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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 마음 맑음 Nov 06. 2023

허리디스크 극복기

남편이 쓰러졌다. 정확히 말하면 결혼 1년쯤 지났을 때, 남편이 아침에 일어나려고 했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몸을 움직일 없다고 했다. (남편의 지난 15년 동안의 업무 강도와 스트레스 정도를 생각하면 놀랄 일도 아니었다. 언젠가는 어떤 식으로든 건강에 문제가 올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나에게 있었다.) 정형외과에 가서 통증이 심했던 허리 MRI를 찍었는데 허리 디스크 판정을 받았고 의사는 지금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척추 4, 5번 사이 수액이 완전히 터져서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했다. '수술이라니...' 덜컥 겁이 났다. 다른 의사들의 조언도 들어보고 싶었다. 다른 의사들도 수술을 하라고 했다. 두 번의 MRI 촬영과 각종 검사와  명의 의사 진단을 받아보았지만 수술을 하는 것이 맞다고 하나 같이 동일하게 말했다. 


그 와중에 실낱같은 희망으로 들렸던 말이 있었다. '수술을 바로 해야 하는 상태는 맞지만, 수술을 할 경우 어쨌든 몸에 칼을 대는 것이고, 허리는 신경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에 거기에 칼을 대게 되면 복원이 잘 안 된다. 때문에 허리 주변 근육을 탄탄하게 해서 재활 운동을 해주는 것이 좋다. 하지만 평생 한다고 생각하고 강한 의지가 필요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수술의 후유증과 부작용에 대해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재활운동'이라는 단어가 남편에게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수술은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그전에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해보고 싶었고, 남편은 그 즉시 '재활운동'이라는 검색어로 당시 교통편이 그나마 편리했던 시작으로 헬스장을 찾기 시작했다. 헬스장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재활운동'이라는 키워드에 헬스장이 검색 결과로 나왔다.


가까운 헬스장부터 차례로 무작정 들어가 트레이너에게 사정을 설명하면서 재활운동 PT를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남편의 말로는 허리 문제를 듣더니 트레이너들이 모두 자신감이 없어 눈동자가 흔들렸다고 한다. 혹시라도 책임소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처음부터 맡기를 꺼려하는 눈치였다. 건강 문제가 없는 회원에게 운동을 시키면 효과가 바로 나오고, 그런 건강한 사람에게 PT를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모를리 없었다. 그렇게 주변 다섯 군데 헬스장을 돌아봐도 다 똑같은 반응이었다. 자신이 없어 눈빛이 흔들리는 사람들에게 절실한 자신의 허리 재활을 맡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더 멀리 이동해서 다시 지도에서 '재활운동'을 검색해서 나온 헬스장 하나하나를 찾아다니며 무작정 트레이너들을 만나서 자신의 사정을 말하고 상담을 받으면서 누군가 운동을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이 없을지 마냥 헤매었다고 한다. 당시 남편의 마음을 돌이켜보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혼자서 얼마나 외롭고 무섭고 간절했을지, 지독한 미안함에 마음 한편이 저려온다.  


그렇게 헬스장을 찾아 헤매기를 한참을 지나 역 주변에서 점점 멀어져서 걸어서15분 정도 멀리 떨어진 오래된 헬스장까지 가게 되었다. 입구에 관장님의 후덜덜한 보디빌딩대회 사진을 보면서 '여긴 아닌 것 같'라고 다고 한다.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들어가서 사정을 설명했고, 관장님은 유심히 듣고 '시작해 보자'라고 말씀하셨다. (남편의 표현에 의하면) 이 분은 눈빛에 흔들림이 없고, 자신감이 있었고, 신뢰가 느껴졌다고 한다. 관장님은 덧붙이며,


