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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 Oct 10. 2022

공기업에서 까치도 잡는다고요?

설날 하면 몇 가지 단어가 떠오른다. 세배, 윷놀이, 떡국, 성묘, 설빔, 까치 등등. 이 단어들 중에서 까치는 유독 정겹게 느껴졌다. 좋은 소식을 가져다주는 길조이자,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동요의 주인공이니까. 거기에 귀여운 생김새까지. 아마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까치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회사에 입사하기 전까지는. 입사 후 내게 까치는 성가시고 어려운 존재가 됐다. 까치는 우리 회사의 ‘주적(主敵)’이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는 매년 까치를 구제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붓고 있다.

매년 2월~5월이 되면 우리 회사는 까치로 인해 분주해진다. 까치는 이 시기에 활발하게 돌아다닌다. 산란기이기 때문이다. 알을 낳기 위한 집을 짓기 위해 손수 발품을 파느라 분주하다. 까치집에 쓰이는 소재부터 까치집의 위치에 이르기까지 심혈을 기울인다. 이 과정에서 우리 회사와 ‘마찰’이 생기게 된다. 전신주 위에 까치집이 기자재에 닿아 정전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까치들에게 교통법규를 적용해 벌칙이나 벌금을 매길 수는 없는 노릇이라 우리 회사는 두 가지 방법으로 까치들을 계도한다. 까치집을 파훼하거나, 까치를 죽이거나.


다소 비 인륜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실제로 우리 회사는 이런 일들을 하고 있다. 법적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까치’는 유해조수로 지정돼있다. 유해조수의 사전적 정의는 ‘인간의 생활에 피해를 주는 새와 짐승’을 일컫는다. 바꿔 말하면,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에만 유해조수라고 볼 수 있다. 실제 관련 법령에도 ‘전주 등 전력시설에 피해를 주는 까치’로만 제한하고 있다. 즉, 우리 회사는 까치 자체를 박멸하는 게 아니라 전력시설에 피해를 주는 까치에 한해서만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까치 입장에서 우리 회사는 절도죄, 재물손괴죄도 모자라 상해치사죄를 끼치고 있는 것이다. 까치 측 검사가 해당 죄목으로 우리 회사를 기소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에 맞서 우리 회사 측 변호사는 까치가 전신주 위에 까치집을 짓는 건 미필적 고의라 반박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까치집으로 유발되는 정전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해도 모자랄 노릇이다. 법적 근거하에 까치를 상대로 벌이는 우리 회사의 정당방위는 매년 지속되고 있다.


조류 구제 업무의 경우 우리 회사 설비운영 부서에서 담당한다. 신입사원 시절 설비운영부서에 발령받았고, 조류 구제 업무가 어떤 건지도 모른 채 담당하게 됐다. 처음엔 당최 무슨 일을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부서 선배는 업무를 인계인수해주며 한마디 보탰다. 꽤나 골치 아픈 일이 될 것이라고. 선배 말대로 조류관리 업무, 까치들은 날 골치 아프게 만들었다. 까치를 관리하며 비롯되는 애로사항이 이렇게 많을 줄 상상하지 못했다.


우리 회사는 지역별로 야생동물 관리협회 등과 협약을 맺고 연(年) 단위로 조류 구제 위탁을 맡긴다. 협약을 맺은 협회에서 추천하는 소속 포수들을 우리 회사에서 선정한다. 과년도 실적, 사고 유무 등을 검토해 포수들을 선발한다. 선발된 포수들에게는 포획하는 까치 마리수에 비례해 보수를 지급한다. 내가 담당하던 영광군의 경우 네다섯 분의 포수가 구제 기간 동안 대략 2천 마리 이상을 포획했었다. 특히 낚시용품 매장을 운영하며 포수를 겸업하시던 분의 실력은 발군이었다. 전체 실적의 40% 가까이를 혼자서 해결하셨다.


