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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 마음 맑음 Nov 03. 2023

나의 운동일지

초등학생 때부터 평생 운동을 멈춘 적이 없다. 초등학교 3학년 운동회부터 시작되었다. 반 대표로 달리기 시합에 나갔다가 육상부 선생님에게 발탁(?) 돼버리고 말았다. 그분에게 찍힌 후로 6학년까지 계속 나는 육상부에서 훈련을 하게 되었다. 초등학생 때는 선생님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가진 모범생이었고, 육상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선생님이라는 권위가 나에게 시키는 일은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매일 아침 7시부터 수업시간 전까지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등교해서 몸을 풀고 운동장을 달렸다. 5학년때부터는 학교 대표로 광주 육상대회에 나갔고, 운이 좋게 3위 안에 들어서 전국 육상대회에 나갔다. 이때부터는 아침에는 학교 운동장에서 훈련을 하고, 하교 후 레이스가 있는 정식 육상 경기장에 가서 훈련을 할 때도 있었다. 전국 체전을 준비할 때는 주말에 훈련할 때도 있었고, 전남 광주 전체에서 달리기를 가장 잘하는 학생들을 모아놓은 팀이었기 때문에 실전처럼 훈련 강도가 높았다. 나는 800m와 계주를 뛰었고, 800m는 너무 길어서 싫었고 계주는 미친 듯이 빨라야 해서 싫었다.


지옥 같은 훈련이 너무 싫어서 다리 부러진 척도 해보고, 붕대를 감고 절룩거리는 시늉도 해고, 발을 압정으로 찔러서 피를 내볼까 생각도 해보고, 어떻게 하면 육상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만 고민하며 최대한 육상부 선생님을 피해 다녔다. 하지만 압정으로 살짝 발바닥을 찔러봤다가 피는커녕 눈물 나게 아파서 그냥 전국 대회에 나가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번도 다치지도 않고 너무 건강해서 (모든 공부와 수업은 일반적으로 다 똑같이 하면서) 5~6학년을 전국체전에 나가기 위한 준비로 매일 훈련지옥에서 보냈고, 지금 돌아보면 그렇게 매일 몸을 풀어주고, 매일 달려주고, 안전하게 운동하는 방법을 배워서 어렸을 때부터 체력이 좋고 건강할 있었던 같다.   


육상을 하면서 한 가지 크게 배운 점이 있다. 하루는 너무 훈련을 하기 싫어서 800m를 뛰고 finish line에 도착하자마자 털썩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렸고, 그 순간 나를 정말 예뻐했었던 육상부 선생님이 처음 듣는 천둥 같은 소리로 불호령을 쳤다. 내가 달리기를 잘해서도 못해서도 아니고 안정상의 이유였다. 항상 실전처럼 연습을 하는데, 시합을 할 때는 모두 전속력을 다해 결승선을 향해 달려가기 때문에 갑자기 내가 앞에서 주저앉으면 내 바로 뒤에 오는 사람들은 속도를 제지하기 어렵고, 육상 전용 신발인 날카로운 스파이크를 신고 있기 때문에 나를 밟고 지나가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나만 크게 다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나에게 걸리거나 피하려다 줄줄이 넘어지고 삐끗하고 밟고 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때부터 육상에 진지하게 임했던 것 같다. 그냥 빨리 달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경기를 하면서  안전을 지킬 수 있어야 하고, 같이 참여하는 다른 참가자들을 배려할 수 있는 스포츠 매너를 배우기 시작했다. 800m를 달리면서 지구력과 전략적 끈기를 발휘하는 법도 배울 수 있었고, 계주를 하면서 팀과 함께 합을 맞춰가며 협력과 팀워크를 배울 수 있었다.


요즘은 딸아이 유치원에서 계주 대표로 나갔을 때 이 기술을 아주 유용하게 잘 활용하고 있다. 그때보다 더 운동화 끈을 세게 묶고, 전국체전 나갔을 때 보다 유치원 운동회 계주를 더 목숨 걸고 하는 것 같다. 난 아이에게 무조건 멋진 엄마여야 하니까!^^



중, 고등학생 때부터는 다행히 좀 더 재밌는 운동을 만났다. 포르투갈에서 친구들과 함께 노는 것이 마냥 좋아서 시작한 배구를 학교 대표로 하게 되었다. 언어를 못해도 스포츠는 친구들과 가장 빨리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이었다. 배구를 잘하고 좋아하는 친구들을 모아서 다른 학교랑 만나서 시합하고 그런 정도였다. 하루는 내가 공을 멋지게 넘기고 당연히 득점을 한 줄 알고 엄청 좋아하면서 코치랑 하이파이브를 하러 가려는 순간, 공이 정확히 내 눈앞에 다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스포츠는 정말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끝까지 목표물에서 눈을 떼지 않고 집중하는 것을 이때 배운 것 같다.


