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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인 것처럼

되고 싶은 모습이 있을 때

by 벨리따

축구 선수가 된 거 같다. 콘 세우고 했던 연습할 때였다. 콘까지 드리블해서 가면, 아웃사이드로 터치한 후 앞에 있는 우리 팀에게 공을 패스하는 연습을 했다. 아웃사이드만 한 건 아니다. 팬텀, 드래그도 이어서 연습했다. 상대를 속이는 동작이다.

선수들이 경기할 때 많이 보는 동작이었다. 티브이에서 보면 드리블 후에 공 터치를 한 번 했다가 우리 팀에게 패스를 한다. 터치하고 나면 고개를 들어 선수들의 자리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공을 줬다. 이 연습을 한 거다. 우리도 아웃사이드, 팬텀, 드래그 후에 고개를 살짝 들어 어디 있는지를 보고 패스를 했다. 별거 아닌 동작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거 하나 때문에 축구 선수가 된 느낌을 받았다. 크게 감명받지는 않는 동작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넣는 골이나 막는 수비만큼 강력한 건 아니지만 어쩌면 내가 이 동작을 해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배웠을 때 바로 알았으니까. 했는데 좀 멋있다 생각했으니까.



화장하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초등 3, 4학년 때인 걸로 기억한다. 엄마가 없을 때 엄마 화장품, 특히 색조 화장품을 발랐다. 눈에 바르고, 립스틱도 바르고 나면 티가 난다. 엄마가 오기 전에 지운다고 비누로 세수를 했지만 엄마는 기가 막히게 알아본다. 그러고는 어린 나이에 화장을 한다며, 엄마 물건에 손을 댔다며 혼났다.

지금은 서하가 내 화장품에 관심이 많다. 내가 눈 화장을 하면 딸도 하고 싶어 하고, 머리를 만지고 있으면 자기 머리도 해달라고 한다. 매니큐어도 바르고 싶어 한다. 나는 손톱 관리도, 눈 화장도 자주 하지 않는다. 손톱이 길면 생활이 불편해서이다. 섀도를 바르면 눈이 충혈되기 때문이다. 어깨보다 더 내려오는 긴 머리일 때는 집에서 헤어 스타일러를 써 본 적이 거의 없다. 숏 컷으로 자른 후 매일 고데기를 하고 있는데 어떤 날은 앞머리를, 치마 입는 날은 머리끝을 말아달라고 한다. 내가 보여주지도 않는데 서하는 매니큐어도 바르고, 화장도 하고 싶어 한다. 유치원 선생님, 소아과 접수와 수납 쪽에 앉은 직원들, 친구 엄마들을 유심히 쳐다보는데 화장이 진하거나 손톱이 예쁜 그런 날은 서하도 꾸미고 싶어 했다.

나는 열 살이 넘어서 관심을 보였던 걸로 기억한다. 서하는 이보다 빠르다. 다섯 살 때부터 하고 싶어 했다. 매니큐어를 사달라고 해, 다이소에서 곰돌이 푸 그림이 그려진 매니큐어를 색깔별로 샀다. 내가 발라주다가, 혼자서 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혼자 해도 반듯하게 바르고 있다. 네일을 하고 싶어 하길래 집 근처 네일숍에 같이 가서 물어도 봤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야 할 수 있다고 해서 참고 기다리는 중이다.

화장은 계속하고 싶은지, 집에 있는 내 립스틱을 바르고 다닌다. 학교 교과서 복습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저녁 먹으라고 부르면 새빨간 입술을 하고는 나타난다.

내가 축구 선수가 된 느낌을 받은 것처럼, 서하는 예뻐진 모습이 좋고 또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시각화, 유인력의 법칙, 목표 달성과 관련된 책, 영상, 문구를 보면 ‘내가 바라는 그 사람처럼 행동하라’는 말이 있다.

축구 선수가 되고 싶은 아들, 시환이가 있다. 운동하러 가기 싫어하면 얘기한다. 아니, 그전부터 얘기해 뒀다. 손흥민 선수의 하루 스케줄, 운동량, 마인드 부분을. 하기 싫은 날, 나가기 귀찮은 날 손흥민 선수는 이런 이유로 쉬지 않는다. 몸을 일으키고 개인 훈련과 팀 훈련을 소화한다. 팀에서 주장을 맡고 있는 손흥민 선수. 팀 내 갈등이 있으면 화합 위해 나설 것이다. 이런 얘기들을 아이에게 해 준다. 그냥 하자고 하는 건, 엄마인 내가 하자고 하는 건, 아이를 끌고 갈 힘이 약하다. 아이가 바라는 꿈을 이룬 사람 한 명을 정하고, 그 사람과 관련된 영상을 검색해서 같이 본다. <축구를 하며 생각한 것들> <WHO? Special 손흥민> 책도 사서 거실 책상에 놓아둔다. 아직 그 사람처럼 된 건 아니지만, 그러기 위해서 그의 자세, 태도를 따라 해 보는 것이다.

