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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열 Jan 17. 2018

흔한 맥주라고 다 싸구려는 아니다

1월의 맥주 필스너 우르켈: 세상을 바꾼 단 하나의 맥주

매 달 새로운 맥주를 소개드리기 시작한 지난 10월부터, 그 달에 어울리는 맥주를 선정하는 기준은 항상 날씨였습니다. 10월엔 더운 여름을 버텨낸 맥주, 11월엔 쌀쌀한 가을에 어울리는 맥주, 12월엔 추운 겨울 몸을 따뜻하게 덥혀주는 맥주였죠. 하지만 아직 겨울은 두 달이나 남았다는 것! 겨울이라고 무작정 도수 높은 맥주만 소개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특히 도수 높은 맥주는 맛이 진하고 향이 강해서 쉽게 질리거든요. (쉽게 취한다는 말은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요?)


대신 묵은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여는 이번 달에는, 맥주의 세계를 '재부팅' 시켜버린, 맥주 역사의 전환점이 된 역사적인 맥주를 소개드리려고 합니다.


편의점에 가면 어김없이 냉장고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초록색 캔, '4캔 구매 시 만원!' 이라는 문구가 항상 따라다니는, 너무 익숙하고 평범한 그 맥주는 사실 그 주변에 진열된 맥주의 80%가 이 맥주를 따라한 것일 정도로, 의심의 여지 없이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맥주입니다. 바로 필스너 우르켈입니다.


사진 제공 : @Pilsner Urquell Korea Official Facebook


필스너의 탄생


영국, 에일, 그리고 IPA의 역사 편에서 영국의 버턴 어폰 트렌트Burton upon a Trent가 그랬던 것처럼, 체코(당시 보헤미아)의 플젠Plzen 역시 먼 옛날부터 도란도란 맥주를 만들어 먹고 사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이 마을의 양조 역사는 12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때 보헤미아의 왕이 4개의 강이 만나는 지점에 플젠이라는 마을을 만들면서, 260명의 시민들에게 맥주를 만들고 팔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한 것입니다.


플젠을 비롯한 보헤미아 지방은 예로부터 맥주를 공들여 만들기로 소문난 곳이었습니다. 맥주에 보리 외의 재료를 사용하는 것을 막는 맥주순수령이 나온 바이에른 지방과 가까울 뿐만 아니라,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발명된지 60년 만에 맥주에 관한 책을 출판할 정도로 이 지방 사람들은 맥주에 대한 공부와 연구에 열심이었습니다. 최초로 맥주 양조에 온도계를 사용한 것도 체코 사람이며, 맥아즙의 밀도를 통해 보리의 함량, 혹은 당도를 계산하는 체계를 만든 발링Balling은 프라하 공대의 교수였습니다. (Ensminger)


이토록 질 좋은 맥주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플젠의 양조가들은 1838년 본인들이 만든 맥주를 도저히 참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이들은 뼈를 깎는 심정으로 자신들이 만든 맥주 36배럴을 시청 앞 광장에 쏟아버리고, 더 나은 맥주를 만들기 위해 힘을 합쳐 새로운 양조장을 만들자고 합의합니다.


플젠의 독립적인 양조가들은 힘을 모아 강가에 '시민 양조장'이라는 소박한 이름의 양조장을 새로 지었습니다. 이 곳은 특히 지반이 사암 지대로, 비교적 부드러운 암석이어서 땅을 파기에 용이했습니다. 양조장을 지을 때부터 서늘한 지하 동굴에 오랫동안 숙성시키는 라거 계열의 맥주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플젠 시민 양조장 입구


