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보다 운동을 선택한 이유 | 타로카드 10번 운명의 수레바퀴
바디 프로필, 식단 관리, 오운완, 헬시플레저. 건강한 몸을 둘러싼 조어들이 우르르 쏟아지고 조명받는 와중, 나도 운동을 시작했다. '나 운동한다'라고 말했을 때, 다들 '왜? 바프 찍어?'라고 되물었다. 잠깐 고민하긴 했다. 바디 프로필을 찍어야 할까? 잠깐 스치는 생각에 진저리가 쳐졌다. 나는 불특정 다수 앞에서 몸의 윤곽을 드러낼 정도로 용감한 사람은 아니라고.
운동하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늘어나고 있어서, 단순 기록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유빈 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어떤 것이 있는지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소소한 도전으로 시작한 평일 내내 운동하기 챌린지를 성료한 후, 글쓰기 소모임에 운동일지를 써갔더니 오랜 친구이자 조원이 이런 피드백을 남겨 주었다. 나도 운동하면서 틈틈이 운동이 나에게 주는 의미, 내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경험담을 고민해왔다.
"저는 건강하고 싶어요." 그간 누군가 운동하는 이유를 물어오면 나는 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면 사람마다 '건강하고 싶다'의 의미를 다르게 받아들이고, 각자 해석한 의미에 맞는 자신의 경험을 내놓았다. 어느 날 기미도 없이 무너져버린 코어 또는 체력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절반, 자신이 운동을 통해 겪은 효능감을 설명하는 이들이 남은 절반 중 또 절반, 또 남은 절반 중에서는 건강이란 무엇인가를 설파하는 이도 있었다. 누군가가 "건강하고 싶다"라고 하면 나는 어떤 얘기를 내놓을까 생각해봤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말도 선뜻 내놓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운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아주 복합적이면서도 단순했고, 그 이유들은 운동을 시작하고 모조리 바뀌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그 이유를 명확히 할 수 있게 되었다.
'모조리 바뀌어버렸다'
그리고 그게 내가 운동을 통해 전하고 싶은 바였다.
근 1년 간 헬스장을 다니면서 나는 나의 부산한 일상을 감당할 에너지를 기르는 데 집중했다. 아주 많은 사람과 놀고 싶어 하고, 아주 많은 일을 경험해보고 싶어 하는 나에게,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는 그 자체로 비극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일 년 정도만 체력을 길러보자라는 마음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몸에 좋은 음식만 골라먹고, 주 5회 운동하는 사람들을 시기하고 질투했다. 으유, 난 저런 헬창들 재미없어. 세상에 맛있는 술과 음식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것들을 포기하면서 살다니. 저건 절제가 아니라 미련함일 뿐이야.라고 넘겨짚으면서 독한 술과 자극적인 음식을 누리려고 애썼다.
그러다 육신에 한계가 왔고,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다고 아주 재미없게 흘러갈 뻔했지만 내가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지금까지와는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른 가까이 지키려는 의도도 없이 지켜왔던 생활양식이나 식습관부터 옷 스타일, 사람들이 나를 보고 떠올리는 인상들이 달라졌으면 했다. 지금 즐기는 것 말고도 다른 것도 즐겨보고 싶다는 욕심도 보태졌다. 지금까지의 내가 싫어져서도 아니고, 더 멋져지고 싶다는 열망도 아니었다. 그냥 달라지고 싶을 뿐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웹툰 '살인자ㅇ난감'에서 주인공 이 탕은 편의점 알바생으로 처음 등장한다. 그러다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치고는 헬창으로 거듭나,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알은척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변한다. 나는 이 웹툰의 영향으로 꽤나 오랜 시간 몸을 키우고, 태닝하는 것을 도망자의 은신법이라고 음험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물론 나는 살인을 저지르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겠지만 이런 외양으로 변한 나를 종종 상상하곤 했다. 손유빈이라는 이름 말고, 서진영(그냥 갑자기 생각난 이름)으로 살아가는 상상 말이다.
본모습 말고 원하는 콘셉트로 똘똘 뭉쳐 만든 부캐를 사랑하거나 잘 꾸리던 SNS 계정을 돌연 갈아치우는 사람들의 심정도 비슷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마음 한 편엔, 영화 '화차'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다른 사람의 신분으로 둔갑해 사는 강선영(김민희)이 있지 않을까?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은 마음에서 기인한 행동을 기어코 해버리는 것 말이다. 이 탕・강선영과 우리가 다른 건 뭘까? 범법을 저지를 수 있는 깜냥의 차이도 있겠지만, 현재 영위하고 있는 삶에 대한 애착의 정도가 가장 다를 것이다. 지금의 삶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지금의 삶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우리는 끊임없이 재고해보고 변화를 궁리한다. 안정을 원한답시고 배우자를 찾고, 집을 구하고, 고연봉 정규직을 찾아 헤매지만 마음 한편에는 자유로운 인간관계와 대책 없는 여행과, 방랑을 꿈꾸는 것처럼.
오늘 소개할 카드는 변화를 상징하는 '운명의 수레바퀴' 카드다. 타로카드 78장을 대표하는 카드로, 드라마에서 곧 주인공이 어마어마한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는 복선으로 자주 등장한다. 이름부터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운명'과 '수레바퀴' 모두 거대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단어인데, 무려 '운명의 수레바퀴'라니.
