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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십대 제철 일기 Apr 01. 2019

남의집살이-6

이십구달팽이의 두집살림 아니 0집살림

턱을 조금 치든 채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입가에 교묘한 미소를 지으며 상대방을 내리 깔보면서 말한다.      


“문제를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되는데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된다고 그랬어요.”     


영화 <베테랑>의 주역 유아인의 명(?) 대사다. 그 교만한 태도와 가증스러운 목소리 톤은 물론 좋은 연기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스토리에 잔뜩 몰입했던 나는 그 순간 그 배우를 참 미워했다. 하지만 대사만 놓고 보면 맞는 말이다. 내가 딱 그렇게 살았다.     


건물이 오래되고 허름할수록 범죄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그럼에도 난 그냥 살았다. 골목이 위험하고 건물이 지나치게 별로여도 문제 삼지 않았다. ‘문제를 삼지 않았더니 문제가 안 생겼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던 영화 속 유아인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문제는 언제나 있었다. 가장 큰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 문제를 삼지 않았을 뿐.      


웬 남자가 집으로 따라 들어오려고 했거나, 미쿡 바퀴벌레와 두 시간 정도 피 튀기는-사실 눈물 콧물 다 짜는-전쟁을 치른 후에도 시체를 치우지 못해 집에 들어가길 망설였거나.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정도의 문제가 생길 때까지 참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러다 머리가 커지고 나서 구한 게 문제의 5천만 원짜리 전셋집이다. 방의 크기보다는 건물의 연식과 치안을 제일 중요하게 살폈다.     


5평짜리 아주 작은 방이었지만 건물이 지어진지 5년 정도밖에 안 됐고, 지하철역과의 거리도 아주 가까웠다. 큰길에서 걸어서 1분 정도의 좁은 골목에 들어와야 한다는 게 흠이었지만 워낙 거리가 짧아 괜찮았다. 이 방을 계약하면서 나는 ‘신축 건물이고 깔끔하니까 범죄에 노출될 확률이 현저히 낮지 않을까.’ 안심했다. 그러나 안심은 방심이었다. 그 건물에 누가 사는지 까지는 알 수 없었던 것이다.      


편지는 같은 층수에 사는 남자가 보냈다. 편지에 그렇게 소개돼 있었다. 나의 호수와 그 사람이 살고 있는 호수가 각각 적혀 있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네가 먼저 추파를 던졌잖아? 대화 좀 하자.’였다.     


난 2년 동안 그 방에 살면서 단 한 번도 같은 층에 사는 남자의 얼굴을 본 적 없다. 바로 앞집에 사는 여자 하고는 몇 번 마주쳤지만 흐릿하게나마 이목구비가 기억에 남지 않을 정도다. 같은 층에 살면서도 누가 몇 호에 사는지 잘 몰랐다.      


그렇다면 그 남자는 나를 어떻게 알고. 저런 말도 안 되는 편지를 쓰게 된 걸까.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 봐도 생각나지 않았다. 심지어 난 밖에 나가려다가도 남자의 기척이 들리면 그 기척이 완전히 사그라들 때까지 방을 나서지 않았다. 혼자 사는 이상 늘 조심하자 주의였다.      



            그런데 왜, 대체, 왜 나한테, 왜 꼭 나일까.     


편지 내용은 아무리 다시 읽어도 이상했다. 도무지 문장들의 앞뒤가 맞지 않고 문맥이 어색해 정상적이지 않았다. 정신적으로 망상 등의 문제가 있어 보였다. 벌써 2개월 정도 지난 일이지만 혹여나, 걱정이 돼 구체적인 내용은 담지 않겠다. 어찌 보면 ‘아직 2개월밖에’ 되지 않은 일이니까.      