가장 중요한 것은, 옆 동네 뮌헨의 양조가 요제프 그롤Josef Groll을 모셔왔다는 점입니다. 세상 만사가 대개 그렇듯이, 수백 년간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꽤나 성공을 거두었지만, 우물 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견문을 넓힐 때 비로소 한계를 돌파하고 새로운 경지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1842년 11월, 드디어 시민 양조장에서 만든 맥주가 세상에 공개되었고, 곧 세계 맥주의 판도가 뒤집혔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플젠Plzen에서 만든 맥주, 즉 필스너Pilsner에 매료되어 기존의 맥주를 멀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수많은 양조장들은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이 찾는 플젠 스타일의 맥주를 흉내내 고객들에게 판매할 수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 유럽 방방곡곡에서 만들던 지역색 뚜렷한 마이너한 맥주들은 더 이상 만드는 사람이 없어 멸종 위기에 처하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위기를 기회로 만든 똑똑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말입니다. (관련글 : <뮌헨 맥주가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은 방법>)



필스너의 성공비결


대체 얼마나 맛있는 맥주를 만들었기에 온 세상 사람들의 맥주 입맛이 한 순간에 변했던 걸까요? 사실, 여러분도 마셔 봐서 아시겠지만, 필스너가 대단히 특별하게 맛있는 맥주는 아니었습니다. 필스너의 성공은 한 가지 엄청난 기발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역시 세상 만사가 대개 그렇듯이, 맥주를 이루는 요소 하나 하나가 우연히도 서로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린 데다가, 시기 또한 기가 막히게 잘 들어맞은 결과입니다.


맥주를 이루는 요소 하나 하나가 무엇인지는 맥주 캔에 친절하게 적혀있습니다. 바로 맥아, 홉, 효모, 물, 그리고 맥주를 담는 잔입니다.


필스너의 대성공은
맥아, 홉, 효모, 물, 그리고 맥주잔이
딱 좋은 시기에 만난 결과입니다


맥아

가장 먼저, 뭐니뭐니해도 맥주의 주재료라고 할 수 있는 보리맥아입니다. 필스너가 만들어지기 1년 전인 1841년은 뮌헨의 제들마이어Sedlmayr가 영국으로부터 맥아를 타지 않게 볶는 기술을 막 들여와 획기적으로 밝게 만든 맥주를 옥토버페스트에 내놓은 해였습니다. 그 전까지 유럽의 맥주는 전부 어두웠습니다. 우리가 노란색 콜라와 파란색 바나나우유를 상상하지 못하듯이, 당시 사람들에게 맥주는 당연히 검은 음료였습니다.


관련글 :


바로 이 기가 막힌 타이밍에, 그롤은 이 기술을 플젠에 가져왔습니다. 제들마이어가 '뮌헨 맥아'를 이용해 옥토버페스트맥주 메르첸을 만들었다면, 그롤은 이보다 더 밝은 '필스너 맥아', 혹은 'pale malt'를 만들어 필스너를 만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필스너 맥아의 또 다른 특징은 단백질 함량이 적다는 것입니다. 맥주에 단백질이 있다는 생각은 아마 별로 안 해보셨을 겁니다. 물론 몸에 좋을 정도는 못 되지만, 보리에도 생각보다 많은 단백질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단백질 분자는, 기껏해야 산소 하나에 수소 두 개짜리 물이나, 탄소 여섯 개가 들어간 포도당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원자 덩어리입니다. 고분자라고 하죠. 이렇게 거대한 분자들로 이루어진 단백질은, 알갱이가 크다 보니 빛이 그냥 통과하지를 못합니다. 단백질을 적게 함유한 필스너는 그만큼 투명합니다. 언제나 어두운 맥주만 먹던 사람들이 밝은데 더해 투명하기까지 한, 지금 우리가 익숙한 황금빛 맥주를 처음 보았을 때, 얼마나 큰 소비욕구를 느꼈을까요?


우리가 아는 그 황금빛 (사진 제공 : @Pilsner Urquell Korea Official Facebook)



맥아의 단 맛과 균형을 이루는 쌉쌀함을 더해주고 보존성을 높여주는 홉, 이제는 많이 익숙하시리라 믿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원하는 맛을 내는 품종의 홉을 찾기 위해 굳이 멀리까지 가지도 않았고, 여러 품종의 홉을 교배해 새로운 홉을 만들지는 더더욱 않았습니다. 플젠 사람들 또한 아무렇지도 않게 근처 농장에서 자라는 자츠Saaz 품종의 홉을 사용했습니다. 이 홉은 쓴 맛 자체는 강하지 않지만 허브 또는 향신료와 같은 향이 돋보이는 품종으로, '쓴 맛' 보다는 맥주 하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쌉쌀한 맛'을 내는 주인공입니다.


