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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 마음 맑음 Nov 08. 2023

임신, 출산, 육아 그리고 나를 찾아가는 여정

출산 예정일 일주일 직전까지 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머슬대회는 출산 후 다시 도전해 보기로 하고 건강한 출산을 위해 무리되지 않는 선에서 관장님의 지도를 받아 운동을 이어갔다. 운동을 안 하던 사람이라면 의사 지시에 따라 가벼운 걷기 등으로 운동을 하면 좋다. 산부인과 의사도 헬스를 오래 했기 때문에 무리되지 않는 선에서 계속해도 괜찮다고 했고, 관장님도 나도 임신 중 운동을 계속하는 것이 아이와 산모에게도 좋다고 판단했다.


운동을 할 때 정말로 아이도 좋았는지 발로 엄청 힘차게 차길래 축구선수가 될 줄 알았다. 아이와 관장님은 인연이 깊다. 임신 전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 임신 중 태교운동, 그리고 출산 직전까지 운동을 해서 그런지 아이가 아무런 건강 문제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것을 보며 우리 부부는 진심으로 관장님 덕분이라고 말한다.


배가 남산만 한데 막달까지 운동을 계속하자 나는 헬스장에서 유명했다. 헬스장의 자랑 아닌 자랑이 되었다. 모든 아주머니들이 예뻐해주시고 주변 식당에도 갈 때마다 항상 친절하게 잘해주셨다. 엄마와 딸이 함께 하는 식당이 있었는데 음식 맛은 고급 레스토랑 느낌인데 가격은 착한 헬스장 근처 단골 식당이 있어서 자주 갔었다. '어머니가 우리 아가 다 먹이고 키우셨다고' 말하면 까칠했던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 웃으시며 정성스럽게 음식을 준비해 주셨다. 출산 후 아이가 성인 음식도 잘 먹을 수 있을 때쯤 되면 함께 가서 아이를 보여드리고 싶었지만, 몇 년 후 문을 닫을 걸 보고 아쉬웠다.


그렇게 출산 전 3년을 관장님 지도에 따라 체계적이고 안전한 운동을 했고 출산을 했다. 출산 3개월 후 다시 헬스장에 돌아와서 머슬대회 준비를 하겠다고 말씀드렸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엄마의 패기 혹은 무지였고, 그로부터 3년이 지나서야 다시 관장님을 찾아뵐 수 있었다.


관장님이 아령으로 집에서 할 수 있는 운동 방법과 순서를 알려주셨고, 아령 2kg, 3kg, 5kg를 사서 관장님이 그려준 그림 그대로 3년 동안 아이가 잠든 시간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운동을 반드시 했다. 친정은 4시간 거리, 시댁은 그 이상 거리라서 주변에 아이 키우는 것을 직접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가족이나 친척이 없어 남편과 내가 온전히 아이를 돌봤기 때문에, 아이를 안전하게 잘 키우기 위해서는 체력이 전부였다. 그래서 더더욱 끝까지 운동을 놓을 수 없었다. 아이가 세 살쯤 되었을 때, 나는 몸이 많이 안 좋아져 있었고, 출산 후 25kg가 쪘는데 살이 빠지지 않고 그대로였다. 출산 전, 키 170cm에 50kg을 넘어본 적이 없고, 항상 44-55 사이즈를 입었던 나에게 이미 맞는 옷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러면서 살짝 우울감이 함께 오기도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최소 36개월 까지는 키우고 싶었다. 이 시기 아이가 너무 많은 주 양육자를 갖는 것은 아이에게 혼란을 주므로 가장 이상적인 것은 엄마, 아빠 두 사람이며, 상황에 따라 할머니 정도, 3명 정도의 주 양육자가 좋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어린이집을 보내더라도 36개월 후에 보낼 예정이었다.) 36개월  전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이유는, 이때 아이 정서의 씨앗을 심어주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이 시기에 우울하거나 불안하다면 엄마는 시기적으로 잠시 불안했을 뿐인데, 아이는 성인이 될 때까지 우울하고 불안한 정서가 기본으로 내재되어 아무리 행복하고 좋은 상황에서도 불안과 우울을 느끼는 정서로 형성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엄마의 정서가 아이에게 그대로 전이되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는 태평 같은 마음으로 감정적으로 안정적일 수 있어야 하며, 다른 걸 다 떠나서 평온하고 행복한 마음과 언어를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선물이자 유산이다. 적어도 나는 이렇게 생각했고, 내가 믿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나의 부정적인 것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다짐했다.


