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 안 되는 오지라퍼들이여 안녕.

by 비콘

혈당관리를 할수록 뜻하지 않은 난관들이 여기저기서 터집니다. 빵, 떡, 면을 최대한 멀리한 관리초기에 가장 큰 방해는 가족이었습니다. 제가 당밍아웃하지 못했으니 가족은 당연히 맛있는 고탄수화물을 나눠먹고 싶을 수밖에요.


“이 절편 좀 먹어봐.”

저는 담백한 절편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거절했죠.

“잡채 했는데 간이 딱 좋다. 맛이라도 봐.”

저는 잡채도 좋아합니다. 그러나 당면처럼 전분류로 만든 음식은 맛도 주지만 혈당스파이크도 안겨줍니다.


나눠먹고 챙겨주려는 소중한 마음을 딱 자르기 힘들 정도여서 마침내 넌지시 얘기합니다. 다이어트를 시작해서 다음에 먹겠다고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식권유는 멈추지 않습니다. 결국 한 톤 높아진 목소리로 선언합니다.

“건강관리 하니까 당분간 어떤 음식도 권하지 마세요.”


차라리 당밍아웃을 했더라면 마음 편히 식이조절을 할 수 있었을까요.


비록 저는 당밍아웃을 놓쳤지만 최근 당뇨진단을 받으신 분이라면 가족에게(특히 배우자에게) 진단 직후 바로 고백하기를 추천합니다. 혼자만 끙끙 앓아봤자 평소 생활태도가 핵심인 만성질환이다 보니 가족의 협조와 이해가 없다면 힘들수밖에요. 아내분들 중에는 당뇨인 남편의 관리를 위해 혈당공부를 시작하고 저당질 도시락을 챙겨주는 경우도 있더군요.(이런 아내분은 남편분이 업고 다니셔야 합니다.)


당뇨사실을 모르는 가족의 음식권유는 귀찮을지라도 애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가족은 도움이 안될지언정 사랑하는 참견쟁이일뿐입니다.


먼지 한톨 남기지말고 하루빨리 내다버려야 할 오지라퍼들은 미디어에 노출되는 근거부족한 과다정보와 엉터리 치료법, 편견에 가득한 시선, 상술적인 혈당관련 아이템들입니다.


이 한알이면 정상혈당 당장 가능, 누구나 당뇨완전정복이요 식은 죽 먹기라는 식으로 홍보하며 발등에 불 떨어진 이들을 현혹시키는 상품과 사람들이야말로 쓸데없는 오지라퍼들입니다. 이들은 동식물성 즙들, 한방에 문제혈당을 때려잡는다는 근거없는 혁신적 약품과 요상한 기기들, 치료법까지 스펙트럼도 다양합니다. 의심스럽지만 당장 합병증이 무섭고 걱정되는 당뇨인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혹하고 결국 소중한 지갑을 열고 맙니다. 의사는 오히려 그런 즙이야말로 간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하지만 말입니다. (고백건대 저도 잠깐 여주즙과 돼지감자에 굴복한 적 있었습니다.)


제가 겪은 인간오지라퍼 중 최악은 “의사도 아닌데 당뇨얘기 해봤자.”라고 깎아내리던 어떤 이였습니다.

당뇨관련 일 때문에 얘기 중이었고 제가 진단자라는 사실도 알고있는 상대였습니다. 친구도 지인도 아닌 그저 비즈니스적으로 만난 자리였었죠. 그런 자리에서 들은 그 한마디는 수년간의 제 경험, 셀 수 없을만큼의 기록, 체험에서 우러난 깨달음을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진정성마저 단숨에 베어낸 상당히 불쾌한 오지랖이었습니다.

의사도 당뇨를 겪지 않으면 모르는 게 많던데, 저는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 단지 같은 강을 건너는 이들에게 저의 돌다리를 보여주려는 것 뿐인대 말이죠.


매일 혈당을 기록하고, 음식 앞에서 망설이고, 운동화 끈을 묶고 또 묶습니다. 삶을 조금이라도 길고 건강하게 붙들기 위해 수많은 시도와 실패를 지금도 매일 겪고 있습니다. 물론 갈수록 실패는 줄어들고 있지만 평생 시행착오를 줄여나가는 삶을 살아갈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의사가 아니라서’ 말할 자격이 없다는 건 저로선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알 수 없는 편협한 시각일뿐입니다. 절대적 기준을 말하는게 아니라 저와 주변당뇨인들의 생생한 경험과 검증된 시행착오를 ‘의사아닌 일반인의 사견일 뿐’이라고 부정하다니 엄청난 권위복종형 오지라퍼입니다.


정보의 출처도 중요하지만 그 정보가 몸을 통과했느냐, 삶을 건너왔느냐의 임상체험 역시 미약하나마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제가 시도한 모든 노력은 한국과 일본의 내과전문의의 조언과 자료를 바탕으로 행동한 시행착오들입니다. 의사를 맹신하면서 그 전문가의 충고를 따른 성공과 실패의 기록을 부인하는 건 모순 그 자체입니다.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오지라퍼 아이템 중 제 지갑을 열게 만든 쓸데없는 물건 중 하나는 아마존을 통해 구입한 중국산 혈당 스마트워치였습니다. 혈당패턴을 찾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이나 손끝에 바늘을 찔러야 하는 채혈기나 비싼 CGM(연속혈당 측정기)이 필요없고, 손목에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세상 편하게 수치를 알려주는 시계라니요! 이거야말로 진짜배기 스마트워치 아닙니까? 가격도 해외배송료 감안하면 5만원 이하여서 눈 딱 감고 구매했더랬습니다.