"하지만 완치라는 것은 없어요.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고,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허리 주변에 근육을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면 돼요. 쉽게 말해서 건물에 시멘트가 오래되고 부서지면서 안에 있는 철근이 밖으로 삐져나온 거예요. 재활운동을 한다는 것의 의미는 튀어나온 철근을 일시적으로 안으로 탁 집어넣고 다시 삐져나오지 않도록 시멘트를 새로 발라주고 굳히는 거예요. 디스크가 다시 튀어나오지 않도록 허리 주변에 시멘트같이 단단한 근육을 만들어주는 거예요. 하지만 이것 또한 일시적인 처방이기 때문에 꾸준한 운동과 생활습관 개선이 필요해요."라고 말했고, 관장님과 남편은 깊은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남편이 밤늦게 돌아와서 진지한 눈빛으로 나에게 대화를 청했다. 의사는 당장 수술을 하라고 하는데 갑자기 헬스 PT를 받겠다고 하니 솔직히 의아했다. 남편은 말했다.

"내가 여보한테 먼저 부탁을 하는 경우는 없잖아, 근데 이걸 하면 나 좋아질 것 같아. 나 이거 한 번 해보고 싶어! 이해하기 힘든 줄 알지만 그냥 나 믿고 나한테 투자한다고 생각하고 해 주면 안 될까?" 남편은 항상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주고,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만 했지, 이렇게 확신에 차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나에게 명확하게 표현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의사의 말을 들어야 할지, 남편의 말을 믿어야 할지 순간 헷갈렸다.


우리는 같이 돈을 모으고 내가 경제 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말 다 필요 없고 "나한테 투자해 줘"라는 그 말 한마디에 흔쾌히 OK라고 말했다. 내가 무엇인지 내용을 몰라도, 남편이 충분히 잘 알아봤고, 남편이 스스로를 믿고,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이라면, 그 일이 무슨 일이라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 남편은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당히 신중하고 의심 많은 나에게도 남편의 건강 문제라면 발 벗고 나서서 지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간절함 하나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주 3회 재활운동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녔다.   


관장님이 맡은 분들은 그냥 일반회원들이 아니었다. 프로 운동선수들이 무리해서 운동을 하다가 관절이나 뼈가 잘못되거나, 부상을 크게 당해서 운동을 못할 정도로 망가져버린 몸을 재활시켜서 다치지 않게 운동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분이었다. 특히 암환자, 허리 디스크, 목 디스크, 관절, 척추 등 다양하고 심각한 건강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재활치료의 개념으로 PT를 받고 있는 분들이 많았다. 먼저 PT를 받아본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몇 시간 거리에서도 찾아올 정도로 신청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다 받아줄 수가 없어서, 건강 상태가 가장 심하고 반드시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우선순위로 받아주고 계셨다.


미스터코리아 서울대회 1위, 서울시장배 보디빌딩대회 1위, 생활체육보디빌딩대회 입상, 바디빌딩 심판자격증,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 선수트레이너 스포츠 마사지 자격증, 코치아카데미 자격증(대한보디빌딩협회),  명지대학교 사회체육학 전공, 운동 처방/ 재활운동/ 트레이닝론 전공, 운동 처방 및 생활체육지도 20년, 개인 PT 2000명 돌파, 다이어트 전문 지도자 등 관장님의 이런 화려한 경력에 현혹될 남편과 내가 아니다. 사실 이런 경력을 봐도 좋은 건지 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헬스 쪽에 문외한이긴 했다.


그로부터 3년 후쯤이었을까 신호등에서 우리 차가 신호대기를 하고 있었는데 가만히 있는 우리 차를 뒤에서 박는 교통사고 있었고, 교통사고 후유증이나 몸에 이상이 있을 수 있었기 때문에 걱정되는 부분의 엑스레이를 찍어보았다. 몇 년 전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으라고 강력하게 권유했던 정형외과 의사는 남편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고, 남편의 허리 사진을 다시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20년 동안 의사를 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며 어떻게 허리 디스크가 좋아질 수 있냐고 물어봤고, 남편은 운동으로 좋아졌다고 대답했다. 까칠하고 무뚝뚝하던 의사가 기적 이라는 말을 반복하며 진심으로 놀라워했다.


