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면 사라지는 것들

[방관자]

by 박나킨

잠들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

아빠도, 엄마도, 나도, 기억들도.


잠들면, 모두 사라져 버리길.

그래서 아이는 자는 시간을 제일 좋아한다.

폭력도, 싸움도, 아빠도, 엄마도 모두 잠드니까.


그런 줄 알았다.


리드미컬한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진다.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한다.

곧 그가 도착한다는 신호다.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리기 시작한다.

차라리 자는 중에 오면 좋으련만,

자는 척은 내가 제일 잘하는 연기니까.

다정한 연기, 겁먹지 않은 연기는 아직 힘들다.


그가 온다, 온다, 왔다.

"다녀오셨어요."

엄마와 나는 문 앞으로 달려가 인사를 한다.

마중 인사는 꼭 한다, 안 하면 앞으로 어떤 소리가 날지 장담할 수 없다.


밥그릇과 반찬이 탁구공처럼 날아오른다.

미처 피하지 못한 엄마의 눈에 맞는다. 금세 새파랗게 부어오른다.

나는 귀를 막고 구석으로 숨는다.

숨바꼭질을 제법 해본 솜씨다.

오늘은 또 뭐가 마음에 안 들었을까.


"밥이 꼬들밥이잖아. 힘들게 일하고 와서 꼬들밥 씹으면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엄마는 왜 꼬들밥을 했을까.

아빠는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오늘도 제때 자기는 글렀네.


아빠는 그래도 아이를 때리진 않는다.

내가 다리에 달라붙어 "하지 마세요. 참으세요." 사정을 한다.

흔들흔들,

나를 떼어놓기 위해 다리를 흔들거린다.

놀이기구같이 은근히 재밌다.


조금 화가 가라앉았는지, 씩씩대며 방으로 들어간다.

음, 오늘은 좀 양호하군.

엄마는 그릇들을 치우며 훌쩍 거린다.

나는 그런 엄마를 쳐다보기가 힘들다.

아마 4~5살 때부터 청소와 걸레질을 시작했었다.

조금의 위로와 도움이 되고 싶었다. 아직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쓱쓱, 치우는 걸 돕는다.


이제 좀 잘 수 있을까.

새벽까지 커지는 소리, 싸움, 욕지거리.

귀를 막는다.

하느님, 부처님을 찾으며 기도를 한다.

그러다 얼핏 잠이 든다.


엄마의 멍,

아빠의 욕,

어지럽던 방,

하나씩, 무언가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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