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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마이크 May 19. 2023

떡은 간만 맞으면 맛 없을 수가 없어

시장을 여는 가게, 진미떡집 인터뷰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간부터 바쁜 손길이 이어진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가장 먼저 시장 골목을 밝히는 가게. 아직 걷히지 않은 새벽 어스름 속에서 김을 모락모락 내뿜으며 존재감을 밝히는 곳으로 향했다.


새벽부터 부지런히 시장을 밝히던 곳은 서동시장의 ‘진미떡집’이다. 이곳은 어머니 권순옥 씨와 아들 국일주 씨가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국일주 씨는 신학과를 졸업하고 가업을 이어받기 위해 떡집 일을 시작했다. 어머니를 돕기 위해서였는데, 2005년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15년이 훌쩍 넘었다. 부지런히 떡을 자르는 모습을 구경하며 어머니와 함께 새벽에 출근했냐고 물었더니, 슬쩍 미소를 짓는다. 


“15년 넘게 일했는데도 아직 아침에 일어나는 게 습관이 안 됐어요. 저는 조금 늦게 나왔습니다(웃음).”


그에게도 여전히 아침 일찍 출근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묘하게 성실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인터뷰하는 동안 귀찮은 내색 없이 떡을 썰며 부지런히 대답하는 모습만 봤기 때문이다. 무뚝뚝하지만 맡은 일엔 최선을 다하는 그의 하루가 그려진다. 역시나 시장에서 부지런한 사장님으로 통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권순옥 씨는 빨리 밥 먹고 오라며 국일주 씨의 등을 떠밀었다. 어디 혼자 가서 맛있는 거라도 먹고 오는 걸까. 그의 뒤를 따라가보니 몇걸음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방앗간에 도착했다. 특이한 점은 방앗간 이름이 떡집과 같은 ‘진미방앗간’이라는 점과 방앗간 사장님이 국일주와 닮았다는 점 정도….


진미방앗간은 국일주의 아버지 국명완 씨와 동생 국일승 씨가 맡고 있다. 알고 보니 온 가족이 시장에서 일하고 있던 셈이다. 아버지는 주로 관리 감독을 맡고 있어 동생 국일승 씨가 방앗간을 총괄하고 있었다. 전기회사를 다니던 국일승 씨는 퇴사 후 시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역시나 어머니를 돕기 위해서였는데, 혼자서 떡집과 방앗간을 동시에 운영하던 어머니가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두 형제의 효심을 보니 어머니가 얼마나 사랑으로 보듬었을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진미떡집은 전통 방식으로 떡과 약밥 등을 만든다. 3일 동안 정성으로 달인 대추를 넣어 만든 약밥은 깊은 맛이 일품이다. 특히 쑥과 모시 등은 직접 캐 온 재료를 사용해 만든다. 진미떡집은 더 정직하고 깨끗한 방앗간을 만들기 위해 힘쓰고 있다. 특히 쌀과 잡곡, 기름, 콩고물 등은 진미방앗간에서 공수한다. 덕분에 방앗간 재료의 회전율이 좋아져 신선한 제품을 제공할 수 있다. 


덕분인지 6시내고향, 생생정보통 같은 방송 프로그램에도 나오고 매년 명절마다 줄 서서 떡을 사 가는 곳으로 유명하다. 매년 설에는 가래떡 뽑는 데 하루에 200kg이 넘는 쌀을 쓰기도 한다. 모든 과정이 쌀을 옮기고 시루를 드는 힘쓰는 일이라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오지만 가족들은가족들이 힘을 합해 오늘도 새벽부터 모락모락 떡을 찐다. 떡집 가족은 찰떡처럼 뭉쳐서 시장의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언제 떡집을 이어받아야겠다고 마음먹으셨나요? 

(권순옥) 친척이 떡집을 하고 있었거든요. 장사는 잘되는데 일이 힘드니까 못 해 먹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형님 그럼 저 주세요’ 했지. 그분이 일주 이모할머니예요. 그 기계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왔네. 벌써 30년이 넘었어. 우리 삼 남매 먹여 살려야 하니께. 먹여 살리려면 매일 새벽같이 나와서 떡을 만들어야죠.


(국일주) 어느 날 어머니가 집에 와서 떡시루가 너무 무거워서 놓쳤다고 얘기하더라고요. 그때부터 도와드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한테는 어머니가 건강하고 오래 계셨으면 하는 마음이 컸거든요. 떡집에서 일을 해 보니 여기저기 힘쓰는 일이 수두룩한데 그동안 혼자 하셨을 어머니 생각에 죄송한 마음도 들었죠. 


매일 만드는 떡 종류가 바뀌는 것 같아요.