효모

1800년대 초반은 아직 파스퇴르 선생님이 활동하기 전이라서, 효모의 정확한 작용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 효모를 배양해서 일부러 넣는다는 것 역시 상상할 수 없었던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롤이 뮌헨으로부터 라거 효모를 가져왔으며, 플젠의 사암 지대에 동굴을 파 라거 맥주에 맞는 저온 숙성 기간을 가졌다는 점입니다.


숙성 과정은 불필요한 부산물들을 제거해 맥주의 맛을 깨끗하게 만들며, 라거 효모는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발효하기 때문에 탄산이 많은 맥주를 만듭니다. (관련글 : <모두가 겉으로만 아는 라거와 에일의 차이>) 필스너는 바로 이 라거 효모로 발효되어 보리와 홉의 맛을 군더더기 없이 투명하게 전해주며, 톡톡 튀는 탄산이 쌉쌀한 홉의 맛과 더해져 미각을 상쾌하게 자극합니다.


맥주를 맥주로 만드는 것은 보리, 효모, 그리고 홉이며, 물은 이 모든 재료를 녹이는 매개체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맥주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재료가 바로 물입니다. 영국 버턴 지방 에일의 성공 비결이 바로 그 지역의 물이었던 것처럼 (관련글 : <영국, 에일, 그리고 IPA의 역사>) 필스너의 성공 역시 물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플젠의 물은 버턴의 물과 정반대입니다. 버턴의 물은 황산염을 많이 포함해 진한 맛의 버턴 에일에 복잡한 쓴 맛을 더해줍니다. 플젠 지역의 물은 아무것도 없는게 큰 특징입니다. 경수와 연수, 센물과 단물이라고도 합니다. 버턴의 물에 무려 1200ppm의 미네랄이 녹아있는 반면, 플젠의 물은 50ppm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 물은 탄산과 홉에서 나오는 톡 쏘는 맛과 날카로운 쌉쌀함을 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지저분한 끝맛을 남기지 않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불순물이 적어 깔끔한 맛을 내며, 입 안에 오래 남지 않습니다. 그래서 에일을 몇 잔 먹고 나면 그 강한 향과 텁텁함이 입 안에 남을 수 있는데, 이 때 필스너 한 잔으로 입가심을 하면 상쾌함과 함께 귀가하실 수 있습니다. 발효 과정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향을 즐기기 좋은 에일 맥주에는 버턴의 센물이, 시원하고 깔끔하며 단순한 맛을 가진 라거 맥주에는 플젠의 단물이 어울리는 것입니다.


맥주잔

아무리 밝고 먹음직스런 맥주를 만들어 봐야, 도자기 잔에 담겨 희멀건 거품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황금빛 필스너의 유행은 유리잔의 사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19세기 필스너가 새로 나왔을 즈음, 유럽에서는 유리공예 기술이 발달해 유리잔이 급격히 보편화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필스너는 때마침 자신을 담아줄 수 있는 투명한 유리 잔을 만나, 밝고 맑을 뿐만 아니라 거품까지 톡톡 올라오는 혁명적인 자태를 뽐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석 참조)



맥아, 홉, 효모, 물, 그리고 잔까지, 맥주 한 잔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영혼까지 끌어모아 새로운 필스너 맥주의 맑고 투명한 이미지, 깔끔하고 상쾌한 맛, 기분 좋게 톡 쏘는 기분을 극대화시키니, 우주가 나서서 도와주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필스너 우르켈과 짝퉁 필스너


