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알면서도 다시 풋살화를 신게 되는 이유
결혼 초, 남편이 농구를 하다 어깨를 다친 적이 있다.
집에 와서 팔을 제대로 들지도 못했는데, 나는 속이 터져서 소리를 질렀다.
“자꾸 다쳐올 거면 운동을 나가지 말라고!”
그날 이후 남편은 다쳐도 나에게 말하지 않았다.
어떻게 알았냐고? 휴지통에 버려진 파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파스 포장지가 나오면 '아, 오늘도 어디 다쳐왔구나..'
리그전이나 대회에 다녀온 날이면 상대 발에 밟혀 발톱이 빠졌다느니,
손톱에 할퀴어 팔뚝에 상처가 나는 게 일상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왜 저렇게까지 하면서 운동을 하지?'라고 생각했었다.
남편과 나는 다를 줄 알았다. 조심조심, 무리하지 않고, 안 다치게 운동할 거라고 믿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훈련에 참여하고 있었다.
훈련이 끝나면 늘 마지막 30~40분은 회원들끼리 팀을 나눠 게임을 하는데,
연습 경기라지만 이때만 되면 모두의 눈빛이 달라진다. 승부욕이, 갑자기 살아난다.
문제는 나도 그 분위기에 휩쓸렸다는 거다. 몸은 이미 이제 좀 쉬자고 말하고 있었는데, 마음만 혼자 더 뛰자, 더 하자를 외쳤다. 따라오지 못하는 몸을 무시한 채 미친 망아지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수비도 열심히 하고, 몸 부딪히는 것도 피하지 않고, 오늘은 혼나지 말고 제대로 해보자! 싶던 순간,
바로 앞에 공이 보였다!
공을 향해 달려가는데 반대편에서 오던 동생과 정면으로 부딪혔다.
그 순간 몸의 중심이 확 무너지면서 발목이 꺾였다.
그리고 내가 들을 수 있을 만큼 선명하게, “뿌지직.”하는 소리가 났다.
힐 신다가 발목 삐끗한 적은 많았지만 이건 차원이 달랐다.
소리부터가 심상치 않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바로 경기에서 빠져나와 벤치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다 집으로 돌아왔다.
회원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내일 꼭 병원 가요.”
“제때 치료해야 돼요.”
집에 도착하자마자 발목은 거짓말처럼 퉁퉁 부었다. 다음 날 아침, 눈 뜨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갔다.
진단은 간단하고도 충격적이었다. “오른쪽 인대 파열입니다.”
인대 파열은 운동선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나와는 먼 단어라고 생각했었는데...
치료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며칠 쉬고, 약 먹고, 물리치료받기.
의사 선생님은 담담하게 말했다.
“운동은 당분간 쉬세요.” 그 말이 이상하게 무겁게 들렸다.
이제 풋살에 좀 재미 붙였는데, 이제야 좀 알 것 같았는데, 운동을 쉬라니.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일주일도 채 안 돼 몸이 너무 근질거려 혼자 집 앞 공터에서 스텝 연습도 해보고, 움직임도 흉내 내보고,
별 걸 다 했다. 그때 문득 남편이 떠올랐다.
아, 남편도 이런 마음이었구나. 다쳐도, 아파도, 그래도 운동을 놓지 못하던 마음.
일주일 조금 넘게 쉬고 다시 훈련에 나갔더니 회원들이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언니, 집에 가서 찜질 꼭 해줘요.” “언니, 발목 보호대 잊지 말고 사요.”
그제야 알았다. 이 사람들, 다 한 번쯤은 크게든 작게든 부상을 겪어본 사람들이라는 걸.
나는 다치면 절대 운동 안 할 줄 알았는데, 막상 그 자리에 서보니 운동을 끊을 수가 없었다.
풋살이 주는 즐거움이 더 컸기 때문이다.
다치지 않으려고 운동했는데, 이제는 안 다치도록 배우면서 운동하고 있다.
몸을 아끼는 법, 내 한계를 인정하는 법, 무리하지 않는 법을.
사람들은 말한다. “운동은 다치면서 배운다”라고.
예전엔 그 말이 싫었는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부상은 여전히 반갑지 않지만, 그 안에도 배움이 있다.
그리고 그 배움 덕분에 나는 오늘도 발목 보호대를 차고
조금 더 조심스럽게, 그래도 여전히 즐겁게 운동하러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