그러나 도착한 혈당워치는 조잡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허술한 종이에 적힌 사용법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더군요. 혈당 스마트워치는 수년 전부터 출시얘기는 있었지만 믿을만한 제품은 2025년 현재 아직도 요원합니다. 어쩌면 이런 제품이 정말 출시가능할까 의구심마저 듭니다. 이렇게 당뇨인들을 홀리는 엉터리 아이템과 정보들이야말로 꼭 피해야 할 오지라퍼들입니다. 도움은커녕 스트레스받아서 혈압마저 올라갈 수도요.


갈수록 당뇨 시장규모도 커지면서 상상도 못 했던 관련템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당류 0이라지만 다른 첨가물이 몸에 해로운 식품도 있고, 심지어 당류 0이어도 혈당이 오르는 간식도 있습니다. A와 B의 당화혈색소(HbA1C: 6.6부터 당뇨진단) 수치가 같을지라도 각자 체질, 건강상태에 따라 통밀빵 한 조각을 먹어도 식후 혈당수치는 다를 수 있습니다. 원재료와 영양성분표를 꼭 확인해야 하는 이유이지요. 물론 그중엔 고마운 찐아이템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당뇨 진단을 받았을 시 무엇이 먼저일까요?

제 경험상 3가지를 추천합니다.


하나, 장기전을 위한 멘탈관리.

당뇨진단이 이제부터 내 몸을 사랑하는 계기가 된다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정신승리이자 마음가짐.


둘, 약 복용을 주저하지 마세요.

간혹 약을 바로 드셔야 할 상태인데 약 없이 본인이 노력해서 고쳐보겠다는 분들이 계십니다. 물론 좋아지신 분도 드물게 계시지만, 오히려 치료 타이밍을 놓쳐서 합병증을 유발한 경우도 적지않게 보고 들었습니다. 부단한 노력으로 마침내 단약하는 경우도 있으니 치료의 방법은 주치의와 상의할 일이지 환자가 결정하는 건 금물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두려움없는 ‘당밍아웃’입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않고 감기에 걸렸다고 하는 것처럼 얘기하는 겁니다. 주위의 이해와 협조가 필요하니까요.

저는 2형 당뇨진단 후 1년 만에 상당히 수치를 떨어뜨렸고 2년 남짓만에 깐깐한 주치의의 입에서 단약을 진단받았지만 마음편히 주위에 ‘당밍아웃’을 못했던 게 여전히 아쉽습니다. 유럽 및, 미국, 일본의 경우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훨씬 개방적이고 사회적 시선도 편견이 덜해서 부러웠습니다. 개인의 당뇨관리권이라는 단어도 존재하더군요. 당뇨인들 중 가족 걱정시키기 싫어서, 자기 관리 소홀해서 그렇게 됐다는 불편한 사회시선 때문에 당밍아웃을 못하겠다는 분들을 많이 봤습니다.


어쩌면 위 3가지 중 ‘당밍아웃’이 가장 중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렇지않게 당밍아웃 하는 사회분위기라면 남의 눈을 피해서 몰래 인슐린을 맞거나 회식 때 왜 그리 식성이 까다롭냐는 핀잔을 듣는 스트레스도 없겠지요.


이것저것 민간요법을 권하는 이들은 차라리 한 조각 애정이라도 있지만, 그저 부정적 시선만 보내는 이들은 편견이 심한 오지라퍼들일 뿐이니 마음편히 멀리 하세요. 우리의 혈당건강은 관심없고 지갑만 노리는 상술적 오지라퍼들도 당연히 손절하세요. 물론 어떤 게 좋고 나쁜 지를 알기 위해서 스스로 노력해야 합니다. 건강은 공짜가 아니니까요.


의학적 근거가 입증된 전문의의 유튜브 의료채널이나 대한당뇨병학회 사이트도 자주 검색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당뇨가 국민병이 된 지 오래된 일본의 경우, 당뇨전문 내과의가 운영하는 채널도 꽤 도움이 되었습니다. 만성질환은 패러다임도 변화하는지라 새로운 학설을 공부하는 적극성도 있으면 더 좋습니다. 모조리 실행하긴 힘들고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주장들을 천천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어차피 혈당관리는 평생관리니까요. 도움 안 되는 가짜들과 이별할 때 꾸준히 나만의 루틴을 찾아갈 수 있는 진짜 길이 보입니다.


문득 냉장고 속에 묵혀둔 동네시장표 돼지감자 전분이 떠오릅니다. 혈당관리에 좋다며 광고하길래 부랴부랴 사 온 아이템입니다. 돼지감자가 인슐린에 좋다는 입소문도 유명하니까요. 그날 저녁 돼지감자 옹심이를 만들어봤는데 쫄깃한 식감이 입안에 달라붙을 정도로 맛있었습니다. 밀가루대용으로 훌륭한 대체제가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식후 혈당수치는 확 치솟더군요. 돼지감자는 몰라도 역시 전분류는 쉽지않습니다. 저로선 헤어져야 할 오지라퍼 아이템 하나 더 추가입니다.



10화 오지라퍼.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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