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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계절을 달렸다

잠시 숨 고르며, 에필로그

by 민송


8월.

그냥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흐르던,

한창 더운 여름에 하필 저는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이열치열이라 했던가요.

삐질삐질 흐르던 땀이 차라리 뚝뚝 떨어질 때 느껴지던 희열이라니.

시끌시끌 푸르던 여름밤,

뜀박질로 제 몸과 마음이 정화되었습니다.


바람이 선선해지더니

어느새 노랗고 붉은 단풍 터널이 생겨 있더라고요.

알록달록 물든 그 속으로 달려 들어가는 내가 조금 멋있게 느껴졌습니다.

그 기분으로 단풍나무 아래를, 소복이 쌓인 낙엽 위를 신나게 달렸습니다.


찬란하게 짧았던 가을이 지나고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은 겨울의 초입.

달리기를 시작하고, 이렇게 세 번째 계절을 맞이합니다.


처음엔 5분도 버거워 1분 걷기- 1분 뛰기로 시작했는데, 어느 날 25분을 연속으로 달리게 되더니 5km, 6km, 8km 그리고 마음먹으면 10km도 가능해졌습니다.


도무지 좋아질 것 같지 않던 속도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습니다. 페이스 8이 7이 되고, 7이 6이 되는 걸 지켜보며 참 신기했어요.


기대했던 체중 변화는 없지만, 부기는 빠지고 컨디션은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체력이 분명 올라갔다는 게 느껴집니다.


달리기는 이제 저에게 운동 그 이상인 것 같아요.

해가 진 후, 하루를 마무리하는 달리기는 어느새 저의 일상이 되었으니까요.

숨이 차고 땀이 흐르는 동안 정리되는 생각들,

점점 단단해지는 몸과 마음.


달리면서 저는 저를 많이 들여다봅니다.


고개를 너무 숙이지는 않았는지,

턱이 들리지 않았는지,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진 않았는지

허리는 꼿꼿하게 세웠는지

무릎이나 발목은 괜찮은지.

몸부터 마음까지 하나하나 살핍니다.


그러다 문득 아무 생각 없이 달리기도 합니다.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가,

떠오르는 생각을 따라갔다가,

마주 오는 강아지에 슬며시 미소를 짓기도 합니다.


10편의 운동 이야기가 쌓이는 동안 달리기도 차곡차곡 쌓여, 저는 어느새 '달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제는 굳이 기록하지 않아도 계속 달릴 것임을 알기에, 공저책 출간과 이사를 앞두고 잠시 숨을 고르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겨울 달리기의 묘미를 알고 싶고,

꽃피는 봄이 오면 벚꽃 터널을 달릴 그날이 벌써 설렙니다.


퇴고를 하고, 이사를 하고, 집을 정리하고,

아마 저는 더 자주 달리겠지요.

새로운 동네에서요.


네 번째 계절이 시작될 즈음,

또 다른 이야기를 들고 돌아오겠습니다.



이마저 남아있지 않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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