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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미작가 Oct 16. 2020

왜 쓰냐고 묻거든,

바이러스가 항상 병을 일으키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예방하기도 한다. 백신이다. 질병을 일으키는 능력을 제거하거나 약화시킨 바이러스를 미리 주입함으로써 우리 몸이 바이러스와 싸울 수 있도록 대비하는 것이다. 백신을 통해 우리 몸에 들어간 바이러스를 세포가 기억했다가 나중에 진짜 바이러스를 만나면 면역 반응을 일으켜 우리 몸을 보호한다. 백신은 바이러스 예방의 일등공신이다.




갑자기 무슨 글을 쓰냐 싶을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의 나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세 아이들과 부대끼느라 누군가와 진득하게 이야기할 시간도 없었고, 곁에 얘기를 나눌만한 사람도 없었다. 남편은 늘 바빴다. 아침에 싱크대에 버려진 바나나 껍질을 보고 집에 다녀갔음을 알 정도였다. 친정엄마 역시 늘 바빴고, 자주 아팠다. 남편 직장을 따라 이사 온 터라 주변에 친구도 없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고, 나 역시 아무에게도 기대지 않았다.


무조건 버텼다. 내가 한 결혼, 내가 낳은 아이들이었다. 내가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군에서 익힌 악과 깡을 전부 갈아 넣으며 체력적으로, 심리적으로 인내하고 버텼다. 하지만 조금씩 몸도 마음도 바스러졌다. 아기가 낮잠 자는 동안 급하게 밥 먹다 흘린 김치 국물 묻은 옷을 갈아입다 울었고, 잦은 집안일에 석석 소리 나도록 거칠어진 손을 비비며 서러워했다. 일찍 오겠다고 약속한 남편이 연락두절 야근할 때면 화염병에 불을 붙인 듯 목구멍 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감정은 요동쳤고, 애먼 아이들에게 쏟아졌다. 아이들이 던진 작은 불씨에 활화산처럼 폭발했다. 겁먹은 아이들의 눈동자를 마주한 날이면 밤늦도록 그 눈빛에 쫓기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죽고 싶었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고, 나조차 돌보지 않는 나를 그냥 놓아버리고 싶었다. 동시에, 살고 싶었다. 금쪽같은 내 새끼들 살내음 맡으며 오래도록 잘 살고 싶었다. 그래서 제멋대로 날뛰는 감정을 꽁꽁 싸매어 가슴속 저 밑에 가두었다. 내 가슴은 뜨거운 돌을 잔뜩 삼킨 것마냥 따가웠다. 껍질이 벗겨지고 진물이 흘러도 모르는 척했다. 억지로 끄집어 올리던 정신력이 바닥나다 못해 파탄 나기 일보 직전이 되어서야 비로소 내가 나를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도 나를 돌보지 않으면 그야말로 망가질 것 같았다.


말부터 하고 싶었다. 힘들다고, 버겁다고 털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말할 곳 없고, 들어줄 이 없었다. 그래서 썼다. 그리고 그 글 끝에 '왜?'를 남겼다.


나는 왜 화가 났을까. 나는 왜 우울할까. 나는 왜 실망했을까. 나는 왜 눈물이 났을까.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왜, 왜, 왜.


이유를 찾고 싶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힘든 건지 아무리 머릿속으로 생각해봐도 화만 나고 답은 없길래 글을 썼다. 지난하게 이어지는 '왜'의 끈을 잡고 나의 글은 마음속에 묻혀있던 기억들을 퍼올렸다. 글을 쓰면서 어린 날의 나를 만났다.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것도 이루지 않아도 나 자체만으로 사랑받고 싶었단다. 부정한 감정과 생각도 수용될 수 있다는 믿음을 얻고 싶었고, 힘들 때 조금 쉬어가도 된다고 다독이는 따뜻한 위로를 받고 싶었단다.


젠장. 결국은 내 부모 때문인 건가. 내 과거 때문에 지금 내가 이 모양 이 꼴인 건가. 나 좀 잘 키워주지. 나 좀 잘 봐주지.


원망은 끝이 없을 것 같았다. 써도 써도 시원하지 않았다. 수많은 감정의 고리가 결국 부모와의 기억에 닿아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마다 마음이 난도질당했다. 밉고 원망스러운 마음 한 켠에는 죄책감도 자리했다. 지금껏 사랑과 희생으로 키우고 돌봐준 부모에게 원망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일까. 원망과 죄책감의 콜라보로 내 마음은 너덜거렸다.


그토록 바랐던 사랑과 믿음과 위로를 주지 않은 부모를 원망하고, 스스로 요구하지도 못했던 나를 탓하는 글을 수도 없이 반복해서 쏟아냈다. 끝이 없을 것 같았는데, 끝이 나긴 났다. 마지막에 건져 올려진 마음은 '그 모든 것을 인정한다'였다. 인정했다. 나의 외로운 과거와 현재가 나의 부모 탓도, 내 잘못도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이 그랬으니까. 나의 부모는 과거에도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당연히 나 역시도 그렇다. 더 이상의 최선은 없을 정도로. 전부 자기 기준에서의 최선이라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결국, 이 모든 과정의 종착지는 '수용'이었다.  

과거는 과거대로, 현재는 현재대로, 감정은 감정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일.

판단하지 말고, 억지로 회복하거나 극복하려 하지 말고, '아, 나 지금 이렇구나'하고 내가 느끼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 말이다.


글을 쓰고 나서야 내 감정의 뿌리를 알았다. 가지가 어디로 뻗칠지 가늠도 되었다. 삐쩍 곯은 나무에서 억지로 향기 나는 꽃을 피우려 애쓰지 않게 되었다. 밑동 언저리에서 자라는 새싹도 보았다. 글을 쓰며 용기 있게 과거를 파헤치고 마주했기 때문이고 끈질기게 '왜?'라는 질문에 매달린 덕분이었다.  

나는 이제 매일 글을 쓰며 나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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