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에서의 역사는 반복되는 '진실'이다.
민간에서의 역사는 반복되는 '진실'이다.
- [삼국지평화(三國志平話)], 김영문 옮김, <교유서가>, 2020.
"중상에게 단단히 기억하게 하라. 한 고조는 세 공신을 배반했으니 세 공신이 한나라 천하를 나누어 갖게 하라. 한신에게는 중원을 나누어주어 조조가 되게 하고, 팽월에게는 촉 땅 서천(쓰촨성:서촉)을 나누어주어 유비가 되게 하고, 영포에게는 강동과 장사를 나누어주어 오왕 손권이 되게 하라. 한 고조는 헌제가 되게 하여 허창에 살게 하고, 여후는 헌제의 아내인 복황후가 되게 하라. 조조는 천시를 얻게 하여 헌제를 가두고 복황후를 죽여 복수하게 하라. 강동의 손권은 지리를 얻게 하여 많은 산과 강물로 보호받게 하라. 촉 땅의 유비는 인화를 얻게 하라. 유비는 관우와 장비의 용맹을 취하지만 전략을 세우는 사람이 없으니 괴통을 제주에 태어나게 하여 낭야군 사람이 되게 하라. 그의 성은 복성인 제갈, 이름은 량, 자는 공명, 호는 와룡 선생으로 불릴 것이다... 중상도 이승에 태어나서 복성 사마씨에 자는 중달을 쓰며 삼국을 병합하여 천하를 제패할 것이다."
- [삼국지평화], '상(上)편', 김영문 옮김, <교유서가>, 2020.
후한 말기 황건 농민반란으로 촉발된 약 100여 년간 위, 촉, 오나라가 중국을 삼분하던 쟁패기를 거쳐 진(晉)나라가 다시 중국을 통일한 기록이 [삼국지]인데, 3세기 후반 진수가 정사 [삼국지]를 지었고 140년 후 남송의 배송지가 [삼국지]에 주를 달았다. 물론, 왕명을 받은 '정사' 기록 이전에 민간에 전해오는 이야기가 먼저 있었을 것이며 각종 기록들은 그 뒤를 따랐을 것이다. '정사'를 쓴 진수 등의 관료학자들은 해당 이야기의 고증을 위해 관련 기록은 물론 민담 일체를 취재했을 것이다. 유목을 하던 몽골족이 중국 정착민 한족을 지배하던 원나라 지치 연간(1321~1323년)에는 당시 연극으로 전해오던 '삼국지' 이야기 대본이 간행되었는데, 이것이 [전상삼국지평화(全相三國志平話)]다. 원나라 말기 핍박받던 중국 한(漢)족의 독립투쟁 과정은 유비의 '촉한정통론'의 사회적 배경이 되었고, '독립투사' 나관중은 170년 후인 1494년 명나라 시기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로써 이 서사를 정리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소설 '삼국지'의 저본은 나관중이 한시와 함께 120회로 지어낸 [삼국지연의]를 청나라 때 모종강이 다시 편찬한 판본이다. 이 [연의] 또한 연극의 대본이었으나 이보다 170년 전, 아니 그 이전부터 민간에 이야기 형식으로 전해 내려오던 대본이 바로 [전상삼국지평화]인 것이다.
'전상((全相/像)'은 각 회별로 삽화가 있다는 의미이고, '평화(平話)'는 당시 이야기 공연 장르의 대본이라는 뜻이다. 글 모르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림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해주거나 연극을 하는 대본인 것이다. 65권의 '정사' [삼국지]나 120회의 [삼국지연의]에 비할 수 없이 분량은 짧으나 이야기 극으로는 길어서 짧은 단락을 한편의 그림과 함께 풀어냈을 것이며 그로 인해 사실 여부나 앞뒤 맥락이 맞지 않는 부분도 많았을 것이다. 요즘으로 보면 TV 앞에 모여 보는 연속극 만화 정도일 듯. 일관성도 팩트체크도 없이 '아무말 대잔치'도 가능했을 것이 수백년 전 당시 대다수 민중들은 글을 몰랐을 것이니 요즘 유투브 가짜뉴스 찍듯 흥미에 맞춰 이야기를 지어내고 부풀려서 확대재생산했을 것이고 '허구 70% 사실 30%('허칠실삼')'이라는 [연의]의 70% '뻥'의 근원이 아마도 이 [평화]일 것이다. 나머지 30% '레알'의 근거는 '정사' [삼국지]일테고.