36개월 까지가 아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엄마를 필요로 하는 시기라는 것을 알고 있고 믿고 있었다. 요즘에도 내가 아무리 꼬질꼬질한 옷을 입고 있어도, 만 5세가 된 아이는 지금도 엄마냄새가 좋다고 하고 엄마가 향기롭다고 한다. 나는 1년 동안 모유수유를 했고, 특히 신생아 때 아이를 많이 안고 있었다. 아이는 울다가도 내 품에 들어오면 정서적으로 안정을 되찾았고, 지금도 아무리 속상한 일이 있어도 엄마 품에 안겨 충전을 하고 나면 다신 힘을 낸다.


신생아라서 아무것도 모를 것 같지만 아이들은 자기를 돌봐준 사람의 향기와 목소리와 함께 웃으면서 행복했던 감정을 기억하고, (행복했던 추억의 정확한 장면은 기억하지 못할지언정) 함께 보낸 시간의 행복했던 그 느낌을 영양분으로 자란다. 낳아준다고 부모가 아니라, 함께 한 시간만큼 아이와 부모도 더욱 깊은 사랑과 신뢰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나는 네 남매의 막내이고 아빠와 엄마가 항상 많이 바쁘셔서 집에 많이 없었고 언니들이 나를 아빠 엄마처럼 키웠다. 나를 키워준 언니들에게 고맙고 나와 놀아준 오빠에게 고맙지만, 그래도 모든 아이는 자기 부모에게 사랑을 받아야 하고, 자기 부모에게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고, 자기 부모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부모인 내가 내 아이에게 그 권리를 빼앗아 가고 싶지 않았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청소년기가 되면 알아서 아이가 내 품을 떠나려 할 것을 알고 있고, 그때쯤 되면 엄마의 역할은 점점 필요가 없어지고 아이는 독립을 준비할 것이다. (아이와 타인에게 해가 되거나 위험한 길이 아니라면) 그때 내가 할 일은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뒤에서 묵묵히 지지하고, 아이가 가고 싶은 길을 갈 수 있도록 아이를 놓아주는 것이다. 하지만 영유아기 시절, 특히 만 3세까지는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보호가 필요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3년 동안 아이 곁을 지키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아이가 잘 자라 준 덕분에 3년 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3년 동안 관장님께 운동 방법과 순서를 배운 것을 가지고 가장 가까운 헬스장에서 혼자서 주 3회 2시간 헬스를 했다. 점점 체력이 좋아지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버틸 수 있는 힘과 집중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체력이 올라가니 다시 내 삶의 방향성에 대해 생각할 힘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관장님의 말씀이 항상 생각났었다. "지금 삶의 목표와 방향성을 몰라도 괜찮아. 운동을 통해 체력과 건강이 좋아지면, 그때 다시 마음속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고, 인생의 가능성이 많이 열릴 거야. 그때 결정해도 늦지 않아." 육아하면서 틈틈이 공부하며 알아봤던 회사에 입사준비를 했고, 꼭 들어가고 싶었던 회사에 우여곡절 끝에 입사하게 되었다.


3년 동안 육아에 집중했지만 동시에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끈질기게 공부를 놓지 않았고, 많은 것을 할 수는 없었지만 당장 오늘 하루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지속적으로 했다. 그것이 모여 내가 되고, 그렇게 내 무기가 하나 더 생기면, 새로운 삶의 목표와 가능성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을 경험했다. 육아를 하면서도 3년 후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면 다시 일을 시작하기 위해, 3년 동안 아이가 자고 있는 시간에 독서와 글쓰기를 하면서 들어가고 싶었던 회사를 연구하며 입사 준비를 했다.


그렇다. 삶의 목표와 방향성을 잃어도 괜찮다. 몸, 마음, 정신력을 놓지 않고 단련하다 보면 하고 싶은 일이 생기기 시작하고, 진정 원하는 것이 선명하게 생겼을 때, 현실 가능한 목표인지 단계적으로 실험을 해보고, 가능하다고 확신했을 때, 그때 가서 그 삶을 선택해도 늦지 않다. 이 과정에서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의 상황이 싫어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삶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지금이 충분히 좋은 조건이어도 앞으로 내가 원하는 더 나은 삶, 더 나다운 삶을 만들어가기 위해 새로운 삶을 준비할 수도 있다.


출산 후 여자의 경우 '경력단절'이라는 단어를 쓴다. 하지만 나는 인생 통틀어서 육아할 때 가장 열심히 공부했고, 가장 많이 성숙했고, 가장 집중력과 생산성이 높아졌다. 아이가 낮잠 잘 때 1~2시간, 혹은 밤이나 새벽에 아이가 잠잘 때 1~2시간 틈을 내서 체력 단련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나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들을 허겁지겁했기 때문에 평생 만들려고 해도 더럽게 안 만들어지던 습관을 이 3년 동안 초스피드로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나에게 익숙한 주제는) 타이머 맞추고 1시간 안에, A4 1장 기준, 글 1편~2편은 쓰고, (단행본 약 200페이지 기준) 2~3시간 안에 책 1권은 읽게 되었다.


