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나를 모른다
지난 주말이었습니다. 모임이 있었어요. 그 모임은 술이 만남의 도구였습니다. 이제까지 만나면서 술을 안 마신적이 없는 거 같아요. 만날 때마다 술을 마시지요. 주말에는 달랐습니다. 원래 멤버 외에 한 분을 특별히 모셨거든요. 예전부터 저희끼리 '식사 같이 해야 하는데'라고 하면서 약속은 잡고 있지 않았습니다. 두 달 전, 전화를 드렸어요. 그렇게 저희는 모임을 가졌습니다.
저희가 그분의 수업을 듣고 있기 때문에 공통 관심사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자리가 처음이기도 했고, 저는 또 낯도 가리기 때문에(수업을 한 주에 두 번은 들으면서) 어색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어요. 실제로 오프라인 만남은 두 번 정도 있었는데 모두 짧게 이야기했었죠. 식사 자리니까 기본 두 시간 잡고 매번 듣는 수업 내용의 연장선이면 밥 먹다가 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잠깐 들었습니다.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전주에 웃긴 해프닝이 있어서 그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웃기 시작했어요. 각자 서로 앞날을 걱정하고, 캐릭터가 겹쳐지니 또 싫어하는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제삼자인 저는 그저 즐겁기만 합니다. 식당에 제일 먼저 들어갔고 옆 테이블이 자리를 비우고 나서도 한참 있다가 나왔습니다. 곧이어 카페에 가서 이야기를 이어갔어요. 버스 시간만 아니었다면 더 이야기하고 나왔겠지요.
신기했습니다. 저는 보통 모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가면 에너지를 쏟고 다 쓰고 돌아와 집에 오면 지쳐있더라고요. 그 지친 몸으로 아이들을 돌보니 '애들이 빨리 잤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만 듭니다. 저녁을 대충 먹거나 시켜 먹게 되지요. 그래서 제가 낮에 모임도 선별해서 가는 편입니다. 한두 번 다녀온 후 기운이 빠지면 안 가게 되더라고요. MBTI의 'I'형이란 사실을 알고 나서는 더 합리화했던 거 같아요.
에너지 안 빠지고 충전하고 오는 모임은 대체로 술자리를 가졌을 때입니다. 물론 이것도 제가 가려서 받습니다. 가서 힘이 빠질 거 같다는 생각이 들면 처음부터 가지 않아요. 하지만 대부분의 술자리를 가는 거 보면, 저는 술도 좋아하지만 그 분위기도 좋아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혼자 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를 술자리에서 가지는 거 같아요.
이상했습니다. 헤어졌는데 마음이 지쳐있지 않았어요. 즐겁고, 뭔가 가득 찬 기운으로 돌아갑니다. 생각해 봤어요. 그날 저희는 술자리에서처럼 이야기했어요. 술을 마시지 않아도 술을 마신 것처럼 즐거운 시간 95%, 진지한 시간 5%. 저도 이 모임을 알고 나서 술을 안 마신 적이 없어서 이렇게 즐거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네요. 그렇다고 지나고 나면 기억나지 않을 이야기들만 하고 온 건 아닙니다. 배움도 있었고,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도 있었습니다. 수업에서는 보여줄 수 없었던 자신의 캐릭터도 드러내기도 했었죠.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낮에 술 없이 사람들과 만나는 모임을 단정 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제껏 그랬다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판단하고 있었어요. 이런 선입견 가지지 않았더라면 모임이 더 즐거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는 이런 안경을 쓰는 태도, 없애 버려야겠다는 마음도 생깁니다. 경험하지 않고 추측하는 경우는 드물기는 하지만 한 번 일반화를 해버리면 수정도 하지 않는 거 같아요. 이런 태도만 바꿔도 제 삶은 더 많이 배우고 느끼고 누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