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n Oct 26. 2022

계속해서 점을 이어 나가자

10_목표 지향에서 호기심 지향의 삶으로

그림 번아웃을 극복하고자 쓰기 시작했던 글들을 통해 나는 지난 2년간의 시간들과 그보다 훨씬 더 과거의 기억들까지 되돌아볼 수 있었다. 우리가 어떤 사건 안에 속해 있을 때는 보지 못하던 것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명확하게 볼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머릿속에서 두서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을 글로 나열을 하다 보니 마음속에서 정리되는 것들이 있었다.


실패를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


우선 번아웃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이전의 나에게 번아웃은 곧 실패와 동의어였다. 번아웃이 내게 지워준 무게는 결국 패배감, 자책감, 굴종의 무력감이었다. "실패한 나"는 초라하고, 어디에 말하기도 부끄러운 그런 기억이었다. 그런데 글을 써가면서 "실패한 나"는 "실패했던 나"가 되었고, "실패를 통해 배운 나"로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무언가에 실패한다는 것은 현재 나아가는 방향을 달리 해보아야 한다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출처: KBS 홈페이지 <쌤과 함께>

얼마 전 TV 프로그램에서 이런 화면을 접했다.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도 퀴즈를 내겠다.

여기에 어미닭과 병아리가 있다. 이들 앞에는 장애물이 있고, 장애물 너머에는 모이가 있다.

이 둘 중 모이를 먼저 먹을 수 있는 것은 누구일까?


어미닭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정답은 병아리다. 여기서 정답 자체보다도 그 이유가 매우 울림이 깊었다. 어미닭은 장애물을 어떻게든 넘어서려 한다. 어미닭은 그만큼의 경험치와 노력의 의지가 병아리보다 있기 때문이다. 즉, 어미닭은 '목표 지향적'이다.

반면 병아리는 '호기심 지향적'이다. 병아리는 목표의식이 없기 때문에 장애물을 돌파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장애물 너머의 것에 호기심을 갖는다. 그렇게 장애물 돌파보다는 자신의 호기심을 따라 장애물을 돌아서 빠져나 가다 보면 어미닭보다 모이에 먼저 다다르게 된다는 것이 풀이 내용이었다.


이 그림은 독일의 물리학자 테오도르 핸슈(Theodor Hansch)가 200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을 당시 수상소감을 발표하며 제시된 화면이라고 한다. 그는 범재였던 자신이 노벨상을 받게 된 요인을 본인이 '호기심 지향적 인간'이었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디지털 시대, 인간 지성이 중요한 이유>라는 제목에 걸맞게 해당 프로그램은 우리가 당장에 직면한 문제에 급급하기보다, 자신의 직관을 믿고 호기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며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자체를 배양하는 것이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목표 지향적 인간'에서 벗어나기까지의 지난 1년


나는 이 프로를 보면서 자기 계발로 눈을 돌린 나의 지난 1년이 보상받는 느낌을 받았다.

'너, 틀리지 않았어. 잘해온 거야.'라고 말해주는 거 같았다. 그림이라는 목표에서는 잠시 멀어져 보일지는 모르지만, 나는 나의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나를 단련하고, 나의 근본적인 원동력을 단련시켰다. 딱히 '번아웃을 극복하자'는 취지 하에 자기계발에 몰두해 온 것은 아니었다. 내 의식은 인지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런 과정이 필요했음을 무의식적으로는 알고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무의식에 깔려있던 생각은 의식을 통해 다시 한번 정리하는 과정을 거쳐 확고한 나의 믿음으로 재탄생된다.


번아웃에 빠지게 되는 함정_자기 과신과 조급함


나 자신을 단련하고 보니 지난날의 과오가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번아웃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나의 한계를 가늠하지 않고 스스로를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 유혹'이 나를 번아웃에 빠지게 했었다.

