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기부런을 달리다
햇빛이 구름 뒤에 숨어버린, 다소 쌀쌀했던 11월 8일.
연세대학교 대운동장에 파란색 티셔츠를 입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기록을 위한 경기가 아닌, 암 예방과 암환우들을 위한 기부런.
그리고 나와 아들이 함께 뛰는 첫 러닝 이벤트.
딱, 달리기 좋은 날이었다.
출발 신호가 울리고 800명의 사람들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운동장을 돌다 교정 메인 도로로 진입하자마자, 바로 옆에서 달리던 아들이 대차게 넘어졌다. 다행히 속도를 내기 전이라 큰 부상은 없었고, 사람들은 조심스레 피해 지나갔다. 벗겨진 운동화 한 짝을 내가 주워 들자, 아들은 낚아채듯 다시 신고 그대로 뛰기 시작했다.
장한 마음과 걱정이 뒤섞인 채 쫓아가며, 겨우 한마디를 물었다.
"괜찮아?"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손바닥을 만지작거리는 아이. 분명 아팠을 텐데, 꾹 다문 입으로 앞만 보고 달리고 있었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싶었다.
제1회 온코런 공고를 보자마자 '첫 대회'로 욕심이 났다. 기부런은 러닝을 넘어선 특별한 의미가 있으니까. 하지만 토요일은 남편이 일하는 날. 포기하거나, 아들과 함께 뛰거나 둘 중 하나였다. 처음엔 아주 깨끗하게 포기했다. 그러다, 좋아하는 작가님의 "같이 뛰어보자"는 말에 용기가 생겼다. '아이와 함께 달리면 얼마나 좋을까.' 달리기의 즐거움과 기부의 의미를 알려줄 절호의 기회. 문제는, 아들이었다. 초3 아이가 5km를 완주할 수 있을까?
태권도 시범단에서 종종 달리기 훈련을 한다고 해서, 주말에 한 번씩 동네를 같이 뛰어 보긴 했다. 그런데 문제는 달리기가 아니었다. 문제는 엄마는 코치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뛰면서도 장난치느라 산만했고, 내 조언은 죄다 잔소리가 되어 공기 속으로 사라졌다. 승부욕은 쓸데없는 순간에 폭발해, 굳이 초반에 스퍼트를 올렸다가 2km를 채 못 가서 옆구리를 잡는다. "엄마, 못 뛰겠어."
집에 먼저 가 있으라고 하면 싫다고 하고, 뛰는 건 힘들어서 못하겠단다. 걷자니 내 페이스는 끊기고, 결국엔 파국의 짜증 엔딩.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웬만하면 혼자 뛰자'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대회는 이미 신청했고, 훈련은 필요했다. 기부런의 취지를 설명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꼭 함께 뛰기로 약속했다.
우리의 과제는 두 가지.
1. 과속 없이 일정한 페이스로 달리기
2. 힘들면 속도를 늦추고, 멈추지는 않기
평소 보상에는 조심스러운 편이지만, 이번엔 특단의 조치다. '쉬지 않고 달리면 1km당 5000원 마일리지 적립.' 효과는 확실했다. 초반 스피드도 올리지 않고, 힘들어도 멈추지 않고 3km를 뛰었다. 대회 2주 전엔 낡은 운동화를 대신할 아들의 첫 러닝화를 선물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달리기라는 운동이 아들에게 일찍 '반려 운동'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 그리고 5km 완주는 결국 아들에게도 오래 기억될 경험이 될 테니까. 어쩌면 엄마의 욕심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였지만, 그렇게 우리는 본격적으로 함께 뛰기 시작했다.
연습에서 3km는 거뜬한 아들을 보고, 대회 당일엔 응원과 열기 속에서 충분히 완주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문제는 러닝 코스였으니. 주로 평지에서 연습하던 우리에게 연세대의 오르막과 내리막은 그야말로 난코스였다. 게다가 계단과 안산 둘레길, 자갈과 낙엽길. 체감상 3분의 1은 트레일 러닝에 가까웠다. 일주일 전 사전 교육으로 코스의 절반을 뛰어 보긴 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맛보기'였다.
