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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미작가 Oct 27. 2020

글쓰기의 최전선

천연두 바이러스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전염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이다. 감염되면 치사율이 30%에 달한다. 고열, 두통, 몸살, 발진 등에 시달리며 운 좋게 낫더라도 피부에 흉터가 눈에 띄게 남는다. 천연두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있는 항바이러스제는 없지만 효과적인 백신이 개발되었고, 1977년 소말리아에서 발생한 마지막 감염 사례를 끝으로 1979년 박멸 선포되었다. 이후 WHO는 여러 연구시설에서 보관 중이던 천연두 바이러스를 미국과 소련의 WHO 표준 실험실로 이관해 보관 중이다.

 



처음에는 순간의 기록이었다. 울고 웃고 외롭고 고달픈 순간들이 조각조각 글로 쌓였다. 쓰다 보니 감정의 패턴이 보였다. 어느 순간에 가라앉고 어느 순간에 폭발하는지 대략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그러자 이유가 궁금했다. 왜 매번 비슷한 상황에 비슷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는지 알고 싶었다. 이유를 안다면 더 이상 성격파탄자처럼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끈질기게 이유를 찾았다. 과거의 어린 나를 만났고 내면의 나를 보았다. 욕하고 원망하고 울면서 글을 쓰고 또 썼다. 더 이상 덧붙일 욕도 없을 만큼 써재끼며 후벼 파낸 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의미를 찾아 반창고를 붙여주었다. 그제야 과거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나에게 실낱같은 볕이 들었다.


글을 쓰기 전에는 몰랐다. 쓰고 나서 알았다. 글쓰기가 나를 살렸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미친 듯이 화를 냈던 날, 울다 지쳐 잠든 아이들 발 밑에서 죄책감에 몸을 떨다가 남편이 자정이 넘은 시간에 퇴근하자마자 도망치듯 집을 나와 편의점 구석에서 울며 글을 썼다. 죽고 싶다고,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죽어 버리자고 썼다. 유서 같은 글을 쓰다가 사실은 아이들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을 마주하고는 엉엉 울며 집으로 돌아왔다. 밤새 아이들 살 냄새를 맡으며 목구멍이 아프게 눈물을 눌러 담았다. 그때의 기록, 아직도 남아 있다. 육아에 지치고 현실에 치일 때 한 번씩 꺼내 읽으면 정신이 번쩍 든다.

그때뿐만이 아니다. 도무지 내 삶에 희망이라고는 없어 보일 때에도, 지금까지 뭐하며 살아온 건지 이력서에 한 줄 채워 넣는 것도 어려워 좌절할 때에도 그때의 감정과 생각들을 기록했다. 솔직하다 못해 적나라한 나의 글은 현재의 나를 발가벗겨놓은 듯했고, 덕분에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현실을 단단하게 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심지어 위안이 되기도 했다.


그러니 계속 쓸 수밖에.

치사율 30%의 천연두 바이러스도 연구용으로 남겨두는 마당에 내 우울한 감정과 복잡한 생각쯤이야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일도 아니다. 아직 글을 써보지 않았다면 무작정 쏟아내 보시라. 지겨울 정도로 감정과 생각을 쏟아내다 보면 뿌리와 패턴이 보인다. 쏟아내다 못해 후벼 팔 만큼 써봤고 이제 더 생각나는 과거도 없고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딱 봐도 척'이라면 이제 그 일에 의미를 찾아줘야 할 때이다.

무작정 나의 부모를 탓하고 원망했던 글은 지금의 나를 만든 귀한 순간들을 기록한 글이 되었다. 그렇다고 원망이 갑자기 감사로 변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아빠 때문에 억지로 견뎌야 했던 시간'에서 '그래도 인내와 끈기 하나는 제대로 배운 시간'정도가 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긍정'을 입은 나의 과거의 순간들은 나를 '계속 성장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덕분에 제대로 정신 승리하는 방법을 깨우치기도 했고.

벌써 의미까지 찾았다고? 그래도 계속 써야 한다. 과거를 바라보는 해석은 달라지기 마련이고 내가 성장할수록 내 삶의 의미도 진화하기 때문이다.


글은 자유롭다. 한계가 없다. 글과 함께라면 내 삶도 그럴 거라 믿는다. 그러니 써야겠다, 계속.

"당시에는 지긋지긋했지만 이제 그 기억은 내 마음이 뜯어먹기 좋아하는 좋은 풀밭이 되었다."는 조지 오웰의 말처럼, 내 인생이야말로 뜯어먹기 좋은 풀이 지천에 널린 드넓고 푸르른 초원이니까.

참 글쓰기 좋은 인생이다.

이제와 새삼, 참 감사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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