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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겸작 Aug 30. 2024

e05 러시아(1) - 게임의 시작

김주노는 사타구니에서 나온 종이를 노려보았다.


'어쩌지? 메인 시나리오를 진행해야 하나? 아... 엄마 보고 싶다.'


이곳은 김주노가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친구나 가족이라고 할만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차라리 캐나다가 나았다.


김주노는 결국 메인 시나리오를 진행하기로 결심했다.


메인 시나리오를 하면서 미션을 차근차근 수행하다 보면 원래의 대한민국으로 돌아올 것으로 믿었다.


김주노는 종이 쪼가리를 집어 들고 "오케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호탕한 외침이 끝나자 사타구니가 다시 가려웠다.


이제는 익숙했다. 또 뭔가 나오겠지.


예상대로 '미션지'라고 적힌 종이와 '설명서'라는 종이가 연달아 나왔다.




먼저 미션지를 살폈다.


수많은 나라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맨 밑줄에는 '메인 시나리오를 진행할 나라를 선택하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김주노는 생각했다.


'일단은 어쩌다 대한민국이 러시아 천지가 되었는지 알아봐야겠다. 일단 러시아부터 시작하자.'


김주노는 허공에 대고 "러시아!"라고 크게 외쳤다.


들고 있던 종이에 빛이 번쩍이더니 뒷장에 다음과 같은 글자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첫 번째 메인 시나리오 : 당신은 동유럽 서민 중 한 명입니다. 능력을 발휘하여 실제 역사보다 빨리 소련을 붕괴시키세요.'


이건 뭔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인가. 소련을 붕괴시키라고? 권력자도 아닌 일개 서민의 지위에서?


앞이 깜깜했다.


아무리 세계사 지식이 있다고 한들 힘든 미션일 것 같았다.


풀이 죽어 낙담하던 중 사타구니가 다시 가려웠다.


"아, 쫌!"


버럭 성질을 부리며 김주노는 종이를 꺼내 들었다.


'튜토리얼 완료를 축하합니다. 보상을 받으시겠습니까?'


김주노는 금세 화색이 돌았다. 보상이라고? 그래, 진즉 이런 게 있었어야지!


종이 뒷면에 스멀스멀 글자가 올라왔다. 김주노는 잔뜩 기대하고 종이를 찬찬히 살폈다.


'튜토리얼 보상으로 다음 중 3개의 아이템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1. 의사소통권 : 미션을 수행하는 나라의 말과 언어를 구사할 수 있습니다. 튜토리얼 미션에서는 기본으로 주어졌으나 본 미션에서는 아이템이 필요합니다.


2. 세계관 리셋권 : 미션을 시작할 때 세계 역사를 원래대로 돌려놓습니다. 현재 1개 변경되어 있습니다. 아메리카 원주민이 구원받았습니다.


3. 미남권 : 미션 수행시 높은 확률로 매력 넘치는 미남 캐릭터로 시작합니다. 기본 설정값 : 지금 당신의 모습에서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깔만 바뀐 채 미션이 시작됩니다.


4. 시대 선택권 : 미션 수행시 스타팅 연도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5. 네비 소환권 : 각종 인물이나 물건의 위치를 알려주는 네비 요정을 소환합니다.


6. 설명충 소환권 : 미션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주는 설명충 요정을 소환합니다.


'6개 중 3개라...'


김주노는 신중했다. 일단 의사소통권을 선택했다. 언어능력은 필수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부터는 고민이었다.


'앞으로 수많은 미션을 수행할 텐데, 가장 필요한 게 뭘까.'


김주노가 미션 속 다른 인물들과 다른 점은 남들과 달리 미래를 알 수 있다는 것뿐이었다. 유일한 무기이자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보다 정확한 지식은 보다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김주노는 장고 끝에 요정 소환권 2개를 선택했다.


아이템 선택을 마치고 김주노는 캐나다 여행이 시작된 순간을 떠올렸다. 갑자기 정신을 잃고 러시아 오지로 떨어질 게 분명했다.


본격적인 미션을 시작하기에 앞서 서둘러 아이템을 테스트해 보기로 했다. 러시아에 대한 사전지식이 필요했다. 설명충을 불러야 했다.