회상해 보면 처음에 남편이 허리 통증이 심했을 때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을 정도였으며, 얼굴 바로 옆에 있는 핸드폰을 스스로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런 그가 관장님과 3년 재활운동 후, 당장 수술을 하라고 권했던 정형외과 의사가 기적이라며 신기해할 정도로 허리 디스크가 좋아졌고, 일반적인 일상생활이 무리 없을 정도로 통증이 없어졌으며, 전반적으로 건강이 점차 좋아지는 것을 보면서 의심 많은 나도 관장님을 신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남편이 산 증인이었으니까!


남편이 운동을 시작한 지 1년쯤 되었을 때, 내가 체력적으로도 힘들어하고 아이를 원하는데 한동안 임신이 안 되면서 건강문제를 염려하자 같이 가서 관장님께 상담이라도 받아볼 것을 권하기 시작했다. 너무 멀기도 하고, 공으로 하는 운동이나 물속에서 하는 재미있는 운동이면 몰라도, 정적인 운동을 싫어했던 나는 계속 거절했고, 나만의 방식으로 건강 관리를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편은 포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기가 봐도 자기가 산 증인이었으니까!


남편은 항상 “이 분이 하라는 대로만 하면 좋아져”라고 말을 했다. "가장 고마운 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데 나한테 뭘 어떻게 얼마나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정말 고맙고, 신기한 건 그걸 그대로 하면 정말 좋아지니까 안 할 수가 없어."라고 말했다. "뭘 어떻게 하라고 알려주는 사람이 있어서 너무 좋아. 그대로만 하면 되니까."라고 말하는 남편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개인 상태에 맞춰 뭘 어떻게 하라고 알려주는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그걸 하라는 정석 그대로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간절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운동을 배우는 사람이 진심으로 성실하게 임한다면, 관장님은 자신이 가진 모든 지식과 경험을 동원해서 그 사람이 가진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는 분이었다.



남편의 설득이 계속되자 나는 헬스가 처음이기도 하고, 잔뜩 하기 싫음을 장착하고 대수롭지 않은 태도로 갔다. 헉! 웬걸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 나도 점점 건강이 안 좋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관장님이 맡고 있었던 아주 심각한 건강 상태를 갖고 있는 분들에 비해 나는 우선순위가 많이 떨어졌던 것이다. 관장님 말로는, 1(건강이 괜찮음)~10(아주 나쁨)이 있다면 관장님이 맡고 있는 분들의 건강이 7~10 이상의 심각한 상황이라면 나 정도는 1에 속하기 때문에 지금 PT가 남는 시간이 없어 맡아줄 수 없다고 하셨다.


나는 그냥 집 가까운 데서 일반 트레이너들에게 PT를 받아도 괜찮아질 몸이고, 굳이 이렇게 멀리까지 올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트레이너 분들이 있긴 했지만 이미 관장님을 경험하고 건강이 기적적으로 좋아진 남편은 무조건 관장님께 받아야 한다고 했고, 남편이 지난 시간동안 관장님께 성실함을 보여주고 신뢰관계를 잘 쌓아온 덕분에, 중간에서 관장님과 나를 둘 다 설득해서 남편이 하는 시간에 나도 같이 하는 조건으로 PT를 해주시기로 했다.


처음 한 달 정도 몸 상태를 파악하는 기간을 갖는데, 남편은 이미 1년 동안 진단을 다 받은 상태였고 운동 방법과 자세를 다 습득한 후라서 운동 순서만 지도를 해주면 되는 수준이 되어있었고, 나는 처음 시작이라 관장님의 충분한 집중을 필요로 하는 기간이어서 둘이서 같은 시간에 해도 괜찮은 상황이었다. 반신반의로 시작했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내 몸이 좋아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관장님을 신뢰하게 되었다. 다 떠나서, 일단 관장님의 지도에 따라 운동하면 내가 건강해지고 내 삶이 더 활기차게 변해있었다. 집에서 대중교통으로는 2시간, 자차로는 1시간 거리였지만 꾸준히 주 2회 정도를 다녔다.