매일 글을 쓰고 있다. 일기도 쓰고, 독서하다가 좋은 문장을 발견하면 내 경험을 담은 문장으로 바꿔보기도 한다. 책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기도 하며, 지금처럼 출간을 위한 글을 쓰기도 한다. 지금은 매일 쓰고 있으나 습관을 만들기까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내가 왜 이걸 하겠다고 시작했을까 하는 생각, 글 쓰려고 앉을 때마다 했었다. 안 써질 때는 당연히 했었고, 다 쓰고 나서야 그래도 해냈다는 생각에 후련했으나 다음 날이면 이 일을 반복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글 쓰는 사람이라면 쓰기 싫은 날, 잘 안 써지는 날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안 쓰고 넘어간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쓰는 일을 해낸 사람이 있다.

미국 소설가 스티븐 킹은 규칙을 강조한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쓰라고 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쓰기 싫은 날에도 그 시간에 자리에 앉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500편이 넘는 소설을 창작했으며, 호러의 왕이라고 불린다.

<노인과 바다>로 유명한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글이 안 써질 때, 아이디어 노트를 작성했다고 한다. 안 써진다고 해서 안 쓰는 게 아니라 창작 활동을 위한 준비를 한 것이다.

<해리 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은 산책을 하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외국 작가뿐만 아니다. 김영하 작가 역시 규칙적으로 쓰기를 강조하며, 잘 안 써질 때에는 짧은 글이나 일기를 남기며 쓰는 시간을 계속 유지한다. 한강 작가도 자연에서 산책을 통해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한다. 이문열 작가는 다른 작가의 책을 읽으며 분석한다고 했다.

다들 글이 안 써진다는 이유, 지금 쓰기 귀찮다는 핑계 대지 않는다. 습작, 아이디어 찾기, 독서 등을 통해 어떻게든 쓰는 행위를 계속했다.

글이 잘 안 써질 때마다 위에 언급한 작가들을 생각한다. 눈 감고도 쓸 거 같은 작가들 역시도 글쓰기로 힘들어하는 날이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은 하지 않는 게 아니었다. 이제 시작하는 내가 펜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그들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내 글 한 편, 책 한 권 읽고 뭔가 달라지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해보고 싶은 게 생기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꿈이 위대하지 않다고 해서 내 태도도 작게 만들 생각은 없다. 그들은 위대한 작가 이전에, 작가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 그들의 모습을 따라 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이렇게 해야 나도 작가인 거 같으니까. ​




요리를 할 때, 어남선생이 말한 맛을 표현하면 그 사람이 된 거 같아 기분이 좋다. 감정이 폭발할 거 같은 순간에도 아이 눈 마주치며 차분하게 얘기할 때면 오은영 박사처럼 했다며 나 자신이 뿌듯하기도 하다. 아이들이 복습을 스스로 잘해줄 때는 <완전학습 바이블>, <혼공의 힘>의 저자가 된 것만 같다. 패스하기 전에 고개 한 번 들었을 뿐인데 축구 선수의 기분을 잠시나마 느껴 보았다.

더 잘해보고 싶다. 어떤 일을 하면서 이런 감흥조차 못 느낀다면, 노력하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기지 않을까? 누군가가 된 거 같다는 생각을 한 덕분에 그만두고 싶을 때에 롤 모델을 떠올리게 된다. 그들은 분명 포기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한 번 더 해보자는 의지가 생긴다.

내가 원하는 게 있고, 노력도 하고 있으며, 포기하지 않으면 목 표를 이룰 수 있다고 한다. 나는 그 길에 나의 롤 모델과 동행할 것이다. 그는 진정 어떤 삶을 원하는지, 얼마나 간절하게 원하는지, 얼마만큼의 노력을 하고 있는지, 포기하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 물어보며 말이다. 질문과 대답을 통해 나는 지금과는 또 다른, 한 단계 성장한 내가 된다고 믿는다.

프로가 된 거 같은 느낌을 받고는 내 목표는 무엇인지, 롤 모델은 누구인지 떠올려본다. 이렇게 또 축구를 통해 내 인생의 태도를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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