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취미를 찾는 중입니다 - 일본어 4
취미생활로 일본어를 배우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자 친구가 묻습니다.
“얼마만큼 늘었어? 이제 일본사람이랑 대화가 가능해?”
“아니, 이제 식당의 일본어 간판정도는 잘 읽을 수 있어.”
같이 연말에 하는 골든시스크 시상식을 보다가 어떤 아이돌 멤버가 일본어로 소감을 말하자 옆에 있던 딸아이가 묻습니다.
“엄마 저거 해석해 봐. 엄마 일본어 배우잖아.”
“모르겠는데? 한번 찾아볼까?”
일주일에 1번, 2시간 주민센터에서 일본어를 배웁니다. 매번 새로운 단어가 나오고 외워야 할 것들이 있지만 조급한 마음은 없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이걸로 먹고살자고 배우는 건 아니니까요.
처음 일본어 배우기를 시도한 건 작년 겨울이었습니다. 히라가나도 모르면서 중급과정에 신청하고 부족한 기초는 독학으로 따라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첫날 수업을 듣고 난 뒤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수업을 따라갈 수 있으리라 기대한 건 대단한 오만과 착각이었다는 것, 그리고 제게는 그럴만한 열정과 에너지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유방암 수술로 얻게 된 림프부종이 악화되어 치료를 위해 한 달간 매일 서울 병원을 오가게 되어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되었지만 그때의 저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 옵니다.
밀어붙이는 태도가 그간 제가 살아온 태도였습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혹은 해야 하는 게 있으면 일단 그 자리에 저를 갖다 놓고 어떻게든 헤쳐 나오게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태도가 가진 이점으로 20대와 30대까지 10년간 많은 일의 경험을 했고 저는 번아웃에 빠졌습니다. 결혼과 출산, 육아도 그런 맥락으로 일단 호기롭게 뛰어들고 어떻게든 해결하라고 스스로를 밀어붙였었습니다.
그 뒤에는 반작용으로 미루기에 빠졌습니다. 준비가 될 때까지 미루는 것. 이거다 싶은 확신이 생길 때까지 그 어떤 선택도 하지 않고 계속 버티는 시간을 오래 가졌습니다. 그러다가 책도 쓰고 암에도 걸리고 여행도 다니고 지금은 취미생활도 합니다.
다음 분기에 초급과정을 신청한다는 연락을 받고 히라가나부터 다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잘 못하는 제 자신을 괜찮다고 허용해 주니 버틸만했습니다. 같이 헤매는 중장년의 수강생분들도 위로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새로운 언어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한글을 깨칠 때 지나가는 길에 있는 간판을 모조리 읽어내는 이유를 저도 알 것 같았습니다. 저에게도 제 딸에게도 있었던 그 시기를 저는 일본어를 배우면서 다시 어렴풋하게나마 떠올렸습니다. 미묘한 기쁨과 즐거움이 제 마음속에 올라오는 걸 바라보면서 흐뭇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어 수업이 있는 날 오전에 약속이 생겨서 친구와 밥을 먹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친구는 제가 무사히 치료과정을 마친 것을 축하한다며 꽃다발을 들고 나왔습니다. 예상치 못한 꽃다발을 받아 들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원래 계획은 밥을 먹고 헤어지고 일본어 수업을 가는 것이었는데 마음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이 상황에서 일본어 수업을 가버리는 건 자연스럽지가 않았습니다. 뭐든 시작하면 빠지기 싫어하는 제 고지식함으로 처음에는 수업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었습니다. 그 수업을 빠지면 다음 내용을 들을 때 못 따라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도 한 몫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꽃다발과 친구얼굴을 보니 정신이 들었습니다. 그 꽃다발을 들고 수업에 들어가서 앉아있는 것도 맘이 편치 않을 것 같았습니다. 수업을 유튜브나 다른 정보를 통해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았고 선생님께는 문자로 연락을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제 머리가 아닌 제 마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느껴보려고 시도했습니다. 웃기지만 그렇게 진지하게 제 마음이 원하는 것에 대해 촉을 세우고 질문을 던져보는 게 낯설었습니다. 돌발적인 상황에서 실시간으로 촉을 세워보니 친구와 다정한 수다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께 문자를 보내고 보니 이렇게 수월할 수 있는 걸 왜 그리 어렵게만 생각했나 싶었습니다. 익숙한 틀 하나를 깨고 보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것도 아닌 것을 깨닫게 되어 속 시원하고 한결 자유로워진 느낌이었습니다. 아마도 취미생활이기에 가능한 자유가 아닐까 합니다.
지금은 밀어붙이는 것과 미루는 것 사이에서 그 완급조절의 제게 적절한 온도를 스스로 어느 정도 찾은 것 같습니다.
웨인 다이어는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책에서 애쓰지 않는 감각을 기르라고 했습니다. 노력과 실행 사이의 연속선상에 '놓여있음'이 몸 안에서 느껴지는 순간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실제로 하기 위해 배우고 애쓰고 노력하고, 마침내 그 모든 걸 습득한 후에는 드디어 실행이 허용되는 황홀한 순간이 찾아온다고 말입니다. 이때 애씀과 허용의 차이를 몸으로 진정 느껴보면 그다음에는 허용할 때의 애쓰지 않는 감각을 알아차리게 된다고 합니다. 노력의 강박에서 벗어나 단 한순간이라도 온전한 감각으로 인생을 바라볼 수 있도록 애쓰지 않는 감각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노력을 기울여야 할 유일한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웨인 다이어가 말한 애쓰지 않는 감각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후반전을 시작하는 사람들, 혹은 위기와 전환을 맞이한 사람들에게 필수적일 것입니다. 밀어붙이지도 말고 미루지도 말자고, 여유 있게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고 쉴 수 있을 때는 쉬면 된다고 스스로에게 다정히 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