중학생 때 우리 집은 학교까지 걸어서 한 시간 반 거리였다. 중간에 버스를 이용하면 되긴 했지만, 20분 걷고 몇 정거장 갔다가 다시 20분 정도 걸어야 하는 길이라서, 어차피 걸을 거라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 싫었다. 워낙 걷는 것도 운동도 좋아했기 때문에 포르투갈의 역사적이고 아름다운 동네와 자연을 벗 삼아 오전 한 시간 반, 오후 한 시간 반을 걸어 다녔다.


포르투갈은 몇 개월의 우기만 빼면 온도가 마이너스로 내려갈 때도 없고, 겨울도 눈도 없는 봄날처럼 따뜻하고 여름에도 그늘에서는 시원한 날씨가 대부분이어서 걷는 것이 좋았다. 포르투갈 하면 가장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자연과 날씨라고 말할 것이다. 당시 어려서 낭만이 뭔지는 몰랐지만 나뭇잎 사이로 아침 햇살이 비칠 때 그 따스함을 아직도 기억한다. 거의 항상 봄 날씨처럼 포근하고 따뜻했던 날씨에 대한 기억이 아름답게 추억에 남아있고, 그때는 걷는 것이 좋았고 당연하다 생각해서 불평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중학교 3년 동안 매일 3시간씩 걸었기 때문에 몸에 균형도 좋고 오랫동안 건강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오히려 그때 그 역사적인 장소의 가치를 더 깊게 알아보지 못하고 더 깊게 향유하지 못했던 것이 가끔 아쉬움에 남는다. 그때는 딱 그 정도가 그 나이에 향유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던 것 같다. 언제든 돌아가고 싶으면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욕심내지 않았다. 내가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한 번 어딘가에 정착을 하면 아무리 내 고향 같은 곳이라도 다시 돌아가기 힘들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대학생 때 한국에 돌아왔고 이때부터는 이미 다른 사람과 같이 하는 운동이 어려워 혼자서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 할 수 있는 수영이나 요가를 했다. 여름에는 수영 주 3회, 겨울에는 요가 주 3회를 했고, 지금까지도 수영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운동이다. 요가처럼 정적인 운동을 좋아하지 않지만 요가를 하고 나면 오려고 했던 감기도 떨어지고 온몸이 다 풀리는 효과가 있어서 안 할 수가 없었다. 졸업 후로도 약 10년 간 계속 수영과 요가를 병행하며 업무에 대한 긴장과 스트레스를 풀었고, 운동은 나에게 가장 큰 힐링타임이자 힘든 시간 나를 버티게 해주는 친구같은 것이었으니 당연히 놓을 수가 없었다.


운동을 좋아해서 초등학생 이후 지금까지 운동을 멈춘 적이 없다. 생각해 보니 포르투갈에서 고등학생 때는 학교 탁구 대표를 하고, 대학생 때는 학교 농구대표 선수를 했던 친오빠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오빠와 두 살 터울이라 같이 많이 놀았는데, 못하는 운동이 없었던 오빠와 (그리고 오빠 친구들과) 거칠게 운동을 하면서 놀다 보니 축구, 배구, 탁구, 배드민턴 등 공으로 하는 운동이라면 다 좋아했다. 물론 나에게 특훈을 해주던 오빠도 답답해서 가르치기를 포기한 몇가지 운동이 있긴 하다.


10대, 20대 때는 운동이 재미있어서 했고, 하루를 꽉꽉 채워 동시에 많은 일을 하면서 체력으로 무리한 일도 다 헤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30대 때는 운동을 살려고 하게 됐고, 40대를 1년 앞둔 지금은 운동을 안 하면 죽을 것 같아서 한다.


대학 졸업 후 바로 회사생활을 시작했고 15년 정도 쉬지 않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노예같이 일을 했던 나는 건강이 많이 악화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승부욕이 강했던 성향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성취욕으로 바뀌었고, 가족을 갖게 되면서 이런 성향이 점점 책임감으로 바뀌었던 것 같다. 대학생 때 하루에 6시간도 넘게 의자에 앉아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했던 내가, 회사생활 할 때는 하루 8시간 이상 컴퓨터 작업을 던 내가, 어느 순간 30분만 책상에 앉아서 책을 보고 글을 써도 목과 어깨에 통증이 느껴져서 더 이상 앉아있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어느 순간 부터 내가 사랑하는 독서와 글쓰기가 오히려 나를 아프게 하는 원인이 되자, 마치 축구선수가 다리를 다쳐 영원히 앞으로 축구를 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은 것 같은 절망적인 느낌이 들었다. 30분이 10분이 되고, 단 5분도 책상에서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애써 무시하고 싶었지만 몸에 무리가 왔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1년 전 병원에서 내린 진단은 목 디스크였다. '그래, 내가 몸을 너무 무리해서 썼지...'


하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몸과 정신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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