나는 지난날 철저히 '목표 지향적' 인간이었다. 그리고 장애물을 넘지 못했을 때의 좌절감과 무력감이 나를 짓눌렀다. 왜냐하면 그 장애물은 정말 조금만 더 노력하면 넘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내가 나를 과신했기 때문에. 그런 장애물을 넘지 못한 스스로가 무능력하게 느껴졌다.


이는 스스로를 한계 짓고 자신의 능력을 낮추겠다는 말과는 다르다. 나의 현재 수준과 실력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필요했다. 당장에 떨어지는 보상에 급급하기보다 그림이라는 바다 안에서 나의 기술과 탐구의식, 내가 전달하고픈 주제를 기르는 데 더욱 빠져들었어야 했다.

그리고 나의 생활을 더 규칙적이고 단순하게 만들었어야 했다. 꾸준하게 해내기 위해서는 진입장벽이 낮을수록 좋고, 수행 단위의 크기는 작게 쪼갤수록 좋다.

그림 재료가 비쌌던 탓일까, 나에게는 연습이 곧 실전이었고, 모든 것을 통으로 한 번에 해내야 했다. 한두 번은 그렇게 불태워서 할 수 있을지라도 그것이 일상이 되면 회복 탄성력은 점점 늘어지게 마련이다.


'호기심 지향'은 나를 세상과 연결시켜 준다


나는 나 자신 안에만 갇혀 있었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어찌 살든, 세상에 어떤 사상이나 트렌드가 있든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이과적 성향답게 나는 하나를 팔 땐 그것 하나에만 미치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와 고백건대 나는 사실 인문학을 전공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 거기에 돈을 벌 기회도 보이게 된다. 왜냐하면 앞선 글에서도 말했듯, 돈을 번다는 것은 곧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상과 내가 연결되는 통로이다. 나에게 돈을 번다는 것은 내가 세상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 되는 것이다. 지난날 나는 돈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감정을 무의식에 깊게 가지고 있었다.


내 인생의 족적을 연결해 가다 보면


그렇기에 당장의 내 꿈과는 무관해 보이는 나의 생업들도 돌이켜보건대 나를 성장시켰다. 언젠가 소리꾼 장사익 님의 스토리를 접한 적이 있다. 노래를 너무 하고 싶은데 생계를 해결하느라 온갖 종류의 일을 해 보았다고 들었다. 그분의 노래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삶에의 애환과 깊이가 담겨있다. 쉽게 이룬 꿈에서 그런 깊이를 담을 수 있었을까?  


나의 꿈을 갈망하는 지금을 나는 사랑하려 한다. 꿈은 그것을 이루는 순간보다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걸음 한걸음의 발자취에  의미가 있다. 


'번아웃에도 빠져봤던 나',라고 웃으며 회상할 수 있는 여유를 나는 곧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냉엄한 사회의 시선에서 바라볼 때는 중구난방으로 두서없어 보이는 나의 이력 또한 내 인생이라는 흐름에서 볼 때 하나하나 의미 있는 별이었기를. 나만의 별자리를 그려가고 있기를 희망해 본다.  

글의 제목처럼 오늘 컬러링의 배경도 무수한 점들로 이루어졌다


마지막 글은 스티브 잡스의 격언으로 그 맺음을 대신해볼까 한다.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당신은 미래를 기대하며 점을 이을 순 없다. 오로지 과거를 돌아보며 점을 이을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점들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당신은 믿어야 한다- 그것이 자신의 직관이든, 운명이든, 인생이든, 카르마든, 무엇이 됐든 간에."


나뭇잎사귀에 금색 아크릴 물감을 덧칠해 완성했다.


*컬러링 이미지 출처: 도서 <윌리엄 모리스 패턴 컬러링북>, 초록비 책공방 출판

*본 포스팅의 이미지 사용은 도서 저작권자의 허락을 구하였습니다.




이전 09화 여행과 인생, 그리고 그림의 상관관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