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실전 시작

'최고 기록'으로 티켓팅을 시작하다.

by 단음

[PART 1] 어느날, 클래식

4. 실전 시작




2022년 12월 8일, 통영국제음악당.

임윤찬 피아노 리사이틀 – 스테인웨이 위너 콘서트 인 코리아.


프로그램은

올랜도 기번스의 "솔즈베리 경의 파반느와 갈리아드",

바흐 "신포니아",

리스트 "두 개의 전설", "단테 소나타".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무려 30만 원짜리 통영국제음악당 회원권을 결제했다.


영화 말고는 티켓을 사 본 적 없던 나에게,

회원권은 일종의 티켓팅 치트키였다.


지금도, 앞으로도 절대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그렇게 큰 금액을 단 몇시간짜리 공연을 위해

아무 망설임 없이 결제한 내 자신이

조금 낯설었을 뿐.


아마 그때의 나는

그만큼 강하게 마음이 움직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치트키 덕분에

다행히 원하는 자리를 예매할 수 있었다.


아니— 지나치게 좋은 자리로 시작해버렸다.

(문제는, 그 자리가 아직도 ‘최고 기록’이라는 것.)








경기도에서 차를 몰고 4시간 반,

수요일 오후의 조퇴, 공연 후 새벽 3시 도착,

그리고 다음날 다시 출근.


무모한 일정이었지만,

설렘만 가득했다.

그 설렘은

티켓팅을 마친 순간부터

조금씩 현실이 되어갔다.


공연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프로그램 예습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클래식 초보팬인 나에게

바흐는 그저 교과서 속 ‘음악의 아버지’일 뿐이었고,

끝도 없이 반복해 들어도,

신포니아는 여전히 어렵기만 했다.


그래서인지,

바흐보다 리스트가 더 기대되었다.


초절기교 연습곡, 메피스토 왈츠,

그리고 순례의 해 2년 '이탈리아'—


그가 연주한 리스트 곡들을

얼마나 반복해서 봤던가.

이제 손끝만 봐도

어느 곡인지 짐작이 갈 정도였다.


드디어,

그 손끝의 움직임을

내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니.

그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1층 G열. 정면에서 살짝 왼쪽.


첫 음이 울리는 순간, 공기가 달라졌다.

연주가 시작되자 ‘생각’은 멈췄고,

그 자리에 음악만 남았다.


임윤찬의 연주는

단번에 내 호흡을 가져갔다.


숨이 멎었고,

공연장 안의 공기마저 천천히 그의 손끝을 따라 움직이는 듯했다.

모든 공기를 끌었다가 풀어주고,

다시 조용히 끌어당기는 듯한 연주.


그렇게 완벽하게 조율된 공기 속에서,

나는 내가 기대하던 감정과는 전혀 다른 지점에서 울컥하고 있었다.

리스트를 더 기대했지만

눈물은 바흐에서 터졌다.


예습 내내 숫자로만 기억되던 곡들이,

그 날 무대에선 처음으로 음악이 '소리'가 아닌 '감정'으로 다가왔다.


빠르지 않은 손 끝에

오히려 더 깊은 긴장이 있었다.

나는 눈을 뗄 수 없었고,

50분은 5분처럼 흘러갔다.

그 감동은

예습도, 지식도 필요 없었다.






돌아오는 길,

음들이 귓가에 맴돌았다.

집에 도착한 건 새벽 3시.

6시에 일어나야 했지만—

그날은 도저히 잠들 수 없었다.


이불을 덮고 누워서도

음악은 자꾸만 다시 재생되었다.

눈을 감아도, 손끝의 움직임이 떠올랐다.

마음은 여전히 그 무대 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누군가 말했던 그 한 단 문장—

"공연장에서 느끼는 감동은 달라요."

그 말이,

이토록 정확한 표현이었다는 걸.


그리고,

조용히 결심했다.


앞으로-

모든 피켓팅에

참전하리라고.






새벽까지 기다려 봤던
바흐 신포니아 위그모어홀 실황.

앵콜로 흐르던 리스트 ‘사랑의 꿈’에서,
쏟아지던 졸음이 달아나고
다시 울컥했습니다.

아래 영상은
위그모어홀 실황 앵콜 장면을 담은 영상입니다.
출처 | 유튜브 채널 ‘Wigmore Hall’ 공식 채널 (해당 영상 중 일부 발췌)


본 영상은 Wigmore Hall 공식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된 실황 영상 중, 리스트 ‘사랑의 꿈’ 앵콜 장면만 감상 목적으로 발췌한 편집본입니다.


원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RJeGcWZ-K5Q&t=6214s]

모든 권리는 Wigmore Hall 측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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