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바니타스 06화

쓰다

에스프레소와 나를 동시에 사랑하지 않는 이는 없었다

by 배고파


나는 첫 커피를 열다섯에 마셨다.


나의 첫사랑은 마치 처음 뽑은 에스프레소와 같이 거품이 들끓고, 묵직하고, 강하게, 요란하고 충동적으로 뿜어져 내듯 추출되어 덩그러니 놓아졌다 내 앞에. 도대체 이렇게 쓴 사랑은 왜 알면서 들이키는 거지? 내 마음속 비워진 잔 밑바닥에 진하게 얼룩져 한동안 남아있었다.


나의 정서는 알루미늄처럼 연약하고 약한 불씨에도 금방 닳아 오르는, 그 뭐랄까 “혹 모카 포트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처럼”... 가장 근원적인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포트처럼, 나도 사랑의 근원을 아날로그적으로 찾아보려 했었다는 말이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딱 한잔만 했을 뿐인데, 검은 찌꺼기만 남기고, 그는 반쯤 태우다만 온기로 사라졌다.


두 번째 남자는 룽고처럼 속 깊은 사람이었다.


나의 마음에 넘치고 넘쳐 우물에 들이붓는 물 같이 일렁이되 그 진동이 속으로만 깊어지는- 그런 미지근한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마음에 달이며 기다려주었지만, 그에겐 혀끝의 탄맛이 없어이 내 질려버렸다.



나는 첫 에스프레소를 빼다 닮은 청량한 아메리카노를 만났다.

어린 그는 사랑은 얼음처럼, 곧 녹으면 사라질 것을 대비하여 단숨에 들이켜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였다. 이내 가슴이 찌릿하고, 어지럽고, 이가 시릴 것이라더라. 써도 아파서 참는 것과 탐미적으로 삼키는 것은 다르지 않느냐며. 자신을 다 마신 냉커피처럼 이내 자신을 뿌옇게 희석시켜버렸다.

미지근한 오물이 되었다.



나는 산화되어간다. 신물 나는 감정, 신물 나는 맛, 쓴맛으로도 충분한 그 맛, 빨간 맛, 여름 그 맛

독기와 탄닌만 쌓이고, 가끔은 앙칼진 흰 얼굴을 하여 콘파나가 되어본다.

어떤 이는 나를 탄 맛이 난다고 뱉었다.

어떤 이는 나를 볼드하고 짜릿하다 했다.


나는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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