포수분들은 구제 시즌에 매일 아침 일찍 우리 지사 1층 사무실에 모였다. 대부분 군복처럼 생긴 두툼한 잠바를 입고 오셨다. 믹스커피를 손수 타드시는 포수분들에게 할당지역을 안내하고 안전하게 작업해달라 당부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수렵을 나가는 사냥꾼들을 북돋아주는 아낙이라도 된 것 마냥.


한 번은 포수분들이 어떻게 까치를 구제하나 궁금해 직접 따라나간 적이 있었다. 현장을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건 까치들의 행동에 관한 것이었다. 까치는 5~6살 사람과 비슷한 지능을 갖고 있어서 꽤 영리한 편이라 한다. 우리 회사  차량이 나타나면 까치들이 그걸 알아보고서 멀리 도망간다는 말도 다. 포수 아저씨는 까치 한 마리를 구제하면 시체를 거두지 않고 그냥 내버려둔다 하셨다. 이유인즉슨, 죽은 까치를 문상하러 다른 까치들이 오기 때문에 그 기회를 이용하면 더 큰 수확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라 했다. 믿거나 말거나한 이야기임에도 나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수많은 까치를 잡은 포수의 말이라 그런지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갔다.  


처음 조류 업무를 맡았을 때만 해도 그저 업무 중 하나에 불과하다 생각했다. 회사일이니까 한다 정도였다. 하지만 포수들이 잡아온 까치 마리수를 세는 작업을 할 때 쎄게 현타가 왔다. 포수들은 매월 자신들의 성과를 검수받기 위해 우리 지사에 모였다. 나는 담당자로서 지사에 딸린 차고지 앞마당에서 포수들이 잡아온 까치들을 일일이 세보며 기록했다. 검수가 끝난 까치들을 전용 포대에 담는 동안 여러 생각이 스쳤다. 공기업에 들어와서 시골로 떨어진 것도 모자라 죽은 까치까지 세는 일을 하다니.


죽은 까치는 말이 없었지만, 사람은 아니었다. 조류 구제 위탁을 받은 협회 측과도 마찰이 종종 일어났다. 돈 때문이었다. 마리당 단가가 너무 낮다는 주장이었다. 까치를 죽이면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실적이 깎인다는 점, 이로 인해 총탄 단가 등을 따져보면 남는 게 없다는 점 등이 주장의 근거였다. 그들의 고충 듣는 동안 나는 안타까운 탄식과 함께 공감하는 제스처만 할 뿐이었다. 일개 담당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전사 동일하게 마리당 단가가 동일한데 내가 어찌해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저 매일 아침 포수분들에게 좀 더 살갑게 대하고 애로사항은 없는지 확인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영광에서 2년간 근무하며 수없이 많은 까치집과 까치와 마주쳤다. 지금은 조류 구제 업무를 하고 있지 않지만, 지금도 길가다 까치를 보면 여러 감정이 스친다. 나무 위에 둥지를 튼 까치를 보면 고맙고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아내에게 까치 잡는 우리 회사 이야기를 해준 이후로 아내 역시 까치를 길에서 마주치면 오빠의 적이 나타났다고 한다. 동물과 등을 지게 된 것이다. 공기업에 들어와서 까치를 적으로 두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이었고, 앞으로도 지속될 일이다. 다만 조금 더 고민해볼 지점은 분명 존재한다. 까는 그저 인간의 영역이 넓어지며 자신들의 터전이 좁아졌고, 불가피하게 전신주에 둥지를 짓다보니 유해조류가 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 역시 그걸 잘 알기 때문에 상생할 수 있는 대책을 궁리하고 적용해보기 위해 노력을 이어갈 것이다.


회사의 노력과 별개로 나는 직원으로서 까치들이 회색빛 전신주보다 초록빛 나무 위에서 둥지를 틀기를 바라본다. 까치까치 설날은 동요를 다시 기쁘게 부를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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