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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며 다시 서다

나의 운동 역사 4 - 내 삶을 움직인 임산부 필라테스

by 민송


임신 중, 다시 만난 필라테스

나의 첫 그룹 필라테스는 충격 그 자체였다. 내게 근력이 거의 없다는 것, 그리고 내 몸이지만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두 번째로 만난 소그룹 필라테스는 조금 달랐다. 이게 맞나 싶으면서도, 강사의 목소리와 손끝으로 전해지는 피드백을 따라 움직이니, 비로소 내가 이 운동을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 만남, 임산부 필라테스였다.


임신 후, 한국인이 운영하는 척추병원에 임산부 수업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장 등록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초기라 안정기에 접어들면 오라는 말을 들었다. 입덧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그 시기, 아직 임신 사실도 알리지 못하고 혼자 감내해야 했던 외로웠던 시간이었다.


뭐든 해보고 싶어 12주부터 마음에 시동이 켜졌으나, 다시 한 달을 기다렸다. 그리고 임신 16주의 시작. 동시에 나의 임산부 운동도 시작이었다. 드디어 첫날, 매트 위에 임산부 네 명이 앉아있었다. 이제 나까지 다섯 명. 그중 내 배가 가장 작았다. 아직 누가 봐도 임산부라 하기엔 애매했지만, 예정일이 백일이나 차이 나니 그럴 수밖에. 주 2회 한 시간씩, 짧은 외출이었지만 운동을 하러 나간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결 살 것 같았다.



정적인 듯 보이지만, 내 안을 단련하는 움직임

필라테스는 언뜻 보면 요가와 닮아 있지만, 해보면 전혀 다르다. 요가는 완성된 동작에 잠시 머무르거나, 자연스러운 플로우(흐름)를 따라 움직이며, 몸과 호흡에 집중하는 운동이다. 유연성과 근력이 필요하지만, 결국 심신 안정과 마음의 수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반면, 필라테스는 '움직임 속의 안정'을 추구한다. 단단한 코어를 기본으로, 올바른 정렬을 유지하며, 반복되는 동작 속에서 몸의 움직임과 조절을 배운다. 재활운동으로 시작된 만큼 자세와 정렬, 근육의 균형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코어에 힘을 주고, 몸을 조절하는 건 쉽지 않았다.

"키가 커지는 느낌으로"

"갈비뼈를 닫아요"

"아랫배, 지퍼 채우듯이"

낯선 지시들이었지만, 상상하며 움직임을 찾아가는 과정이 새로웠다. 보기엔 정적이었지만, 필라테스는 내 안의 힘과 감각을 깨우는 경험이었다. 정적인 줄 알았는데, 내 삶을 가장 움직인 운동이었다.



함께 한 기다림의 시간, 공동육아의 시작

운동을 하며 그녀들을 만난 건 운명이었다. 타국에서, 같은 시기에, 같은 호르몬의 지배를 받던 임산부들. 자연스레 유대감이 생겼고, 하루하루 달라지는 몸에 대해 이야기하며 서로를 알아주었다. 그 시절의 필라테스는 우리에게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연결의 시작이었다.


12월과 1월, 쌍둥이를 시작으로 네 명의 아기가 차례로 태어났다. 이제 남은 건 내 아들뿐. 배는 여전히 불러있었지만, 나도 그녀들과 함께 육아를 시작했다. 모유 수유와 기저귀 갈기, 산후조리까지 미리 경험해 보고 숙지했다. 덕분에 다가오는 출산이 한결 덜 두려웠다.


5월 초, 아들이 태어났을 때, 모두 병원으로 달려왔다. 아들의 뱃속 친구들도 함께였다. 남편 외에는 가족이 없었지만, 그녀들이 있어서 외롭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집을 오가며 아이들을 같이 돌보았다. 놀이터, 동물원, 해변까지 늘 다섯 아기들이 함께였다. 그래서 아들의 어린 시절 사진에는 언제나 친구들이 있다.


출산 후, 몸이 내게 알려준 ‘회복의 힘’

산후도우미 이모님이 한 달 동안 도와주셨지만, 사실 '조리했다'는 기억은 없다. 차려주시는 밥을 먹고, 수유를 하고 틈나면 유축을 하고, 이모님이 퇴근하시면 다시 아기를 안았다. 내려놓기만 하면 울던 아기와 씨름하느라 밤낮이 없었다.


그런데도 몸은 버텨냈다. 발바닥이 시렸지만, 금세 괜찮아졌다. 회복이 생각보다 빨랐다. 출산 후 3개월 뒤, 병원에서 받은 검사 결과는 모두 양호했다. 임신 중 단련된 코어와 균형이 내 몸을 지탱해 준 덕분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운동은 내 몸을 지켜주고, 그건 결국 나를 돌보는 일이라는 걸.


출산 후엔 육아를 도와줄 사람이 없어 운동을 이어가지 못했다. 하루 종일 아기를 안고, 또는 아기띠에 매달고 있다 보니 몸은 다시 망가졌지만, 나는 믿었다. 내 몸은 분명 기억은 하고 있을 거라고. 어떻게 다시 세워야 하는지를.



결국 내 인생 운동이 되기까지

아이가 만 세 살 반이 되었을 때, 우리 가족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들이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자, 짧지만 귀한 내 시간이 생겼다. 그 시간을 운동에 쓰기로 했다. 그렇게 나의 필라테스는 끊어질 듯 이어졌다.


내 삶이 가장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필라테스는 나를 다시 서게 했다. 그리고 결국, 강사 자격증까지 도전했고 해냈다.


그 모든 시작은, 뱃속의 아기와 함께 짐볼 위에 앉았던 그때의 나였다. 그때의 나로부터 지금의 내가 되었다. 움직이며 다시 선다는 건, 결국 나를 회복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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