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똥집에서 만난 킬리만자로의 표범(?!)
마사이 마을에서의 영화 같은(?) 하룻밤이 지나갔다.
소똥집에서의 아침.
일어나니 아이들은 이미 깨어나서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 집 마사이 엄마는 부산하다. 어둑어둑한 아침, 호롱불을 켜고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 아침 준비가 시작된다.
케냐 마사이의 주식은 우갈리라고 불리는 일종의 백설기 같은 옥수수가루를 쪄낸 빵이다.
이 우갈리와 함께 아프리카에서 많이 먹는 음식이 있는데 짜파티라고 불린다. 밀전병, 인도음식 난처럼 생겼다.
이 반죽을 화로에 무쇠 팬을 올리고 한 장씩 구워낸다.
이 주식과 함께 짜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밀크티(홍차를 우유에 우려내어 설탕을 듬뿍 넣어준다)를 함께 마신다.
인젤라도 먹었는데 이건 식은 죽 먹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밤새 매캐한 연기를 맡으면서 거의 잠을 못 잤기 때문에 아침부터 목이 칼칼했다. 가져온 생수를 혼자 먹기도 미안하고, 다 같이 먹을 양은 되지 않아서 그냥 주시는대로 먹으려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아궁이 주위에 걸터 앉아서 접시를 하나씩 손에 들고 기다리는데 이 집 고양이가 부뚜막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는 게 보였다.
‘여긴 고양이도 빼짝 말랐네…’
이 동네는 살찐 생물체가 없는 듯했다. 하긴.. 사람이 먹을 것도 없는데 동물들은 말할 것도 없겠지.
마사이 엄마가 갓 구운 짜파티를 내 접시에 올려주신다.
얼른 받아서 일단 뜨거운 차를 한 잔 마시고, 한 입 베어 물 생각으로 짜파티 접시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바로 그 순간!!!
킬리만자로의 표범과도 같이 날렵하게!
나비처럼 날아와서 벌처럼 순식간에!
고양이가 내 짜파티를 가로채 달아났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 새를 노렸을까 싶고, 아침 바람에 겪은 이 찰나의 순간에 어안이 벙벙한 채 3초간 정지.
또한 바로 그때였다.
입에 물고 구석으로 도망간 고양이를 잽싸게 낚아채서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손바닥으로 패고 있는 우리의 마사이 엄마….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는데도 엄마는 화가 단단히 났다.
십여 대를 얻어맞고 고양이는 짜파티 쪼가리를 들고 비척비척 사라졌다.
마사이 엄마는 미안해하며,(여분이 없었으므로) 차를 권했다. 나는 이것도 충분하다고 웃어 보였다.
아침을 먹었으니 아이들은 학교에 갈 시간.
쪼로록 일렬로 서서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한다.
응! 잘 다녀오렴~~하고 흐믓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마사이 엄마가 나를 불러서 고개를 돌리고 몇 마디 나누게 되었다.
대화중에 생각해보니 손을 흔들어 주지 못한게 좀 아쉬웠다.
1분 쯤 지났을까? 다시 손을 흔들어주려 고개를 돌렸는데!!
읭?! 없다!
아이들은 이미 동구 밖 저 멀리까지 가버려서 새끼손가락만 하게 보인다. 마사이들은 축지법을 쓰는 것일까?
저녁에 보지 못한 동네 구경을 마사이 엄마와 함께 나섰다.
소와 염소를 키우는 마사이 가정들.
소똥집 옆에 있는 염소 우리로 나를 데려간 마사이 엄마는 염소젖을 짜보라며 그 앞으로 나를 떠밀었다.
익숙지 않은 손길에 염소는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그러더니 나오라는 젖이 아니라 갑자기!
동그란 똥들 대방출!!
갓 짜낸 우유를 기대하며 준비한 플라스틱 우유통에는
“도로로롱, 퐁! 퐁! 도로로롱~”
경쾌한 소리와 함께 갓 빚은 똥들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기겁을 하며 어쩔 줄 모르는 내 옆에서 마사이 엄마는 깔깔 웃기만 했다.
염소똥과의 사투를 마치고 동네를 돌아보니, 이번엔 엄청나게 큰 생명체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는 것이 포착되었다.
그것은 바로 타조 떼.
동네를 돌아다니는 길냥이 무리처럼 무심결에 지나쳐도 타조 떼가 보이는 흔한 마사이 동네 풍경.
마사이 가족들은 이 마을에서 그들의 문화를 지키며 평생을 살아왔다.
작은 솥 하나, 호롱불 하나, 무쇠 팬 하나.
이 단출한 살림살이를 지켜오면서도, 아이들은 좋은 교육을 시켜주고 싶어 동구 밖 멀리 이방인들이 만든 학교에 보내고 있었다.
홈스테이를 마치고 돌아와 소감을 나눴다.
마음의 빈곤.
가난함의 민낯은 우리에게도 존재했다.
더 좋은 대학을 위해 밤 12시까지 학원 돌려막기로 공부하는 치열한 틈바구니에서 잃어버린 아이들답게 사는 삶.
채우고 채워도 부족해 트렁크까지 채워 넣어도 더 담을 곳이 없나 살피는 비교와 욕심들.
많이 가져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함으로 가진 것을 감사하는, 존재만으로 이미 충분하다는 그 마음이 부재해서 오는 빈곤이다.
마사이들은 현실의 빈곤에서 오는 절박함과 싸우고 있지만, 우리는 마음의 빈곤이 우리를 잠식하도록 내버려 두고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