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이 현실이 되는 순간
매년 가을이 되면 독일 뒤셀도르프에서는 세계 최대 재활 보조기기 전시회에서 열린다. 회사는 매년 전시회에 참가해 부스를 운영하는데 몇 년 전 전시회에서 한 한국인 가족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독일까지 온 한국 회사를 우연히 발견하고 부스에 방문해 주신 거였다.
잠깐 대화를 해보니 아내는 독일 교포 출신의 한국인이고, 남편은 한국인인데 한국에서 만나 결혼을 하고 한국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 아들을 낳았는데 아이에게 장애가 있어 아이에게 한국 보다 독일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가족들이 모두 독일로 다시 역이민을 왔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아이의 몸에 잘 맞게 피팅된 휠체어와 마치 내 몸처럼 휠체어를 잘 타고 있던 모습을 보며 나는 부모님이 옳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휠체어를 타는 아이들은 대부분 휠체어가 아닌 유아차를 타고 있거나 휠체어를 타더라도 몸에 맞지 않는 휠체어를 타고 오는 경우가 대다수였으니까. 그에 반해 몸에 딱 맞는 독일제 맞춤형 피팅 휠체어를 타고 있던 아이가 굉장히 인상 깊었다. 만약 이 가족이 한국에 살고 있어어도 아이가 이런 휠체어를 타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언젠가 SNS에서 우연히 여섯 살 외국 아이가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영상을 봤다. 한 손에는 스케이트 보드를 들고 분홍색 파티드레스를 입은 아이는 12ft나 되는 스케이트 볼(bowl) 가장자리에 서서 반스를 신고 있는 왼발로 신중하게 스케이트 보드 끝을 고정해 균형을 잡았다. 그리고 숨을 한 번 들이마시더니 망설임 없이 오른발로 반대편 스케이트 보드 끝을 세게 밟으며 볼의 곡선 안으로 매끄럽게 미끄러졌다. 제 키의 몇 배가 되는 깊은 곳으로 과감하게 몸을 던지더니 마치 파도를 타듯 볼을 누비며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를 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겁이 많은 나라면 절대 시도할 생각도 못했을 텐데, 아이의 모습이 참 자유로워 보였다.
맞아, 두려움을 참고 눈을 질끈 감고 용기를 내고 나면 나는 훨씬 더 자유로워질 수 있지.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도, 운전을 처음 시작했을 때도, 그리고 새로운 경험과 도전을 앞두고 항상 그랬었던 게 기억났다. 그리고 그 자유는 두려움의 크기보다 훨씬 더 컸다.
작년 레하케어를 갔다가 sit‘n’skate라는 독일의 비영리단체 사람들과 대화를 한 적이 있다. 하나같이 락스타처럼 힙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는데, 재단을 만든 데이비드 르부저(David Lebuser)는 21살 때 사고로 휠체어를 타게 된 중도 장애인이었다. 사고 후 재활 치료를 받고 휠체어 스케이팅을 하게 된 그는 결국 독일 최초의 프로 휠체어 스케이트 선수가 되었는데 그 후 자신의 파트너인 리사(Lisa)와 함께 sit’n’skate라는 단체를 만들어 휠체어 스케이팅을 중심으로 휠체어 스킬 교육 그리고 지역 사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 고정관념 파괴하기 Destroying Stereotypes »을 슬로건으로 휠체어 사용자와 장애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 접근하는 그들의 방식이 인상 깊었는데 첫 번째로 비장애인도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스케이트’를 휠체어 사용자들에게 가르친다는 것과 스케이트 파크에서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각자의 방식대로’ 스케이트를 타는 활동들을 하는 것이었다.
인스타그램에서 운영되는 공식 계정에는 성인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모습도 많이 보였는데 내가 봤던 그 여섯 살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것과 다를 것 없는 모습으로 분홍색 휠체어 위에서 헬멧을 쓰고 용감하게 스케이팅을 하고 있는 아이의 사진을 보는데 마음이 뭉클했다. 저렇게 스케이트를 타기까지 얼마나 많이 넘어지고 얼마나 무서웠을까. 사진 속 웃음이 가득한 아이의 얼굴을 보는데 내 일처럼 자랑스럽고 참 부러웠다.
일을 하며 정말 많은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만났고, 그때마다 새롭게 배우는 건 ‘아이들은 항상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능성이 있고 결국 어떻게 해서든지 각자의 방식대로 해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많은 때 그 가능성을 믿고 지지해 주는 부모나 주변 환경에 둘러싸인 아이들은 그 가능성을 결국 현실로 만들어 내는 힘이 있다는 걸 나는 여러 번 목격했다.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들을 위해 독일로 떠나는 선택을 하는 대신; 기꺼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행복하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각자가 상상하는 가능성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현실로 만드는 더 많은 모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