신은 걱정 말라고 하셨다. 임신 잘 될 수 있게 건강관리하는 것을 잘 도와줄 테니 마음 편하게 하고 건강관리, 식단관리 잘하면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고 안심시켜 주셨다. 나와 같이 임신이 힘든 케이스를 많이 맡아 오셨지만 지금 아이들 잘 낳고 잘 기르고 있고, 아직도 가끔 관장님께 인사하러 아이들 데리고 온다면서 나도 잘 될 거라고 걱정 말라고 인자하게 웃으셨다. 운동 지도뿐만이 아니라 관장님의 동기부여와 희망적인 말들도 우리에게 항상 큰 도움이 됐었다. 신뢰가 없다면 믿을 수 없는 공허한 말이었겠지만, 관장님이 하신 말들을 그대로 따르면 정말 현실이 되어있었다. 관장님은 자신 있는 말, 확신할 수 있는 말만 하시는 신중한 분이었다.


관장님은 성실함과 간절함을 보이지 않으면 절대 강요하지 않는다. 자신의 노력과 의지가 없으면  건강과 운동이라는 것이 강요한다고 해서 될 일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했고, 내가 운동하는 것을 보면 누가 봐도 나는 운동체질이다. 운동을 하면 할수록 몸이 가벼워지고 활기가 넘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운동을 시작할 때는 체력이 없다가도, 운동을 하면 할수록 마무리하는 시점에 가장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나오고 활력을 되찾는다.


관장님 말하는 대로 곧잘 따라 하는 내가 가능성이 있다고 보셨는지, 운동한 지 2년쯤 시간이 지났을 때 대회 한 번 나가보자고 말하기 시작했다. 농담을 할 분은 아니고, 젋었을 때 몸 만들어서 사진으로 남기는 것도 좋을 거라 생각했고, 그냥 운동을 하는 것보다 목표를 갖고 하면 좋은 동기부여가 될 것 같아서 대회를 나갈 목표로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때쯤은 근력이 꽤 붙어있을 때였다. “꼭 비키니 안 입어도 되죠?” “타이트한 청바지 멋진 거 있잖아 그런 거 입고해도 돼” 프로대회가 아니라 일반인 대회라고 하시면서 그렇게 머슬대회를 목표로 운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1년이 또 지났고, 여느 때처럼 운동을 하고 있는데 몸이 오슬오슬 추워서 오한이 들 것 같았다. 관장님은 이상한 낌새를 채고 지금 몸 상태가 어떠냐고 물었고, 지난 3년 동안 나를 지켜보고 내 몸 상태를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보자마자 “임신 아니야? 임신 같은데? 집에 가서 꼭 확인해 봐”라고 말씀하셨다. 기다렸지만 임신이 잘 되지 않았기에 이미 어느 정도 마음을 비우고 있었고 “아닐 거예요, 그냥 감기일 거예요”라고 말했다.


감기약을 먹으려다 갑자기 관장님 말이 기억나서 혹시몰라 근처 약국에서 테스터기를 사서 확인해 보니, 한 줄은 선명한데 한 줄이 너무 희미해서 테스터기가 불량인지 긴가민가 하다가 다음 날 산부인과에 갔다. 계속 아리송하며 그럴 리가 없다며 안 믿고 있는 나를 보며 의사가 “이건 명백한 임신인데요? 믿으셔도 돼요, 축하드려요, 이제 기뻐하셔도 돼요”라고 환하게 웃었다. 그제야 조금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임신 4주 정도 됐을 때였고, 내가 임신 사실을 알기 전에 내 몸 상태를 보고 장님이 나보다 먼저 내가 임신임을 알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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