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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도동꿀벌 Oct 23. 2021

단풍잎의 나라? 아니, '팀홀튼'의 나라!

 캐나다. 어떤 이에겐 단풍잎의 나라, 누군가에겐 오로라와 같은 대자연의 나라인 곳. 남들이 무어라 정의하건 이 드넓은 땅은 나에게는 ‘팀홀튼’의 나라다. 2011년 겨울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10개월간의 캐나다 생활을 떠올리면 ‘팀홀튼’ 메이플 도넛의 달콤함이 입안에 감도는 것만 같다.


 팀홀튼은 캐나다의 국민적 사랑을 받는 도넛·커피 프랜차이즈로, 1964년 아이스하키 선수 출신인 팀 호턴이 온타리오주 해밀턴에 동명의 작은 도넛 가게를 열면서 시작됐다. 블랙커피에 설탕 둘, 크림 둘을 넣어 걸쭉한 단맛을 낸 ‘더블 더블’, 카푸치노를 얼음과 함께 갈고 시럽을 잔뜩 넣어 달달한 슬러시처럼 마시는 ‘아이스 캡’이 시그니처 메뉴다. (사실 ‘팀홀튼’의 정확한 명칭은 ‘팀 호턴스(Tim Hortons)’이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이 프랜차이즈를 ‘팀홀튼’으로 부르고 있어, 본문에서 명칭을 ‘팀홀튼’으로 통일했다.)

팀홀튼의 음료들.

 처음 팀홀튼에 가본 그날은 잊을 수가 없다. 20시간을 꼬박 날아 캐나다 땅을 밟은 다음 날이었다. 죽은 듯 열댓 시간을 꼬박 자고 일어난 나를 홈스테이 호스트인 엘렌과 레어드 부부가 그곳으로 데려갔다.


 가게에 발을 들인 그 순간, 겉으론 짐짓 평온한 얼굴을 했지만 실은‘꺄악꺄악’ 행복한 내적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캐나다에 가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출국하는 그날까지 내내 상상했다. 아이스캡을 ‘쭉’ 하고 빨아들일 때의 그 기분을 말이다.


 마침내 아이스캡을 받아들고 한 입…… 아! 눈앞에서 전구가 ‘반짝’ 켜진 듯 진한 단맛이 났다. (아이스캡을 먹어본 한국인들은 그 맛을 곧잘 ‘더위사냥 녹인 맛’에 비유하곤 한다. 더위사냥을 얼음과 갈고 시럽을 넣으면 아주 비슷한 맛이 날 것 같다.)


 “어때?” 레어드가 물었고 나는 대답했다. “Mmm, This is Canada(음, 이것이 캐나다군요)!”


 팀홀튼이 자랑하는 게 어디 아이스캡 뿐이겠는가. 메뉴의 또 다른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이 도넛이다. 나의 ‘원픽’은 메이플 도넛이었는데, 캐나다의 상징 메이플 시럽에 반죽을 푹 적셔 극강의 달달함으로 무장한 도넛이었다. 메이플 도넛을 크게 베어 물고 블랙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 “이게 천국이지”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캐나다의 맛’을 알아버렸으니 단 것을 추종하는 나로선 어쩔 도리가 없었다. 팀홀튼에 문지방이 있었다면 아마 0.01㎝ 정도는 닳게 했을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부지런히 드나들었으니. 하루에 두 번씩 간 날도 많았다. 고된 육체노동 뒤 녹초가 된 외국인 노동자에게 이만한 곳이 없었다. (나는 당시 일식당에서 서버로 일했다.)


 사실 팀홀튼의 매력은 커피나 도넛만이 아니었다. 이곳은 나와 같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마음 편히 찾을 수 있는 ‘환대의 공간’이었다. 일단 가격 문턱이 다른 커피 전문점과 비교해 현저히 낮았다. 대부분 음료가 3달러(약 3000원)대에서 시작하는 스타벅스와 달리 팀홀튼에는 1달러대 메뉴가 많았다. 외식 물가가 높은 캐나다에서 저렴하게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샌드위치, 추운 겨울 따뜻하게 몸을 녹여주는 수프까지 없는 게 없었다. 배가 고플 때 팀홀튼에만 가면 만사가 오케이였다.

앨범에서 찾아낸 10년 전 사진들. 도넛과 아이스캡이다. 

 무엇보다 같은 처지의 동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고향의 푸근함까지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나를 비롯한 워홀러(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팀홀튼은 훌륭한 일자리를 제공했다. 운이 나쁜 워홀러들은 악덕 업주를 만나 임금 체불 등 부당한 처우를 받곤 했는데, 팀홀튼은 그런 면에서 안심할 수 있는 일터였다. 비록 최저시급에 몸이 힘든 일이었지만 노동 시간과 휴게 시간 등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내가 캐나다에서 알고 지낸 워홀러 중 상당수가 시내 곳곳의 팀홀튼에서 캐셔나 베이커로 일했다.


 쉬는 날 놀러 간 쇼핑몰 내 팀홀튼에서, 혼이 나가도록 서빙을 하다 목을 축이러 간 번화가의 팀홀튼에서, 새로 사귄 친구와 수다를 떨러 간 팀홀튼에서 나와 같은 피부색을 가진 노동자들을 많이 만났다. 이들 앞에서는 조금은 부족한 영어도 부끄럽지 않았다. 서비스로 몇 알씩 챙겨준 팀빗(동그란 모양의 미니 도넛)을 입에 ‘쏘옥’ 집어넣으며 외국인 노동자로서의 생활도 외롭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2014년 팀홀튼은 미국의 햄버거 브랜드 버거킹에 인수됐다. 북미 지역 외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지역과 중국으로 매장을 확대하며 글로벌 시장 진출을 본격화한 것도 이때부터라고 한다. 레어드와 엘렌이 그리도 사랑하는, 캐나다의 자랑인 팀홀튼이 세계로 뻗어 나가게 된 것도 미국 회사가 된 뒤라니 어쩐지 서운했다. (그래도 가장 가까운 팀홀튼 매장이 캐나다에서 중국으로, 나와의 거리가 수천 킬로미터쯤 단축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2015년 온라인에서는 ‘팀홀튼이 한국에 진출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국내 한 카페가 팀홀튼의 이름을 내걸고 있는 사진이 커뮤니티에 올라오면서였다. 그러나 캐나다 현지 언론의 취재 결과 이 가게는 이름과 간판을 비슷하게 가져다 썼을 뿐, 팀홀튼 본사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도 종종 구글창에 팀홀튼을 검색해본다. 영어로 ‘Tim Hortons’를 치면 연관 검색어로 ‘Korea’가 따라붙는다. 역시, 팀홀튼을 그리워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언제쯤 다시 아이스캡과 메이플 도넛을 맛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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