운명(運命) [명사] :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
우리는 내 의도나 행동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내 손을 떠나 그렇게 되어진 일들을 자주 운명의 영역으로 범주화한다. 운명론, 결정론 어쩌고 떠들며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어찌 됐든 운명은 인간 생의 본질에 더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건 분명하다. 사주나 타로가 오랜 시간 큰 인기를 끄는 이유도 이 거대한 개념의 운명이 우리의 존재와 삶의 방향을 압도하는 순간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구구절절 운명 얘기를 한 건 이제 운명 얘기를 그만하기 위해서다. 타로 점을 볼 때 이 카드를 뽑는 이들 대부분 이 '운명'의 의미에 압도당한다. 뽑은 카드를 내가 읽어주기도 전에 "혹시 이거 운명의 수레바퀴 아니야?", "이거 내 운명이야?", "나 이렇게 되는 거야?"라고 호들갑을 떠는 이들도 있다. 사실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운명은 별로 중요한 개념이 아니다. 이 카드에서 중요한 건 운명보다도 '수레바퀴'의 의미다.
수레바퀴는 시작과 끝 지점을 알 수가 없고, 180도든 360도든 금방 돌아갈 수 있고, 때와 장소를 구별하지 않고 굴러간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레바퀴는 인생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물로 등장한다. 타로카드에서는 로마 신화를 따라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가 인간의 운명이 붙은 수레바퀴를 지니고 있다고 하여 '운명의 수레바퀴'라고 불렀다. 포르투나의 마음대로 꼭대기(행운의 절정 상태)의 인간을 바닥(불운의 끝)으로 끌어내릴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수레바퀴는 멈춰져 있지 않고 구르기 때문에 언제고 그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다. 휘리릭 수레바퀴를 돌리면 인간의 운명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길흉화복을 한 순간에 지난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이 카드를 뽑은 사람에게 '잘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데 그건 모두 신의 뜻이니 얌전히 기다려!'라고 해석해주지 않는다.-실제로 이렇게 해석하는 타로 리더를 몇 명 보기는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조금 무책임한 조언이라고 생각한다-이 카드가 단순히 인간이 운명의 수레바퀴에 대롱대롱 매달려 신의 처분만을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를 지녔다면 나는 카드의 의미를 글로 설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타로카드를 공부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 의지로 되지 않는 것들을 굳이 타로카드로까지 확인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타로카드를 다시 살펴보면, 수레바퀴 외에 많은 사물들이 묘사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책을 읽고 있는 천사, 독수리, 황소, 사자다. 각각 물병자리, 전갈자리, 황소자리, 사자자리를 상징하는데, 하나 같이 변화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안정주의자 별자리라는 점이다. 변화 앞에서 이들은 배움을 택한다. 불완전한 이들은 변화를 공부한다. 어떻게 잘 변화해야 할지 궁리하는 것이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가만히 있다 뭉개질 우리의 운명을 시사하는 카드가 아니다.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스스로 고민해봐야 하는 타이밍을 짚어주는 카드다. 우리는 수레바퀴에 내 운명이 매달려 있다!라고 생각하기보다 수레바퀴는 언제 돌아갈지 모른다! 에 집중해야 한다. 우린 언제나 한 자리에만 머물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피부는 중력의 영향을 받아 축축 처지고, 애플은 iOS 새로운 시리즈를 개발하고, 남극의 빙하는 끊임없이 녹아내려 바다 수위를 높이고, 죽음을 생각지 않던 사람들이 뜻밖의 죽음을 선고받는다. 정녕 신이 이 수레바퀴를 돌리는 것인가 싶을 만큼 거대하고 암담하기도 한, 불가항력의 변화가 우리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셈이다. 변화는 이미 정해져 있다.
그럼 '어떻게' 변할 건데?
나의 대답은 '운동'에 있었다. 세상의 변화에 당하는 건 아무래도 후지니까, 내가 다른 인생을 살아보겠다는 마음으로 아주 못할 것이라고 단정 지었던 것을 하나씩 해내는 방식을 택했다. 나는 아주 잘 포기하는 사람이다. 내 의도나 행동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서도 그러기 힘든 일들을 자주 운명의 영역으로 넘겨보냈다. 인간은 절대 변할 수 없다지만, 변화하는 세상에 내 몸을 실어야 한다면 이렇게 마구잡이로 이끌려가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나를 좀 더 다른 인생 속으로 이끌고 있는 요즘이다.
불교에서도 등장하는 수레바퀴 얘기를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인도에는 이상적인 통치자를 뜻하는 '전륜성왕'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수레바퀴처럼 생긴 신통한 아이템(윤보)으로 세상을 교화하는 왕이라는 뜻이다. 전륜성왕의 윤보는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라 온갖 적을 다 제압할 수 있는데, 부처님의 가르침도 이 윤보처럼 세상 번뇌를 다 물리친다 하여 '법륜'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모양도 수레바퀴와 닮았다. 때와 장소를 구별하지 않고 구르는 수레바퀴처럼 부처님의 가르침도 어느 한 사람,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단다. 신이 인간을 대롱대롱 매달고 굴리는 수레바퀴... 신의 뜻으로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을 다 뭉개고 평정해버리는 수레바퀴... 음...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그냥 계속 무신론자나 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