심지어 박지성도 축구랑 육아랑 무엇이 더 힘드냐는 질문에 육아가 더 힘들다고 말하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축구는 휘슬을 불면 시작이 있고 끝이 있기 때문에 그때만 전력 질주를 하면 되는데, 육아는 한번 스타트가 되면 24/7 퇴근도 끝도 없이 계속 연장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아는 전력질주하는 100m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을 천만번 뛴다고 생각하고 페이스 조절, 체력 조절, 멘탈 조절을 아주 잘해야 하는 고도의 훈련이다.


그런데 경력단절이라는 단어는 마치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고, 자격이 미달된다는 느낌이다. 나의 생산성과 집중력은 육아로 인해 고도로 발달되었으며, 3세 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후, 사회에서 소위 말하는 경력단절임에도 불구하고 전 직장에서는 수차례 재입사 제안을 했으며, 심지어 전 직장에서 함께 일했었던 협력업체에서도 수차례 스카우트 제안을 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예전 회사에 가고 싶지 않았다. 전 직장에서 하던 일도 의미 있는 일이었고 보고 싶은 사람들도 많았지만, 앞으로 내가 살고 싶은 삶에 대해 그리고 스스로에 대해 확고했다.


나는 출산 전 보다 더 강해졌고, 업그레이드되어 있었으며, 나에 대한 믿음이 견고했다. 출산과 육아를 통해 처절하게 나를 찾았고, 묻고, 답을 찾고,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내가 정확히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참을 수없이 경멸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했을 때 내 집중력, 생산력, 몰입도가 극대화되는지

-어떤 삶의 기준과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

-무엇이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지

-앞으로 내 인생에 업을 갖는다면, 위에서 말한 가치를 지키면서도,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출산 전에는 사회, 부모, 주변이 원하는 방향에 꼭두각시처럼 휘둘리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끌려 다니고 있었다. 그때의 내가 있어서 지금의 나도 있는 것이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때의 내가 안쓰럽기도 하다. '언제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냐?'는 질문에 '누군가를 진심으로 돌본 경험을 갖게 되면 어른이 되는 것 같다.'라고 답한 사람을 본 적 있다. 이를 위해 꼭 부모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내 경우 맞는 말 같았다. 아이를 소중하게 보호하고 사랑하고 지키는 경험을 통해 나를 더욱 깊이 알아갈 수 있었다. 어른이 됐다고 말은 못 하겠으나, 점점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3년 후 육아는 나에게 엄청난 자산이 되어 있었다. 나는 육아를 할 때, 조금만 힘들고 문제가 있어도 혼자 진단하려고 하지 않고, 의사를 찾아갔고 전문가들의 책이나 영상을 찾아보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전문가들이 하라는 대로 하니까 정말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었고, 이 모든 과정이 나에게 자신감과 확신을 주어, 육아효능감이 올라갔다. 나는 독서와 영상으로 본 내용들을 잊어버리지 않고 장기 기억으로 남기기 위해 글로 요약하고, 기록하고, 정리해 두었다. 육아 3년 동안 블로그에 100편이 넘는 글을 남겼고, 100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 일을 다시 시작하는데 총알이 되어주었고 텐츠가 되어주었다.


만약 독서만 했다면 흘러간 지식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배운 지식과 지혜를 글로 기록함으로 인해 육아를 '경력단절'이 아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 줄 수 있는 자산으로 만들었다. 모든 고통이 성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의식적 노력이 성과를 만드는 것처럼, 의식적 고통이 성장을 만든다. 의식적으로 성과가 될 수 있는 고통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냥 고통은 나를 나락으로 끌고 가는 고문이 될 수 있다. 마약의 후유증을 내가 꼭 겪어봐야 알게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가능하면 영양가 없이 소모적인 고통은 피하고, 성장을 위한 필연적인 고통을 기꺼이 직시했다.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을 모두 합리화하지 않았다. 무엇을 할지 보다 무엇을 버릴지부터 생각했고, 채우기 전에 먼저 비우는 연습을 했다. 나에게 가장 의미 있고,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을 하기 위해서, 나에게 의미 없는 것들을 빨리 그리고 잘 버리려고 노력했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성장통의 이유를 정확히 인지하려고 했다. 이 고도의 훈련이 육아를 통해 가능했고, 내가 이런 사람이 되도록 육아는 나를 낭떠러지로 밀어냈다. 낭떠러지에서 추락하는 아기 독수리가 나는 법을 배우듯, 내가 육아를 통해 겪은 성장통이 나에게 날개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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