(국일주) 그때그때 손님 주문 들어오는 거에 따라 달라요. 팥떡, 시루떡, 송편, 종류별로 쪄서 만들고 있어요. 도매랑 소매로 나뉘는데 단체 주문이 많은 편이에요. 단체로 만든 떡 여분을 소매로 팔기도 하고, 그때그때 재료나 제철 재료에 따라서 조금씩 만들어서 팔아요. 


떡 만들 때 제일 중요한 게 무엇인가요?

(권순옥) 간이죠, 간. 음식은 간만 맞으면 맛있어. 가래떡은 생으로 먹는 사람도 많으니까 좀 슴슴하게 만들고. 팥떡이나 시루떡은 잔칫날에 먹거나 단체로 여행가는 날 아침으로 간단하게 먹는 경우가 많아서 달달짭짤하게 만들지. 우리 집 약밥도 잘나가요. 대추 진액을 넣어서 만들거든요. 그럼 맛있지. 인절미도 콩가루 만들 때 말린 생강이랑 마늘을 같이 넣어서 갈아요. 그래서 손님들이 우리 집 인절미는 감칠맛이 나서 맛있다고 하더라고. 콩고물을 일승이네 방앗간에서 직접 만드니까 재료 배합도 자유로워서 좋아요. 


명절에는 더 바쁘겠어요.

(권순옥) 아무래도 쪽잠을 자죠. 명절 끝나고 나면 몸살이 나 버려요. 몸은 힘들지만 나는 고생을 했어도 우리 자식들은 고생 안 시키려고 일했던 건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같이 고생하고 있네(웃음). 


(국일주) 같이 일해 보니 1년 내내 하루도 안 쉬고 일하는 어머니가 대단하죠. 저는 15년 넘게 일했어도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데 지금 생각해 보면 평생 이렇게 사신 거잖아요. 어렸을 땐 몰랐는데 그렇게 저희를 키우신 거니까 감사하죠. 죄송하고요. 같은 일을 하니까 이제 알 것 같아요. 


옆에서 계속 보니까 어머니가 떡을 상인분들이나 손님들에게 많이 나눠 주시는 거 같아요. 저도 받았고….

(국일주) 네 좀…. 심해요(웃음). 자주 오는 분들한테는 꼭 얹어서 주고 옆집 상인분들한테는 그냥 인사만 해도 드려요. 처음엔 말리기도 했는데 어머니 스타일이니까 어쩔 수 없죠. 


(권순옥) 자주 오는 분들이니께요. 그래야 인심 좋다고 사람들이 좋아하죠. 


옆에서 불쑥 “먼 데서 왔다고 기름값을 빼 주기도 해요.” 하고 김제에서 온 손님이 사장님의 인심을 증언했다. 질문을 하는 사이에도 권인숙은 방금 손님에게 떡 하나 더 줬냐고 아들에게 확인하고 있었고 정신 차려 보니 내 손에도 시루떡과 콩떡이 가득 담긴 검은 봉다리가 쥐어져 있었다. 떡값을 몰래 앞주머니에 넣어 보려고 여러 번 시도해 봤지만 권 사장님이 자꾸 도망가서 포기하고 말았다. 



사장님에게 시장은 어떤 공간인가요?

(국일주) 과거와 현재, 미래가 있는 곳이에요. 어렸을 때는 시장에서 뛰어놀았는데 지금은 일터가 돼 버렸네요. 시장에서 일해 보니 그동안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게 사셨는지 체감할 수 있었어요. 늘 감사함을 느끼는 곳입니다. 현재는 우리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주는 곳입니다. 어머니와 저는 떡집을, 아버지와 동생은 저기 옆에서 방앗간을 하고 있어요. 온 가족이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해요.


(권순옥) 아들들이 있어서 든든하죠. 옆집 아지매들도 맨날 부럽다고 해요. 좋지. 힘든 일인데 내색 안 하고 도와주는 게. 


**



새벽에 일어나 쌀을 씻고 찜기를 데우는 권순옥 씨를 상상한다. 그 옆에서 시루떡을 자르는 국일주 씨도 함께 보인다. 떡은 정성 들여 만들어야 한다고 권순옥 씨에게 한 소리 듣는 모습도. 어떤 이의 시계는 남들보다 이른 시간에 알람이 울린다. 부지런한 사람만이 시장의 아침을 맞이할 수 있으니까. 


누구보다 부지런히 살아가는 사람의 하루를 들여다보면 감탄과 놀라움의 연속이다. 자신과 자식을 위해 새벽부터 떡을 만들 줄 아는 그 평범한 부지런함이 30년째 우뚝한 이유다. 오늘도 떡집 가족은 쉬지 않고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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