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범대에 갓 입학한 1학년 1학기, ‘교육의 이해’라는 수업을 들었다. 그때 처음 교육의 정의를 마주했다. 먼저 여러 학자가 정의한 교육의 의미를 살폈고 교수님께서는 교육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에 대해 써보라고 하셨다. 뭣도 모르는 신입생이었던 나는 기존 정의에서 좋아 보이는 단어를 단순 조합했다. 당시 내가 내렸던 정의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한 가지 키워드만은 분명히 남았다. ‘행동의 변화’, 수능공부로만 접했던 교육의 목적이 사실은 행동의 변화에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교육에 대한 편견이 깨지는 계기였다.
12년간 교육담당자로 일하며 늘 행동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교육을 준비했다. 그 수업 시간의 기억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실용적이고 분명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 탓도 있겠다. 그러나 실제 교육담당자로서 마주한 현실은 이론과 달랐고 녹록지 않았다. 교육이 그것이 정답일 때와 아닐 때를 가리지 않고 시시때때로 동원됐기 때문이다. 회사는 무슨 문제가 생기든지 교육을 우선순위로 걸고넘어졌고 교육은 거의 모든 것의 해결방안으로 언급됐다. 이 과정에서 배움은 남발됐고 효력을 잃었다. 교육은 그렇게 평가절하되어 갔다.
12년이 지난 지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교육의 힘을 믿는다. 교육을 통해 얻은 변화들 때문이다. 교육은 내가 몰랐던 세계로 손쉽게 데려가 줬다. 호기심 하나만 있다면 궁금한 세계가 뭔지 맛보게 해 줬다. 혼자였다면 헤매느라 허공에 흘려버릴 시간을 아껴주었고 짧은 시간에 능숙하게 만들어 줬다. 배움이 없었다면 혼자 끙끙대다 나가떨어져 중간에 포기하는 일도 많았을 것이다. 엄두가 안 나 시도조차 못해 미련 남는 일도 없게 해 줬다. 글쓰기가 그랬고, 힙합이 그랬고, 이모티콘도 그랬다. 여기에 적을 수 없는 많은 것들이 그랬다. 교육은 나를 행동하게 했고 배움이 없었으면 지금의 성취도 없다. 퇴사도 못했을 거다.
회사에서 교육이 무용했던 이유는 교육을 대하는 태도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교육을 해결책으로 의존하려는 관점이다. 팀장 리더십 교육, 세대 공감 특강, 신입사원 예절교육, 전사 한마음 핵심가치 교육, 조직문화 이벤트 등이 생각난다. 특히 트렌드 특강을 진행했을 때 만족도 설문에 단골로 적힌 내용이 떠오른다. 늘 우리 업에 적용한 해결책을 달라며 낮은 만족도를 주는 경우가 있었다. 나는 의아했다. 푸드, AI, 마케팅 등 각 분야의 전문가를 모셔 들은 각 전문 분야의 트렌드를 우리 업에 적용해 생각하고 활용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교육은 컨설팅이 아니다.
교육에서는 활용하려는 주도성이 중요하다. 그래서 배운 것을 ‘나’와 밀접하게 연결하는 작업이 사전에도, 사후에도 필수적이다. 경험상 행동의 변화는 ‘내가 모른다’, ‘내 현재 상태가 이렇다‘는 인지나 교육의 필요성이 본인에게 명확했을 때 가장 강력했다. 필요를 느끼면 느낄수록 흡수하게 되고 반대면 튕겨져 나와 시간낭비가 된다. 이는 이론상으로도 그렇다. 변화 이론으로 가장 유명한 레윈의 변화 모델 (Lewin's Change Model)도 현재 상태 및 변화의 필요성을 인지하는 것이 첫 단계다. 이후 행동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교육은 이를 도울뿐이다.
[참고] 레윈의 변화 모델 (Lewin's Change Model): 변화는 해빙-변화-재동결의 단계로 이루어짐
- 해빙 (Unfreeze): 현재 상태를 해체하고 변화에 필요한 긴박감을 만드는 단계
- 변화 (Change): 실제로 새로운 방식이나 구조로 전환되는 과정
- 재동결 (Refreeze): 새로운 방식이 조직에 자리 잡고 안정화되도록 하는 단계
12년간 많은 교육을 들으며 좋은 강의도 있었고 별로인 강의도 있었다. 교육이 늘 좋을 수는 없었고 좋다는 것도 주관적이라 각자 달랐다. 분명한 것은 별로인 강의에서라도 뭐라도 하나 배우려고 찾으면 도움이 됐다는 점이다. 객관식 정답을 족집게처럼 알려주는 강의만이 좋은 강의가 아니었으며 시험이 아닌 이상 그것 자체도 불가능하다. 나쁜 것에서도 좋은 것을 찾아 적용하는 것만이 내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이 생각 또한 정답이 아닐지라도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이 편이 훨씬 내게 도움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고자 하는 태도다.
내가 교육의 힘을 믿는 이유는 배움이 해결책이 아니라 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교육은 늘 내게 성장과 변화, 발전을 가져다주었다. ‘배워야 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강의를 찾다 보면 배울 것을 찾기 위해 저욱 트렌드나 분야 지식을 공부하게 됐고 ’배우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면 무엇이든 주도적이 됐다. 그래서 늘 교육과 행동은 가까웠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되고 익히게 되면 할 수 있는 게 달라졌다.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무엇을 배우러라도 가면 내가 달라졌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뭐라도 배우면 길이 보였다. 무언가를 하고 싶을 때 배우면 속도도 빨라지고 생산성도 높아졌다. 방향도 잡아줬다. 교육은 직접적으로 행동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단지 기회를 제공해서 행동하게 도울뿐이다. 나를 능동적으로 만든다.
배우고 써먹으려는 자에게 교육은 최고의 투자다.그래서 나는 ‘내일배움카드’로 많이 배우고 배운 것을 써먹을 예정이다. 쭉쭉 흡수하기 위해 관심 있는 분야 위주로 배워볼 생각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면 어떤 일을 할 수 있게 될지도 궁금하고 그 결과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퇴사자가 된 지금, 교육은 앞으로의 인생에서 더 중요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퇴사자에게 본인의 흥미에 맞는 교육은 새로운 시작의 좋은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 특히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퇴사자의 상황에서 행동의 촉매제로 꼭 필요하다. 이런 나야말로 ‘교육만능주의’ 일지 모른다. 아니, 교육을 받으면 무엇이든 행동할 수 있다고 믿는 나는 ‘행동만능주의’가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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