"너무 불친절한 거 아냐? 소환 방법은 알려줘야 할 거 아냐? 설마, 나와라, 뿅! 이런 말을 한다고 요정이 나오는 건 아니..."


기다렸다는 듯 설명충 요정이 등장했다. 주먹만 한 몸뚱이에 예상과 달리 큐트한 얼굴을 가진 여성형 요정이었다.






"안녕하세요. 주인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허허허, 김주노는 헛웃음이 나왔다. 이게 진짜 되네?


"좋아. 설명충이라고 했지? 내가 언제 러시아로 떨어질지 모르는데, 일단 러시아에 대해 요점만 딱 집어서 알려줘!"


"예 썰!"


큐트한 설명충 요정은 상냥한 목소리로 러시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제 설명충 요정이 말해 준 러시아에 관한 정보를 보겠다.


러시아, 누구나 알고 있는 나라다.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세계에서 땅덩이가 가장 큰 나라로 유명하다. 러시아 이전에 소련이라는 나라가 미국과 함께 냉전시대를 이끌었다는 점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우선 땅덩이부터 보겠다. 러시아는 얼마나 압도적인 면적을 가지고 있는가.


인터넷에서 세계지도를 검색해 보면 러시아가 아프리카보다 훨씬 넓게 그려져 있다. 그렇다고 러시아가 아프리카 대륙을 압도할 정도로 면적이 넓은 것은 아니다.


실제로는 아프리카 대륙이 훨씬 크다. 아프리카 총면적은 3,000만 ㎢고, 러시아는 1,700만 km2 정도다. 


세계 지도에서 러시아가 크게 그려진 이유는 따로 있다. 둥근 지구를 평면에 그리면서 왜곡이 생겨 북쪽 지역이 엄청나게 크게 보일 뿐이다. 지도만 보면 러시아 지역에 중국이 4개 정도는 들어갈 것 같은데, 실제로는 중국의 2배 정도 크기밖에 안 된다.


수도는 모스크바다. 우리나라, 정확히는 북한과도 국경이 맞닿아 있다.


땅덩이에 비해 인구수는 적다. 대충 1억 5,000만명 정도 살고 있다.


구성 민족을 보면 우선 러시아인이 80% 이상이다. 러시아인은 슬라브계 혈통, 그러니까 동유럽 지역에 살았던 백인 민족의 혈통을 가지고 있다. 나머지 20%는 근처 유목민족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국교는 없지만, 신자의 비율이 높은 나라다. 70% 이상이 기독교, 정확히는 러시아 정교회 신자다.


독교 국가로 분류되는 미국도 신자가 60% 정도밖에 안 된다. 미국의 무종교 비율은 30% 정도인데, 러시아의 무종교 비율은 15% 정도에 불과하다. 신자 비율이 높은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표면상 보이는 수치만 보면 명실상부, 종교의 나라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 상황은 어떨까?


중국이 등장하기 전에는 미국과 양강구도를 이루었을 만큼 경제력이 강한 편이다.


전체 GDP는 약 3조 달러다. 대략 세계 6위 정도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1인당 GDP를 기준으로 하면 세계 53위 정도에 해당한다. 우리나라보다도 낮은 편이다. 어마어마한 땅덩이에 어마어마한 자원을 생각하면 좀 더 높아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러시아는 경제력으로만 국력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세계 최대의 핵보유국이기 때문이다.


통상적인 군사력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로 평가되지만, 핵무기 보유량을 기준으로 하면 미국에 앞선다. 특이한 건, 군사력 순위는 2위인데 국방력 지출 순위는 3위~5위 정도에 해당한다. 미국이나 중국보다 훨씬 적고, 그다음 순위인 인도나 사우디아라비아와 비슷한 수준이다.


역사적으로, 웬만하면 함락당하지 않는 나라로도 유명하다.


혹독한 추위가 러시아를 보호하고 있다.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러시아의 겨울 때문에 나폴레옹이 몰락했고, 천하의 히틀러도 전쟁을 포기해야 했다.







설명충 요정은 신나게 주저리주저리 떠들더니 히틀러 이야기를 마치자마자 홀연히 사라졌다.


그리고 캐나다로 떠났을 때처럼, 갑자기 고시원 방의 전기가 나갔다. 방은 어두웠고, 창문에서 번쩍, 강한 빛이 들어왔다.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김주노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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