





하늘 아래 어느 하나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보이며 들리는 소식과 장면들은 요즘의 우리를 절망하게 만든다. 계층 계파 간의 갈등은 물론 불합리 부조리에 지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잃은 듯하다.


(... 중략)


서울의 사대문은 숭례문, 흥인지문, 돈의문, 숙정문으로 사소문과 함께 서울을 둘러싼 문이다. 문의 주된 역할을 출입에 있다 한다면 우리의 의식과 이데올로기, 갈등을 중재하는 예술적 매개체로 사대문을 바라봐도 좋을 것이다. 작업의 주체인 문구들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의 인권, 독립 선언문들이다. 모두가 격정적이었고 간절하며 하나가 되었을 당시의 선언문 안에서 사대문이 드러나게 표현하였다. 소통과 이해보다 우선되는 화합의 조건은 없을 것이다. 세계화된 도시 서울의 사대문을 통해 온전하고 건강한 정신이 소통되길 소망한다.


<서울을 보다 전시 작업 노트 중>




경복궁 근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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