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_선택과 집중에 관하여
2021년 4월의 봄에 제주도에 한달살이를 하러 내려갔다. 2020년 하반기부터 코로나 대유행이 일상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이래로 나는 반년 째 집 밖을 나서지 않고 있었다. 카페에서의 작업조차 나에게는 모험이었다. 오로지 집 안에 갇혀 외부와의 어떤 교류도 없이 창작을 이어가는 행위는 무척 고통스러웠다. 더 이상 버틸 수 없겠다 싶어서 서울을 벗어나 지방 어디라도 내려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가족의 지원으로 제주도에 내려가게 됐다.
코로나로 외부와 단절되기 이전 나는 인간관계로 인해 조금 닳아있었던 것 같다. 내향인의 입장에서는 프리랜서로서의 외부활동과 사람들의 요구에 맞춰주는 일이 꽤나 지치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나만의 배터리를 채우는 작업으로 집안에서의 창작행위에 몰두했고, 그마저도 번아웃이 올만큼 하고 나니 새로운 환기구가 필요했던 터였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가. 4월은 세월호의 아픔이 깃든 달이었다. 제주도에 내려가자 지역 TV를 통해 세월호 관련 뉴스들이 보도됐다. 일부 유가족들은 세상으로부터의 상처를 씻고자 제주도에 정착, 자연에 귀의하여 살고 있었다. 나는 타인의 아픔을 목도하는 것만으로 내 아픔이 분해되는 경험을 했다.
제주도는 또한 아픔의 역사를 간직한 땅이었다. 4.3 항쟁이라고 해야 할지, 4.3 사건이라고 해야 할지 이름 붙이기도 애매모호한 그 역사적 사건을 나는 제주에서 몸과 마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우선 제주도에 내려가기 전부터 온라인을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4.3 사건의 내막을 알게 되었다. 숙소 근처가 4.3 기념관이었던 터라 사건 관련 정보들을 더욱 자세히 접할 수 있었던 것도 한몫했다. 고통과 회환의 땅, 그것을 강인한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승화한 땅. 나는 어느새 제주도의 아픔과 그 강인함과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버렸다.
비록 그 아름다움을 느낄 시간은 채 한 달이었지만 제주도에서의 생활은 금세 안착될 만큼 심플했다.
제주에서의 삶은 서울과 달리 많은 옵션이 존재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버리기'를 통해 '꼭 필요한 것만 남기게' 되었고, 그 '남기기로 선택한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숙소에서는 아침만 되면 예전에 통화 연결음이나 지하철 내에서 방송으로나 들었을 법했던 새 울음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길가에는 수많은 아름다운 풀과 꽃들이 있었고, 단순히 숙소 근처 마트를 걸어가는 길조차 '불편하지만 제주스러웠다.' 차를 몰 능력도 안되다 보니 뜻하지 않게 극한체험이라는 제주 뚜벅이 여행을 하게 됐지만, 생각보다 해볼 만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빌려간 책을 두 시간 남짓 되는 이동시간 동안 버스 안에서 읽고, 그러다 창 밖의 자연 풍경을 감상했다. 온라인에 리스팅 할 작업을 하기 위해 숙소에서도 시간이 되면 그림을 그렸고, 놀 땐 놀고, 일할 땐 일하는 것이 분리가 되는 삶이었다. 내 작업도 하고, 구경도 하고, 생활을 위한 허드렛일을 하는데도 매 순간에 집중을 하니 시간이 붕 뜨지 않는 기분이었다.
물론 제주에서의 삶이 생계를 위한 경제활동을 포함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서울의 삶과는 비교가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서울에서도 온라인 샵 구축 외에는 딱히 직접적 경제활동을 하지는 않았던 나로서는 이런 제주에서의 생활이 소박하고 조용하지만 안정감 있고 기운을 주는 동력이 되었다. 한 달 살이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올 무렵, '뭐 어떻게든 되겠지' 마인드가 생성된 것이 그 증거였다. 물론 이 밀어붙이기 정신은 애석하게도 서울로 올라오고 오래지 않아 서울이 주는 복잡한 상황과 나의 예민함을 자극하는 생활 소음, 그리고 높은 인구 밀도로 인해 점점 그 에너지가 흩어져갔지만 말이다.
나는 제주를 여행했다고 하기에는 '살이'를 했고, 제주에서 살았다고 하기에는 잠시 머물렀다. 나는 그 안에서 여행과 삶, 인생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그림에만 집중하지 못하는 요인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여행을 할 때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짐은 가벼울수록 좋다. 여행지에서는 뜻밖의 사소한 이벤트조차 의미 깊은 추억이 된다. 여행은 순간순간에 집중하기 가장 좋은 설정값이다. 여행에서 '눌러앉음'으로 삶의 형태가 전환이 될 때, 우리는 수많은 옵션을 가지게 되고, 머리 굴리기를 감행하게 된다. 우리의 삶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알량한 우리의 머리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수많은 조건들이다.
나에게는 그림이 '이것 아니면 안 되는 것'이 아닌 여러 옵션 중의 하나였다. 그것은 지금도 어느 정도 해당되는 사항이다. 내 생계를 직접적으로 해결해주는 것은 그림이 아닌 다른 활동들이다. 그림 하나에만 집중하기에 내 삶은 복잡하다. 다른 방향으로 가려는 두 마리의 말이 이끄는 마차가 얼마나 속력을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나는 내 삶을 좀 더 심플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전에 나의 정신을 심플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나는 어떤 것이 안되면 다른 길을 선택하는 데 있어 전환이 빠른 편이다. 마치 여행지에서 애초 예정에 없던 변수가 생겼을 때 덤덤하게 다른 대안을 빠르게 찾아내던 것처럼 말이다.
막다른 길처럼 내게 찾아온 그림 번아웃의 출구를 찾으려는 듯, 그해 나는 미라클 모닝을 시작했다. 자기 계발 서적을 읽고 관련 동영상 등도 보게 되었다. ‘성공은 내가 만든 그 사람이 끌어당기는 것'이라는 아이디어가 나를 관통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동안 성공에 집착적으로 목매어왔지만 나 자신을 단련할 생각을 해보았던가? 하는 물음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없었다.
내가 은연중에 깨닫고 있던 것들, 나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나의 마인드가 정말 나약하고 부정적이었구나를 자기 계발을 통해 다시금 알 수 있었다. 무의식은 내 의식이 반복적으로 받아들인 단단한 패턴의 사슬로 생각보다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여행지에서의 가벼움을 삶의 무거움으로 만드는 것은 나의 정신이었다.
그렇게 자기 계발 활동은 해를 넘겨 올해로 꾸준히 이어져왔다. 자기 계발을 시작한 지 딱 1년이 되는 시점인 지금 나는 그림에 있어서는 딴짓을 한 셈이지만, 나 자신에 정면으로 부딪히고 담금질을 했다는 점에서는 고무적인 한 해를 보낸 셈이다.
그런데 반성이 된다든지 내가 뭔가를 잘못했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을 보면 내가 걸어온 길이 맞았다는 확신이 든다.
때로는 목표 그 자체보다 자신의 호기심과 직관이 이끄는 대로 스스로를 내맡기는 것이 더 현명하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 글에 이어서 다루어 보려 한다.
어느덧 나의 이야기도 마무리를 향해 가고 있다.
*컬러링 이미지 출처: 도서 <윌리엄 모리스 패턴 컬러링북>, 초록비 책공방 출판
*본 포스팅의 이미지 사용은 도서 저작권자의 허락을 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