서두에 인용한 내용은 이른바 [삼국지평화]의 '서문'이자 일종의 '요약'이라 볼 수 있는데, 삼국을 평정하고 다시 통일한 '사마'씨 진나라의 '고조' 사마의(중달)가 후한 광무제의 부흥 시기에는 현세의 황제가 될 수 없으니 천제 앞에 불려가 저승의 판관이 되는 장면으로 [평화]는 시작하고 있다. [삼국지평화]의 서막은 바로 '초한지' 이후다.
한고조 유방은 항우를 물리치고 중국을 통일하였으나 공신인 대장군 한신과 양왕 팽월, 구강왕 영포(경포)를 역모죄로 죽였다. 본인보다 강한 자는 '토사구팽'하는 고사의 유래다. 4백년 후 유방의 한나라가 망해갈 때 천제는 억울한 초한지 공신들을 부활시켜 한고조 유방의 땅을 찢어 갖게 한다는 것이며, 초한쟁패 당시 제왕 한신에게 유방(한)-항우(초)-한신(제)의 '천하삼분지계'를 유세한 괴통을 제갈량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는 윤회적 이야기다. '삼국지'의 서기 3세기는 중국에 불교가 공식 포교되기 전인데도 말이다.
사실 [삼국지연의]를 읽다보면 '초한지' 이야기와 비슷한 장면들이 적지 않다. 아마도 민간에 전해지는 이야기는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된 '초한지' 내용과 진수의 [삼국지]에 담긴 '삼국지' 이야기가 섞이고 서로 교차하는 과정이었을 게다. 항우가 유방을 초대해 죽이려던 '홍문연'은 오나라 원수 주유가 유비를 죽이려던 '황학루' 연회로 반복되어 [삼국지평화]에 등장하나 당시 '황학루'는 존재하지도 않았단다. 도망치던 유방이 자식들을 수레 밖으로 밀어낸 것과 유비가 조운 앞에서 아들을 패대기친 것 등 사실과는 다르더라도 민중들에게 익숙한 이전 역사 이야기로 반복함으로써 극적 흥미를 높이고자 하는 내용이 [평화]에 자주 등장한다.
민중들에게 이렇게 역사는 반복적으로 전해진다.
중국의 어느 지방에서는 유비나 관우가 아닌 장비를 최고의 영웅으로 친다는데, 이 또한 [삼국지평화]에서 유래한다. [연의]에서는 거의 철부지 같은 장비가 [평화]에서는 제갈량이 등장하기 전 모든 국면의 해결사로 등장하는 점이 인상깊다. 기실, '명분'의 유비, '맨주먹' 관우와 '도원결의' 후 이 보잘 것 없던 삼형제가 관군의 말단에 이르기 전 아마도 장비의 재산과 명성에 의지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삼국지평화]의 마지막 주인공은 아마도 '5호16국'을 연 흉노의 후예 '유연'일 수도 있다. 사실 고증이나 앞뒤 일관성 여부는 상관없이 '아무말 대잔치'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숨막히면서도 빠르게 흘러가고 어느새 마지막은 '사마'씨의 진나라가 '8왕의 난'으로 분열된 틈을 타서 '후한'을 다시 세운 흉노족 '유연'이 등장한다. 뜬금없을 수도 있으나 한나라 '유'씨 정통론을 강조하기 위한 민간인 대상 [평화]의 억지스런 장치이기도 하다. 한나라가 흉노 유화책으로 왕실 공녀들을 흉노 선우들에게 시집보냈으니 흉노의 외가가 한족이며 그러므로 흉노 후예 '유연'이 세운 '후한' 또는 '전조'가 '정통성'을 이어받았다는 결말이다. '오랑캐'를 배척하는 '중화'의 주류를 결국 '흉노'에서 찾음으로써 '촉한정통론' 자체가 허구임을 이야기 속에서 스스로 증명하기도 한다.
다수 민중들 사이에 구전되는 이야기의 역사는 반복되면서도 그 모순되는 이야기 속에 '진실'을 담고 있다 하겠다.
명나라 말기 '종산거사' 견위의 [원본 초한지(서한연의)]에 이어 [삼국지평화]를 번역한 역사전문번역가 김영문 선생께 경의를 표한다. 고증이나 일관성 맞추기의 부담없이 만화책 보듯 후딱 읽을 수 있는 이야기로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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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평화]는 '삼국지'를 읽는 또 하나의 뜻깊은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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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지평화(三國志平話)], 김영문 옮김, <교유서가>, 2020.
2. [원본 초한지(서한연의)], 견위, 김영문 옮김, <교유서가>, 2019.
3. [사기], 사마천, 김원중 옮김, <민음사>, 2007.
4. [삼국지], 진수, 김원중 옮김, <민음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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