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일상 06화

브래드피트

그리고 나의 할아버지를 추억하며,

by 밤호랑이

엊그제 영화 F1: 더무비를 보고 왔다. 내가 좋아하는 자동차를 다루고 있기도 하고, 좋아하는 배우 브래드피트, 하비에르 베르뎀이 나온다는 소식에 설레었다. 무엇보다 영화가 시작되며 웅장한 음악이 흘러나왔는데... 역시 한스짐머의 음악인 것을 알게 되자 마음속에 시원함이 몰려왔다.


브래드피트. 대단한 배우이다. 그가 나온 영화를 볼 때마다, 절제되지 않은 거친 남성성과 더불어 소년미를 동시에 간직하고 있는 그의 눈빛과 표정을 볼 때면 같은 남자로서 감탄하게 된다. 그의 팬이 된 것은 영화뿐만 아니라, 시상식과 인터뷰를 접한 이후였다. 그리고 그와 아주 비슷한 처지의 역할을 주연으로 맡은 영화들에서 그의 인생관까지 엿볼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재력과 커리어와는 상관없이 끊임없이 고민하고 도전하는 배우인데, 참고로 그는 1963년생이다.

https://youtu.be/P1V2QD73t_Q?si=RFQu_KozG_1RQmxY





우리 할아버지 이야기를 잠깐 하고 싶다. 6 25 전쟁이 끝난 직후 대한민국 1기 공무원으로 보건사회부-보건복지부 전신에서 일평생 공직에 헌신하셨던 할아버지는 남자 중의 남자였다. 미술에 뛰어난 재능이 있으셨지만, 가정환경과 전쟁으로 인해 학업을 계속할 수 없으셨고, 결혼 후 가정을 건사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셨다고 했다. 피난길부터 공무원이 되는 과정까지 역경이 있었지만, 공무원이 되신 후에도 생계를 겨우 이어나갈 수 있을만한 급료를 받으셨다고 했다. 전쟁으로 쑥대밭이 된 나라 그 중심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거였다.

할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내게 "고단하지..?" "고단하지는 않니?" 하고 자주 물어보셨는데, 어쩌면 당신을 향한 응원이자 독백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불혹이 된 지금에서야 마음 아리도록 시리다.


어쩌면 나의 여린 마음과 기질은 두 분의 성정을 물려받은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넘치는 사랑과 사람에 대한 믿음, 그리고 어려운 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신념은 나의 대학 전공부터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 할머니는 중년을 맞이하시면서 심적으로 힘들어하셨다고 했다. 검사를 하면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신체적 고통들로 힘들어하셨고, 깊은 우울감으로 몸져누우셨다. 그렇게 40여 년간 투병생활을 하시는 할머니 옆에는 늘 할아버지가 손과 발이, 그리고 말벗이 되어주셨다.마도 자율신경실조증 혹은 자가면역질환, 그런 질병들이 할머니를 힘들게 하신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지금이야 낯설지 않은 병명이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생경한 용어였을 것이다. 신경과와 정신과, 신경 정신과의 아주 오랜 환자셨던 할머니는 그리고 할아버지는 수북한 약 봉투와 힘든 삶의 여정 가운데서도 자식들을 향한, 특히 손자인 나와 내 동생을 향한 무한한 사랑을 보여주셨다. 말 그대로 무한대였다. 앞뒤 볼 것 없이 당신들의 모든 것을 내어주면서까지 손자들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뭐든지 사주셨고, 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같이 가주셨고, 내가 걸음마를 하던 순간부터 당신들이 세상을 떠나던 날까지 우리의 가장 친한 친구로, 나중에는 삶의 멘토이자 조용한 응원자로 우리를 돌봐주셨다.




할머니가 떠나신 후에 할아버지는 급격하게 약해지셨다. 할머니의 2주기가 되었을 때, 할아버지는 당신의 삶을 조용히 정리하기 시작하셨는데, 세상에 대한 회한과 분노,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자주 피력하셨다. 그런 할아버지를, 우리 아버지는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하늘나라 가시기 직전에서야 그동안 뇌혈관이 할아버지의 머릿속을 누르고 있어서 이상행동을 보이셨을 거라는 의사의 소견을 듣고서 아버지는 망연자실하셨다.)

아마도 할아버지의 정신은 먼저 할머니를 맞으러 가신 듯했다. 하지만 초점 없는 눈동자 속에도 삶에 대한 간결한 태도와 품위를 지키셨다. 자신 때문에 가족과 병원 관계자들이 고생하고 있는 것에 대해 항상 미안해하셨고, 몸을 청결하게 정돈하고 싶다는 강박적인 행동은 아버지의 아픔이었다. 삶에 대한 소회, 당신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연락해야 할 곳과 장례 절차, 장지의 담당자까지 정리해 두신 비망록을 자세히 작성해 두셨는데, 할아버지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정말 그 손글씨를 보며 장례 절차를 밟았다.

하루는 휠체어를 밀고 있는 내게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기사양반 여기가 어디요? 집으로 가주시오"

-할아버지 여긴 병원이에요. 집으로 모실게요~


"얼마를 내야 합니까, 미안하지만 내가 지금 차비가 없어서 택시 요금을 내지 못할 것 같소.."

-아니에요 오늘은 제가 공짜로 모셔드립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나도 그런 남자가 되고 싶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내면에서 은은한 향기가 나오는, 소나무나 전나무처럼 단정하고 깊은 향이 나오는 남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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