이렇게 필스너가 대유행하자, 수많은 맥주 회사들은 저마다 필스너 스타일의 맥주를 따라 만듭니다. 이 과정에서 필스너에도 많은 변형이 일어나게 됩니다. 만드는 곳마다 맥아의 원산지도, 볶는 방법도, 홉의 품종이나 효모의 성격도 저마다 다르다 보니, 원조 체코 필스너에서부터 독일식 필스너, 유럽식 라거, 미국식 라거 등등 필스너가 변형된 과정을 따라 수많은 분류들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맥주들이 필스너를 출발점으로 해 조금씩 변형된 맥주들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지구상에서 소비되는 맥주의 대부분이 바로 여기에 해당됩니다. 우리나라의 카스, 하이트는 물론이고, 일본의 아사히 기린, 삿포로, 산토리, 중국의 칭타오, 하얼빈, 필리핀의 산미구엘, 미국의 버드와이저, 밀러, 이탈리아의 페로니, 독일의 벡스, 크롬바커, 네덜란드의 하이네켄, 벨기에의 스텔라 아르투아, 덴마크의 칼스버그... 어느 나라건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는 거의 예외 없이 필스너의 변형입니다.


필스너에서부터 변형되었다고 해서 모두 같은 맛을 내는 것은 아닙니다. 독일식 필스너, 유럽식 페일 라거, 미국식 페일 라거,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맥주들은 저마다 약간의 특징이 있습니다. 하지만 국산 맥주를 옹호하고자 하는 많은 기사들에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사히와 카스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는 것처럼, 필스너에서 유래된 이 맥주들이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비슷한 맛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세계인의 맥주 입맛이 어느 정도 획일화되어 있다는 것은 조금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진 제공 : @Pilsner Urquell Korea Official Facebook


한편, 필스너가 '플젠에서 만들었던 그런 종류의 맥주'라는 하나의 스타일을 뜻하는 일반 명사가 되자, 원조 필스너를 만들었던 체코의 시민 양조장은 본인들의 맥주에 '원조'를 뜻하는 우르켈Urquell을 붙여 '필스너 우르켈'이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필스너의 범람 속에서 필스너 우르켈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필스너 우르켈은 1842년 첫 필스너를 양조했을 때의 방식을 최대한 고수하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빛 때문에 맥주가 상할 수 있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갈색 병 대신 한결같은 초록색 병을 사용합니다.



한국에서 만나는 필스너 우르켈


한국에서 필스너 우르켈을 만나는 방법은 정말 쉽습니다. 가까운 편의점에 가셔서 한 캔 집으시면 됩니다. 물론 네 캔을 집으시면 더 쌉니다.


사실 편의점에서 필스너 우르켈을 드셔보신 많은 분들이 다른 맥주에 비해 별다른 특별함을 못 느껴보셨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애초에 그 주변에 진열된 그 많은 맥주들이 필스너 우르켈을 모델삼아 만든 맥주다 보니, 별 차이가 없는게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필스너 우르켈의 특별함을 느껴보고 싶으신 분들에게는 필스너 우르켈 생맥주를 한 번 드셔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생소한 수제 맥주에 비해 브랜드가 많이 알려져 있다 보니, 요즘에는 필스너 우르켈 생맥주를 취급하는 가게를 흔히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필스너 우르켈 전문가가 직접 추천하는 10개의 매장이 페이스북 페이지 <필스너 우르켈>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PilsnerUrquellKorea/posts/1035366623269851)


