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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 Oct 18. 2022

나도 좋고 남도 좋기 위해서

08_오롯한 나로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도록

오늘은 안개같은 느낌을 주고 싶어서 배경 부분을 색연필로 칠해보았다.

이전 글에서 지속할 수 있는 힘으로 '상위의 목적'에 대한 언급을 했다. 상위의 목적이란 무엇일까.


나는 처음에 나 자신을 위해서 그렸다. 개인의 내면으로 파고들어가 관심의 영역을 발견했고, 거기에서 기쁨을 느꼈다. 그런데 나 자신이 온전한 나로서 존재할 때,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도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림을 통해 경험했다.


가장 최초의 기억은 학창 시절이었다. 나는 학급 친구들의 얼굴을 내 머릿속에 담겨있던 이미지로 뽑아 만화 형태로 그리곤 했다. 아이들은 똑 닮았다며 즐거워하곤 했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만으로 남들을 기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성인이 되어서는 그런 경험이 전무했다. 그러다 나는 이전 글에 잠깐 언급했듯이 수년  유학 준비를 시작했다. 단기간에 걸쳐 포트폴리오용 스케치  드로잉을 하게 되었고 당시에 인스타그램을 통해 지인들에게 이를 공유했다.

(좌)신발을 보고 떠오른 이미지를 시각화해보았다. 제목은 <고래상어>. (우)일본여행 당시 내가 느꼈던 감성을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표현했다.
(좌)소셜미디어에서 나는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그 어느것도 내가 아니다라는 메세지의 스케치. (우)돌아가신 우리 할머니를 그리고 싶었다. 첫 오일파스텔 경험

재미있던 점은 내가 그리면서도 술술  풀리고, 즐거웠던 그림은 남에게도 똑같은 울림이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의미를 담았던 그림에 " 이거 좋아"라고 하는 지인들의 말이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지인들의 공감만으론 부족했던 걸까. 동기부여는 지속되지 못했다. 그림은 포트폴리오 작업이 완료된 시점으로 중단되었고, 이후 나는 반복적으로 그림 주위를 맴돌며 온 앤 오프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러던 중 그림으로 회귀하게 된 계기가 생겼다. 2017년은 개인사에 있어서 가장 최하위의 바닥을 찍은 한 해였다. 개인적인 이야기라 사정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한 해라 심리 상담을 반년 정도 받았고, 극소수의 측근 외에 모든 인간관계를 끊고 외부활동을 단절했다.


'네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면 극한까지 처절하게 떨어져도 봐야 해.'


이십 대 때 알고 지내던 언니가 나에게 했던 충고였다.

그 말 때문이었을까. 심리적 위기 상황 속에서 내가 선택했던 것은 캐릭터 개발 목적의 드로잉 실습 프로그램 강의를 들으러 나간 것이었다. 사람하고 섞이고 싶지도 않았고 구석에 처박혀서 조용히 그림만 그리다 오고 싶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같이 수강한 사람들과 친해지고 좋은 인간 관계도 형성하게 되었지만, 그 당시의 내 심정은 그랬다.


가장 힘들던 때, '이러다 정신이 이상해질 수도 있겠는걸' 하는 자각이 들 때 내가 선택했던 것은 역시 그림이었다. 그것도 그림으로 돈을 벌려는 시도였다. 평일 3일을 학원을 가는 명분으로 집 밖을 나섰다. 나를 세상과 단절시키지 않게 한 유일한 소통로였다. 심리 상담과 함께 그림을 통해 나는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었다.

이후로는 쉬었던 경제활동을 재개하며 바쁘게 지냈고, 다시 그림과 멀어지게 되었다.


그림은 나에게 있어 고향집과 같은 존재다. 나는 언제나 떠나오고 다시 찾아가지만, 그림은 한 번도 나를 거절한 적이 없다. 내가 찾지 않아도 스스로를 가꾸며 자라 있기도 했고, 내가 겪은 인생의 경험들이 녹아들어 다른 터치로 표현이 되어 나오기도 한다.


나는 나의 관심사를 남들보다 일찍 찾은 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인생의 안정이나 소위 말하는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돈을 버는 수단으로 연결시키려 할 때 내가 놓친 점은 무엇이었을까.


‘돈을 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내린 돈을 버는 원칙에 대한 결론이다. 다만 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데만 치중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나, 나 거리기엔 세상은 나에게 많은 조율점과 균형점을 요구한다.


온전한 나 자신으로 있으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끊임없이 시행하고 착오를 발판 삼아 조율해가야 하는 영역이겠지만, 우선 나 자신을 온전히 내던지고, 그다음 타인의 반응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PC에서는 gif구현이 끊기는 것 같다.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확인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 작업을 하며 그렸던 그림 중 하나를 활용해서 친구에게 그리팅 카드 대신으로 보냈다. 내 이름 부분을 보고 친구가 내가 그린 거냐며 너무 예쁘다,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다고 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칭찬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적어도 내가 그린 그림이 누군가를 기쁘게   있다면 그걸로 족한  아닐까 하는 생각도  보았다. 그렇지만 역시  그림에 대한 경제적 보상을 연결시키려는 고집을 버릴 수는 없다.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나는  그림에 응당한 경제적 대가를 바란다. 그것은 타인으로부터의 최고의 인정이며, 내가 그림으로써 세상에 기여한 것에 대한 객관적 증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속하는 힘에는 끊임없이 희망하는 태도 또한 포함된다고 한다. 나는 희망한다. 내가 그림을 통해 세상에 한 점 의미를 보태기를.

그날을 위해 묵묵히 걸어 나가 보고자 한다.


*컬러링 이미지 출처: 도서 <윌리엄 모리스 패턴 컬러링북>, 초록비 책공방 출판

*본 포스팅의 이미지 사용은 도서 저작권자의 허락을 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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