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싱키에서 생활한 지 한 달이 거의 다 되어간다.
그간 바쁜 트레이닝 탓에 아직 집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던 곳이 많았던 나와 우리 홈메이트 들은, 오늘은 버스를 타고 출퇴근할 때마다 보이던 집 앞 성당에 가보기로 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인 정오에는 성당에서 울리는 큰 종소리가 댕댕 울리고 있었다.
성당에 오니 유독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
유럽의 크고 아름다운 성당 주변을 지날 때면 '어머니께서 참 좋아하실 텐데..' 하는 생각을 많이 하곤 한다. 즐거운 것 중 하나는, 이제는 그 생각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 만큼 어머니와 가까이에 산다는 것이다.
이제 2주만 지나면 이 지긋지긋한 공부를 끝내고 비행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으면서도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처음 이곳에서 트레이닝을 시작하면서 놀라울 만큼 자유로운 복장에 놀랐고, 놀라울 만큼 친절한 인스트럭터들에게 놀랐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던 나날들도 한 달이 지나고 나니 이제 담담하고, 또 그것이 원래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인간이란 정말, 좋은 것이던 나쁜 것이던 적응하게 되는 동물이 맞다. 그래서 어쩌면 나의 환경을 좋은 쪽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해야 하는 것 같다. 내가 부당한 대우를 받던 넘치는 대우를 받던, 그 환경에 계속해서 스스로를 노출시키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에 적응이 되어간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의 인생은 늘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와중에 큰 변화를 지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교에서 착실히 공부하던 나는 어느새 처음 가보는 나라에서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었고, 또 그 회사가 전부인 줄 알고 다니던 나는 어느새 새로운 직장으로 옮겨 그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다. 나의 대학과 나의 첫 직장이 그랬듯, 나의 첫 직장과 지금의 직장이 많이 다르다.
그런데 나는 벌써 또 한 달이 지나 이곳에 적응을 하고 있고, 이제는 내가 그전에 어떻게 일했었는지 기억이 나지도 않을 지경이다. 처음 비행을 시작하고 내가 학생이었던 시절에 어떻게 살았었는지 가물가물 하던 것처럼.
그래서 나의 하나하나의 선택이 중요한게 아닐까? 내가 가는 곳, 내가 만나는 사람, 나의 하는 일, 내가 사는 곳.
나는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어떤 곳에 가도, 어떤 사람을 만나도, 어떤 일을 하더라도.
결국에는 그곳에 적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는 마치 내가 그곳에 평생 동안 산 것처럼, 그 일을 평생동안 한 것처럼, 그 사람과 평생 동안 안 것처럼 그 생활에 익숙해지고 그 안에서 편안함을 찾아갈 것이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원하는 사람이 할 것 같은 선택들을 만들어 가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것 같다.
이 트레이닝이 끝나고 다시 일을 시작하며 내 앞에는 다시금 여러 선택들을 해야 할 갈림길들이 생겨날 것을 알고 있다.
그때마다 한 발짝 물러서 내가 가치롭게 느낄 수 있는 선택지가 어떤 것인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더 나은 선택이란 없겠지만, 더 나다운 선택은 있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