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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미작가 Oct 30. 2020

바이러스, 군대, 육아, 글쓰기?

"군대에 있을 때 나는 바이러스 같았다. 전적으로 군인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여자도 아니었다. 훈련을 받을 때에는 남군들의 체력 수준을 하향화시키는 주범이 되었고, 생리통으로 훈련에서 뒤처지거나 열외 하면 '여자 같이 구는' 군인이 되었다. (중략) 나의 불안을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어디에도 완벽하게 속하지 않는, 경계에 있는 사람'이라는 불안. 나의 연구 주제처럼, 바이러스와 닮은."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주최한 공모전에 당선된 나의 글 '바이러스는 아닙니다만,'의 일부




사관생도 4년, 해군으로 5년 복무 후에 꿈을 찾아 퇴역했다. 생명공학도가 되고 싶다는 오랜 꿈이었다. 처음으로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린 결정이었다. 지금까지의 진로를 뒤엎고 완전히 새롭게 시작해야 했기에 두려움이 컸지만, 그때가 아니면 5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더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아빠는 내가 제멋대로 퇴역했다는 이유로 근 일 년간 내 전화도 받지 않으셨다.


나는 마음이 급했다. 내가 선택한 길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어 즐겁고 행복하다는 사실은 내 마음에만 존재했다. 나는 남들이 보기에도 폼나는 성공을 손에 넣고 싶었다. 하지만 대학원 졸업 후 입사한 회사에 막 적응을 끝낼 즈음 첫 번째 출산과 육아휴직을 하게 되었고, 복직 후 반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내가 속한 사업부가 문을 닫는다 발표했다. 설상가상 두 번째 임신과 출산으로 휴직을 시작했고, 이제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 돌아갈 수는 있는지조차 모르게 되었다.


"다시 일할 수 있을까?"

군대, 대학원, 직장, 2번의 육아휴직. 나의 커리어는 완전히 방향을 잃었다. 복직을 해야 하는지, 이직을 해야 하는지, 퇴직하고 재취업을 생각해야 하는지, 아니 다시 직장을 찾긴 찾아야 하는지 갈피를 잡기도 어려웠다. 와중에 이력서라도 업데이트해 놓자며 서식을 다운로드하였지만 수 일이 지나도 새 문서 그대로였다. 어떤 경력을 말해야 할지 난감했다. 도무지 하나로 압축되지도 않는 이력 앞에 나는 좌절했다.  


억울했다. 분명 나는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매일 내 길을 찾겠다고 발바닥에 땀나도록 열심히 뛰고 머리에 쥐 나도록 공부했었다. 내 길을 찾은 것도 같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걸어온 길을 뒤돌아 봤지만 발자국이 어지러워 어느 길로 걸어왔는지도 알 수 없었다. 마흔이 코 앞인데 지금까지 무얼 하며 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니!  대체 무엇을 하며, 무엇을 위해 애쓰며 살았단 말인가! 무(無) 쓸모. 노(No) 답. 지금까지 내가 애쓰며 살아온 시간이 모두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낙담했고, 우울했고, 불안했다.


꽤 오래 바닥을 쳤다. 시간 하나는 기똥차게 갔다. 이대로 계속 가다간 지하 백 층도 거뜬해 보였다. 올라와야 했다. 누가 대신해줄 수는 없었다. 내가 스스로 헤어 나와야 했다. 다시 처음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강점도 찾아보고, MBTI 검사도 다시 해보고, 커리어 상담도 받았다. 격하게 머리를 끄덕거리면서도, "그래서 어쩌라고?" 앞에 머릿속 회로는 정지했다. "내 과거 중 의미 있게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은 없는가?" 하는 스스로의 물음에 나는 늘 꿀 먹은 벙어리였다. 바닥의 우울에서 헤어 나오기는커녕 그대로 가라앉기 직전, 불현듯 생각 하나가 머릿속을 스쳤다.


"하나로 꿰어지지 않으면 의미 없는 것일까?"


나는 나의 모든 과거에서 '의미'의 씨앗을 발견하기로 했다. 연결되지 않는다 해서 함부로 살아낸 인생이 아님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나의 글 안에서라도 내가 살아온 인생을 하나로 엮어내고 싶었다. 기적처럼 connecting THE dots가 실현되기를 꿈꾸는 마음도 조금 더했다.

이 브런치북은 그런 글들의 묶음이다. 아이가 낮잠 자는 틈을 쪼개고 밤잠자는 시간을 더해 썼다. 글을 쓰는 귀한 시간을 통해 어두컴컴 내 인생도 존재 의미가 있음을 되짚어본다. 이왕이면 긍정적으로다가.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 Steve Job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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