옷을 두텁게 껴입었던 나는 옷을 한 꺼풀씩 벗어내며 편지를 재차 읽었다. 한 다섯 번쯤 읽었을 때였나. 문득 나는 옷을 벗는 나의 행위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디 감히 옷을 갈아입나. 방 안에 몰카라도 설치했으면, 아니면 내 방 문에 귀라도 대고 있으면 어쩌려고. 의식하면서부터 내 모든 순간들이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되는 느낌이었다. 영화 <트루먼쇼>의 트루먼이 된 기분. 아무리 절규해도 불특정 한 시선들이 놓아주지 않았던 트루먼이 떠올랐다. 트루먼도 그저 운 나쁘게 대국민 쇼-지금으로 따지면 몰카 범죄 쇼-의 주인공이 됐었다.      


나는 서둘러 다시 옷을 챙겨 입었다. 적당한 가방을 꺼내 당장 필요한 속옷과 옷가지들을 챙겼다. 가장 가까운 이들 세 명에게 전화를 걸어 나의 상황을 대충 알린 후 편지 내용을 찍어 보냈다. 모두들 일단 그 집에서 벗어나라고 했다. 새벽 1시가 다 될 무렵이었다. 당장 와 줄 수 있는 친구가 방문 앞까지 데리러 오기로 했다.      


10분 정도였을까. 그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영겁의 시간을 흘려보낸 기분이었다. 스마트폰을 쓰고부터는 따로 시계를 차지 않았는데, 귓가에는 째깍째각째각 초침이 지나는 소리가 들렸다. 환청인지, 옆방에서 나는 실제 시계의 시침 소리인지, 나의 심장 박동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방 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바로 세운 내 무릎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겹겹이 껴입은 옷들 사이로 누군가 입술을 동그랗게 말아 차가운 바람을 불어넣는 듯 신체 부위 이 곳 저곳에 자주 소름이 끼쳤다.      


친구가 오자마자 함께 1층으로 내려왔다. 아주 조용히. 골목에서 벗어나 큰 길가로 나오자마자 나는 혹시 뒤따라오는 이가 없는지 확인한 뒤 억지로 웃으며 말을 건넸다.      


“아우 이게 무슨 일이냐.”     


집 근처 주스 가게에선 유명 아이돌의 댄스곡이, 화장품 가게에선 익숙한 발라드 노랫말이 시끄럽게 어우러졌다. 새벽이 기운을 잃은 마냥 소란스러웠다. 나는 어깨에 맨 가방끈을 꼭 쥐고 있었다. 그리고 친구는 등 뒤로 투박한 망치 하나를 꼭 쥐고 있었다. 이게 무슨 코미디인가. 나는 소리 내 웃었다.      


“혹시 몰라서 아무거나 집어왔어.”     


담담한 친구의 말소리가 노래 말과 섞였다. ‘이 선 넘으면 침범이야 Beep-'      


(매너는 여기까지) 우리도 무기는 있어야지. (It's ma-ma-ma-mine) 누나 가질래? (Please keep the la-la-line) 근데 그 남자 완전 미친놈 아냐.”      


나는 망치를 가져도 된다는 말에, 바로 어깨에 맨 가방에 챙겼다. 가방 위로 망치의 형체를 자꾸 만지며 생각했다. ‘참 별 일 다 있지.’



나는 그 길로 집을 떠났다.      


♣ 이십구달팽이의 한마디. (혼자 살기에도) 안전한 집이란

오피스텔, 빌라, 다가구주택 등은 관리자가 상주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보안이 허술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위치'가 중요하다. 일단 골목은 피하자. 으슥한 골목길에 위치한 주택은 흡연장소가 되기 십상이고 괴한이 따라와도 쉽사리 도움을 청하기 어렵다. 적당히 대로변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면서도 인근에 경찰서, 파출소, 소방서 등이 있으면 좋다. 어린이집이나 초등학교처럼 어린 아이들이 많은 동네도 (다소 시끄러울 수는 있지만) 치안에 신경쓰기 때문에 괜찮다. 허름한 건물에 있을수록 범죄 가능성이 높다고 하니, 웬만하면 신축(지은지 10년 이내) 건물로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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