대회에선 절대 잔소리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함께 달린다'는 사실 하나만 기억하려 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그룹으로 달리는 자리에서 아들의 질주 본능이 발동되자, '민폐'라는 불편한 감정이 올라오고, 내 다짐은 금방 힘을 잃었다.
"아들, 오른쪽으로 붙어"
한마디 했더니, 볼멘소리가 돌아왔다. 그리고 또 시작되는 실랑이.
참을 인을 백번 쓰며 달렸다. 하지만 위험 구간에서는 결국 조심하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아들의 짜증 섞인 표정에 기어이 그 말을 내뱉고 말았다.
"그럼 각자 뛰어. 결승에서 만나자."
싸늘한 말을 남기고 뒤로 빠졌다. 순간 올라온 말이었지만, 달리다 보니 이내 마음이 불편해졌다. 서로에게 필요한 거리 두기였을지라도, 꼭 그런 식으로 말했어야 했을까.
낙엽이 떨어진 산길로 접어들자, 앞에서 누군가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니?"
앞사람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내 아들이었다. 넘어질 뻔하다가 간신히 균형을 잡은 모습. 재빨리 다가가서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아들도 말없이 내 손을 잡았다. 그 순간, 아까의 싸움은 사라졌다.
내리막길은 더 위험해서, 아들의 팔을 내 팔짱에 끼워 균형을 잡으며 내려갔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함께' 달렸다. 둘레길이 끝나고 교정으로 돌아오자 그제야 알록달록 가을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 봐. 너무 이쁘다."
실랑이만 했더라면 보이지 않았을 풍경이었다. 단풍과 낙엽이 어우러진 그곳에서 달리는 사람들. 눈부셨다.
아들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고, 머리카락 끝엔 땀방울이 매달려 있었다. 나도 힘들었지만 아들은 더 지쳐 보였다. 출발 때부터 손에 꼭 쥐고 있던 물병을 건네며 말했다.
"힘들면 걸어도 돼."
하지만 아들은 걷지 않았다. 속도는 늦췄지만 멈추지 않았다. 나도 아들의 페이스에 맞춰 달렸다. 멀리 출발했던 운동장이 보이기 시작했고, 결승점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트랙에 들어서자 한 바퀴를 더 돌아야 했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의 응원이 쏟아지자 지쳤던 아이는 다시 속도를 올렸다. 아들이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고, 나도 뒤이어 도착했다. 우리는 결국 완주를 해냈다.
개막식에서 가장 마음에 남았던 문장.
"온코런에는 기록도 순위도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 '함께' 달립니다. 누군가 뒤처져 있다면 속도를 늦춰 주세요. 함께 달려주세요. 함께 걸어주세요."
실제로 내 앞과 뒤에서 암 생존자들이 달리고 있었다. 나는 마음 깊이 그분들을 응원했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내 아들의 마음은 놓칠 뻔했다. 그 마음을 읽지 못한 채 결승선에 도착했다면, 완주가 오히려 부끄러웠을지도 모른다. 늦게라도 손을 잡아줄 수 있어 참 다행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아들이 초반에 넘어졌을 때 운동화 끈도 같이 풀려버렸다고 했다. 그 끈이 풀린 채로 끝까지 달린 것이다. 무릎과 손바닥은 까져 있었지만, 나무 메달을 받는 순간 아이의 얼굴은 환하게 빛났다.
아들에게
인생은 마라톤이래.
살다 보면 운동화 끈이 풀릴 때도 있고
넘어지는 날도 있어.
그땐 오늘처럼 일어나면 되는 거야.
손 털고 다시 달리면 돼.
서두를 필요도 없어.
끈부터 다시 묶고,
물도 한 모금 마시고 시작해도 늦지 않아.
오늘 정말 멋졌어.
완주 축하해.
그리고...
이렇게 좋은 달리기,
이제 우리, 각자 달리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