필스너 우르켈 생맥주는 확실히 캔에 담긴 필스너 우르켈과는 다른 맛입니다. 보리의 고소한 맛이 적절하게 나는데, 뮌헨 라거처럼 달큰하게 나는 것도, 영국식 페일 에일처럼 깊고 묵직하게 나는 것도 아니면서 너무나도 분명하고 투명하게 느껴집니다. 원래 필스너 우르켈은 다른 필스너에 비해 쓴 맛이 강한 편입니다. 필스너 우르켈을 모방한 대부분의 맥주들이 쓴 맛을 줄였다고 말하는게 더 정확하겠지요. 캔에 담긴 필스너 우르켈이 너무 쓰다고 느끼는 분들이 더러 계신데, 필스너 우르켈 생맥주가 보리의 이름으로 이 불균형을 처단해 줍니다. 필스너 우르켈의 참맛을 느껴보고 싶으신 분들은 물론, 크래프트 맥주에 빠져 '맥주는 에일이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도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이처럼 잘 만든 필스너는 무엇보다도 고소한 보리의 맛과 쌉쌀한 홉의 맛이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캔으로 수입하는 맥주에서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닌가 봅니다. 필스너 스타일의 맥주가 편의점에만 수십 종류가 있지만, 그 어떤 맥주도 필스너 우르켈 생맥주의 그 보리 맛을 내지 못합니다. 다만, 크레머리KrämerLee라는 국내 크래프트 양조장에서 만드는 필스너에서 그 맛을 느껴본 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이 곳의 브루마스터께서는 '홉은 MSG다'라고 하시더군요.



필스너 우르켈 브루어리 투어


지금도 프라하에서 기차로 1시간 반이 걸리는 체코의 소도시 플젠에는 필스너 우르켈의 양조장이 있습니다. 자신들이 원조라는 자부심이 아주 강한 양조장답게, 이 곳을 방문하면 필스너 우르켈의 역사와 양조 과정, 설비 등을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는 브루어리 투어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투어의 진짜 중요한 부분은 마지막에 있습니다.


100분 가량의 투어 막바지에, 실제로 필스너 우르켈의 맥주가 숙성되고 있는 지하 동굴에 들어갑니다. 엄청난 크기의 서늘한 동굴에서 무시무시한 양의 맥주가 숙성되고 있는 곳입니다. 이 중 한 통에 구멍을 내고, 그 안에 있는 맥주를 한 컵 따라 줍니다. 바깥에서 유통되기 위해 효모를 거르거나 살균 작업을 거치지 않은, 최고로 신선한 'Unfiltered, unpasteurized' 필스너 우르켈 한 잔인데요, 동굴 안에서 먹는 분위기 탓인지는 몰라도, 가장 완벽한 맥주 그 두 글자를 맛볼 수 있습니다. (관련 사이트 : http://www.prazdrojvisit.cz/en/tours/)


위 : 필스너 우르켈 지하 동굴에서 따라주는 가장 신선한 맥주 한 잔

아래 : 플젠에서만 먹을 수 있는 거르지 않은(unfiltered) 필스너 우르켈 생맥주(왼쪽)와 평범한 필스너 우르켈(오른쪽)


유리잔을 필스너의 성공비결로 꼽는 문헌은 한국어로 된 자료밖에 찾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외국에서도 유리잔을 필스너의 성공비결로 생각하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본문 중에 언급했듯이 유리잔 없이는 맥주의 빛깔이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어서 저는 유리잔을 성공비결에 포함했습니다. 마지막 참고문헌에 따르면, 대략 19세기에 유리잔이 급격히 보편화된 것은 사실입니다.



한 달에 한 종류씩, '이 달의 모범맥주'와 함께 진하고 시원한 맥주 이야기를 배달합니다.

이 시리즈는 대한민국 공군 교양카페 <휴머니스트>에 <이 달의 모범맥주>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을 바탕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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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 수제맥주? 맥주는 원래 수제였다.
10월, 옥토버페스트맥주 메르첸 : 옥토버페스트가 열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
10월, 뮌헨 둥켈과 헬레스 : 뮌헨 맥주가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은 방법

모두가 겉으로만 아는 라거와 에일의 차이

영국, 에일, 그리고 IPA의 역사

이 독한 맥주도 누군가에게는 생명이었다


커버 사진을 포함한 4장의 사진을 제공해 주신 필스너우르켈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감사를 드립니다.
참고문헌

Ensminger, P. The history and brewing methods of pilsner urquell (https://www.morebeer.com/articles) 에서는 인용한 내용이 많아 일일이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Saaz_hops
http://www.historyofgla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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